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동영상은 키즈 애니메이션 ‘핑크퐁’이었다. 2위는 뉴스타파의 “삼성 이건희 성매매 의혹… 그룹 차원의 개입”이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재벌 그룹 회장의 추악한 사생활, 10위 안에 뉴스 콘텐츠로는 유일했고 올해 4월 기준으로 1236만 뷰, 아직까지 역대 최다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뉴스타파가 이 희대의 특종을 보도하기 전에 한겨레와 YTN 등이 먼저 관련 제보를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한겨레는 이미 2015년 7~8월 무렵, 동영상의 일부를 확인했지만 보도하지 않았다. 제보자들이 거액의 금액을 요구했고 동영상 전체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게 당시 한겨레 편집국장 백기철의 설명이었다. 한겨레 내부에서는 재벌 회장이라고는 하나 사생활 문제 아니냐는 의견에 맞서 끝까지 확인해서 보도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YTN은 더 했다. 최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2015년 8월 당시 YTN 사회부장 류제웅은 기자들의 보고를 받고 “당분간 기밀을 유지하라”고 지시한 뒤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에 나가는 순간 꽝”이고 “(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면서 “삼성에 가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회유했다. “돈을 주고 (보도를) 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해명하긴 했지만 제보자를 삼성에 넘기면서 결과적으로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하고 사건 은폐에 동참한 꼴이 됐다.

▲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이 2월18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면회하기 위해 면회실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이 2월18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면회하기 위해 면회실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주목할 대목은 류제웅이 연결시켜준 사람이 당시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 이인용이었다는 사실이다. 1982년 MBC에 입사해 9시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까지 지냈던 그는 2005년 삼성전자 전무로 옮겨갔다. 당시 그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삼성이라는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이 전 세계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언론인으로서의 사명 못지 않은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돈 주고 기사 막는 관행을 바꾸겠다”고 선언했으나 이인용이 ‘삼성의 입’을 자처했던 지난 12년 동안 삼성과 언론의 관계가 더욱 후퇴했다는 게 언론계의 지배적인 평가다. 2008년 삼성 그룹 비자금 사건 이후 삼성은 비판 언론에 광고를 중단했고 2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그것도 선별적으로 풀기 시작했다. 광고 받고 기사 빼주는 관행이 기사 안 쓰면서 광고를 구걸하는 관행으로 바뀐 게 변화라면 변화랄까.

박근혜 탄핵과 재판 국면에서 이인용은 네 가지 거짓말을 했다. 처음에는 돈을 안 줬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 다음에는 승마협회에 기부금으로 줬다고 거짓말을 했고 거짓말이 들통나자 내부 부패가 고질적이어서 임원들을 통해서 줬다고 거짓말을 했고 급기야 마지막에는 주고 싶지 않았지만 권력의 강압에 의해서 줬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그의 주군 이재용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인용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이른바 장충기 문자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다음은 이재용 후계 작업이라는 논란이 있었던 제일모직 상장 첫날인 2014년 12월18일, 이인용이 장충기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방송은 K, M, S 모두 다루지 않겠다고 합니다. 종편의 경우 JTBC가 신경이 쓰여서 김수길 (JTBC) 대표께 말씀드렸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신문은 말씀하신대로 자극적인 제목이 나오지 않도록 잘 챙기겠습니다. 이인용 드림.”

결국 이인용은 물러났지만 여전히 삼성은 한국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 조중동(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과 매경·한경(매일경제와 한국경제) 등은 끝내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에 침묵했고 종합편성채널 역시 JTBC가 단신으로 보도했을 뿐 대부분의 언론이 애써 외면했다. 지난 2일 한겨레가 보도한 삼성 노동조합 파괴 문건 보도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TV조선과 채널A, MBN 등은 끝내 침묵했다(4월10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집계 기준).

▲ 이창섭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직무대행은 2015~2016년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편하실 때 국가 현안 삼성 현안 나라 경제에 대한 선배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평소에 들어놓아야 기사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같은 부산 출신이시고 스펙트럼이 넓은 훌륭한 분이시라 들었습니다. 제가 어떤 분을 돕고 있나 알고 싶고 인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등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MBC 스트레이트
▲ 이창섭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직무대행은 2015~2016년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편하실 때 국가 현안 삼성 현안 나라 경제에 대한 선배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평소에 들어놓아야 기사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같은 부산 출신이시고 스펙트럼이 넓은 훌륭한 분이시라 들었습니다. 제가 어떤 분을 돕고 있나 알고 싶고 인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등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MBC 스트레이트
이른바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경오’까지 삼성에서 자유로운 언론은 많지 않다. 삼성은 여전히 이들의 ‘형님’이고 ‘혈맹’이고, ‘각골난망’하면서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언론인들이 여론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또 다른 장충기와 또 다른 이인용이 여전히 문자를 주고 받고 있다. 진짜 끔찍한 것은 ‘장충기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 중이라는 사실이다. 언론은 최대 광고주의 눈치를 살피고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고 여론을 왜곡한다.

이재용이 삼성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낡은 관행과 폐습을 끊는 것이다. 돈 주고 기사를 사고 여론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접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불편한 비판에 직면해야 삼성이 산다는 것이다.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론을 바로 세우는 것이 진정한 적폐 청산의 시작이라고 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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