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말 중국 베이징 중관촌(中關村, 베이징시 신기술 산업개발시험구)을 방문했다. 다수 국내 언론은 김 위원장이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을 방문한 배경을 두고 ‘아버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방중 길을 따른 것’이라 해석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언론은 김 전 위원장이 2011년 5월 방중 당시 중관촌을 방문한 것을 언급했다.

남문희 시사인 한반도 전문 기자는 생각이 다르다. 김 전 위원장이 2011년뿐 아니라 2000년 5월 말에도 중관촌에 갔는데 이때와 연결해보는 게 더 의미 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지금처럼 그때도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관촌을 방문했다. 1990년대 북한은 불행했다. 소련이 붕괴하고 고난의 행군 시기 300만이 아사했다. 당시는 21세기 초입이다. 김정일 체제는 새로운 세기에 북한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나섰다. 나진선봉 경제특구처럼 귀퉁이 한 곳 개방해선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 신의주·원산·남포 개방 얘기도 나왔다. 북에서도 첨단 기술을 새 산업 모델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2000년과 현재는 북한 정권이 국내 권력 기반을 어느 정도 다진 뒤 남북정상회담 등 외교전을 시작하는 단계이며 개혁을 준비하는 시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번 김 위원장의 중관촌 방문은 김정일 체제의 첨단 산업 육성론 공과를 김정은 체제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주목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 남문희 시사인 기자. 사진=남문희 제공
▲ 남문희 시사인 기자. 사진=남문희 제공

남 기자의 이런 판단은 오랜 취재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5일 남 기자를 만나 북한 취재를 위해 필요한 것과 한국 언론에 부족한 점 등을 들었다.

남 기자는 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로 국제 문제를 1년 정도 취재하다가 1989년 8월 주간지 시사저널(같은 해 10월 창간)에 경력 기자로 입사했다. “시사저널 파업 때도 미디어다음 블로그에 기사를 썼죠.” 2년 정도 다른 부서에 있던 시기를 빼면 현재까지 약 27년간 북한 문제만 취재해 온 셈이다.

남 기자는 1993년 북·미 간 경수로 제공 협상 소식을 최초로 보도하기도 했고,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동유럽권 외교 소식통을 통해 김정일이 매우 능력있고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90년대엔 김정일에 대한 악의적인 묘사, 북한 붕괴론 등에 기초한 보도가 대부분”이었다며 “보도들이 너무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다 보니 제대로 된 정보만 전해도 대안적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주간지 특성상 적은 인력풀(20여명)에서 한반도 전문기자를 키워내는 일은 다른 언론사에 비해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난 운이 좋았다”며 “시사저널·시사인의 투자”라고 공을 돌렸다. 언론사에서 북한 취재 부서에 어떤 지원을 해야 할까. 남 기자는 “북한 기사만큼 언론사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없다. 매체 정체성과 기자 생각이 맞으면 다행이고, 가장 바람직한 건 회사가 특정한 관점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가 제한적인 만큼 북한 취재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위기도 형성돼야 한다. 남 기자는 “일간지에서 북한 취재 기자들도 로테이션을 시키는데 연속성이 깨지면 전개되는 사건의 배경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붙박이들을 많이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기자는 “북한 기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기자의 정보 선별 능력”이라며 “정보가 많지도 않고 왜곡돼 있는 경우도 많아 정보 가치를 평가하고 사실 관계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 관점이 정립됐다 하더라도 진위 판단을 하는 게 어려워 본의 아니게 오보를 낼 수도 있다”며 “정보의 맥락까지 파악해야 오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 지난 3일 평양의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3일 평양의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남 기자의 기사를 찾는 이들은 그만의 원칙과 관점을 신뢰한다. 그는 “남북이 대립하는 뼈아픈 현실과 강대국에 의해 한반도가 이용당하는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 남북 관계의 화해·평화 공존을 위한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며 “진보적 시각에서 빠지기 쉬운 오류가 북한 위주의 생각인데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북미, 북일 관계를 볼 때도 저널리스트로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미 협상이 진행될 텐데 ‘북한이 약속을 어긴 경우가 많으니 신뢰하지 못한다’는 식의 리포트가 나온다.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 실제론 미국이 약속을 어긴 경우가 더 많다”며 “사실 관계에 입각해야지 ‘북한은 독재국가니까 나쁜 놈’이란 관점에서 사안을 왜곡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남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편견에 기댄 보도 방식은 2010년 5·24 대북 제재 조치 이후 남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고착화했다.

남 기자는 “10~20년 전 기사를 보면 미국·일본·중국 쪽 소식통, 조선족 사업가 등 소스가 다양했는데 이명박 정권 이후 북한 접촉이 안 되니까 정보량이 확실히 줄었다”며 “한국 사회의 대북 정보 수집 양 자체가 추락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좋은 북한 기사는 회사 지원과 기자 개인의 정보 선별 능력뿐 아니라 정부의 대북 정책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 기자가 신뢰하는 취재원은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드러나면 북한 접촉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출되지 않는 취재원은 북한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의 진입장벽이기도 하다. 남 기자는 “취재원이 없더라도 나름대로 북한 사회에 합리성이 있는 걸 고려해 기사를 쓰다보면 좋은 취재원이 찾아오기도 한다”고 조언했다.

남 기자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한국에 왔다간 뒤 노동신문을 보면 현 정세에 대해 남측의 의중과 미국 측의 동향을 보고했다고 나온다”며 “서구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도 열심히 분석하는 등 북한도 자신들의 방향을 결정할 때 주변 시각을 의식한다”고 말했다. 북한을 남의 말도 안 듣는 비정상국가로 간주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 지난 3월5일 북한 노동당 본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 지난 3월5일 북한 노동당 본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남북정상회담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남 기자는 남북 관계를 어떻게 전망할까. 그는 “지금까지 게임은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측면이 있어 난이도 측면에서는 쉬웠을 수 있다”며 “앞으론 복잡한 게임이 진행될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와 일본까지 6자를 다 끌어들여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 자본이 개혁 개방을 준비하는 북한에 진출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북한이 핵을 어느 수준으로 포기할지, 협상 과정에서 어느 정도 체제 안정과 경제적 보상을 받아 낼지 앞으로 협상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는 “북한에는 강대국들과 협상하기 위한 설계도도 있을 것이고 실패의 경험도 있어 앞으로 판을 주도하려고 할 것”이라며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같은 사람은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에 군 대표로 나온 적 있다. 문재인 정부도 과거 협상 경험이 있는 사람을 총동원해 대응 계획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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