조선일보를 이끌었던 고(故) 방일영·방우영 형제는 독재 정권은 물론 민주 정권에서도 정부 훈장을 받았다. 장자연 사건과 연루된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도 1994년 산업포장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대한민국 상훈’ 홈페이지를 통해 조선일보 방씨일가의 훈장내역을 분석했다. 

▲ 고 방우영 전 조선일보 상임고문. 사진=연합뉴스
▲ 고 방우영 전 조선일보 상임고문. 사진=연합뉴스
박정희가 방우영에 준 ‘대통령표창’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12월 방우영 전 조선일보 상임고문(1928년 1월22일~2016년 5월8일)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납북인사 송환’ 100만인 서명 운동에 대한 공로였다. 방 전 고문은 당시 조선일보 사장으로 현 방상훈 사장의 작은 아버지다.

2013년 7월 월간조선을 보면 조선일보는 1964년 6월25일 6·25전쟁 14년을 맞아 총 3개 지면을 ‘납북인사 송환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소식으로 채웠다.

조선일보는 1면에서 “본사(本社)는 만전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 본 운동 개시 기일을 내(來) 7월1일부터 금추(今秋) 유엔개회를 앞둔 10월 말일까지로 정하고 한국 적십자사의 적극적 협찬 아래 본사와 지사 총국 지국 등 중앙과 지방의 전 조직망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명 운동 첫 날부터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정·관계 주요인사가 대거 참여했다. 서명 첫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직접 서명을 보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6월25일부터 12월13일까지 총 19회 관련 기사(단신 보도 제외)를 실었다. 이 가운데 11회는 신문 1면에서 보도했다. 서명인 수는 10일 만에 25만을 육박했다. 3주 만에 50만을 돌파했다. 1964년 8월20일 100만명을 돌파했다.

같은 해 11월 박정희 대통령은 방우영 사장에게 보낸 감사 서한에서 “귀사의 빛나는 노력이 우리 3000만 민족의 한결 같은 통일에의 염원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 믿어 그 취지가 귀사에 길이 기록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2014년 새해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칠 무렵 조선일보가 대대적으로 ‘통일이 미래다’ 캠페인을 펼쳤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통일 대박’은 박근혜 비선 최순실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방일영문화재단은 언론과 사회의 선진화에 기여할 언론·교육·문화 사업을 목적으로 지난 1993년 11월 설립됐다. 사진=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 방일영문화재단은 언론과 사회의 선진화에 기여할 언론·교육·문화 사업을 목적으로 지난 1993년 11월 설립됐다. 사진=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1970년 두 형제 나란히 ‘국민훈장’

방우영 전 고문은 1970년 5월에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정부는 한국신문협회 부회장이던 그가 언론 창달과 언론계 육성 및 언론인 자질 향상에 공로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적을 세워 국민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며 5등급으로 나눠진다. 모란장은 1등급인 무궁화장 다음인 2등급 훈장이다.

방상훈 사장의 아버지인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1923년 11월26일~2003년 8월8일)도 같은 해 8월15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사회 산업 부문에서 국가 발전에 공이 크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훈장을 받았다. 방일영 전 회장은 1982년 4월 신문의날 기념식에서 “민주 언론 창달과 신문 기업 육성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같은 날 함께 무궁화장을 받았던 언론사 대표는 김상만 동아일보 명예회장이었다.

조선일보는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1980년 5월26일자 사설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쓰는 등 신군부 폭거를 미화했다.

방우영 전 고문은 1985년 3월 조세의 날 기념식에 동탑 산업훈장을 받았다. 산업훈장은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며 5등급으로 나눠진다. ‘동탑’은 3등급이다. 이날 1등급인 금탑 산업훈장을 받은 이는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수상자들은 국세청 방침에 따라 세무조사 면제라는 특급 혜택을 받았다. 

민주화 이후에도 받은 훈장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는 그들을 챙겼다. 방우영 전 고문은 노태우 정부인 1992년 4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사회 발전과 언론 문화 창달에 기여한 공로였다. 그는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8년 1월에도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문화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최근 장자연 사건으로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도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11월 산업포장을 받았다. “에너지 절약에 공이 크다”는 이유로 153명이 각종 훈·포장 및 표창을 받았다.

코리아나 호텔은 정권 유착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방우영 전 고문은 자신의 저서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서 코리아나호텔과 관련해 “박정희 대통령이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호텔을 지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65년 어느 날 방일영 회장이 청와대 오찬에 초대받아 갔다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런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신문사 형편으로는 고층 호텔을 지을 여력이 없었다. 방 회장이 난색을 표하자 박 대통령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민간 차관 중 일부를 할당해주겠다’며 호텔 건축을 강력히 권유했다. 그렇게 해서 정부의 지급 보증으로 일본에서 400만 달러 민간차관을 들여와 코리아나 호텔을 짓게 됐다.”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들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들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언론인이 훈장 받아도 되나”

김대중 정부도 1999년 5월 방일영 전 회장에게 금관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당시 은관 문화훈장 수상자로 결정된 권근술 한겨레 논설고문이 훈장을 거부해 화제였다.

미디어오늘은 1999년 “권 고문의 훈장 사절은 이미 친일파가 훈장 수상자로 둔갑하는 등 훈장의 권위가 실추돼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며 “다만 언론인에 대한 훈장 수여를 일부 언론이 1면 주요기사로 처리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는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김동민 당시 한일장신대 신문방송학 교수(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도 1999년 4월 “언론인이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는다는 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며 “만에 하나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저널리스트로서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에게 한정해야 한다. 방씨와 조선일보가 그러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손석춘 한겨레 여론매체부장(현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1999년 9월 ‘밤 대통령, 낮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부가 조선일보 두 형제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을 비판했다.

손 부장은 “총칼로 집권한 정치 군인도, 직선으로 뽑힌 ‘민주 인사’들도 앞다퉈 밤의 대통령에게 ‘추파’를 던지는 까닭은 무엇일까”라며 “바로 여론이다.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여론 형성에 막강한 힘을 지닌다. 더구나 조선일보를 비롯해 그와 ‘색깔’이 비슷한 동아일보, 중앙일보 세 신문의 신문 시장 독과점은 70%를 넘나든다”고 지적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2001년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시장 조사와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1999년 보광그룹 실소유주인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 2001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조희준 국민일보 회장 등을 구속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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