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은 민주화의 마지막 여정이 언어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배려, 존중, 공존, 평등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는 배려의 언어, 존중의 언어, 공존의 언어, 평등의 언어를 쓰는 일에서 시작한다.” 차별적 용어인 지방 대신 지역을 쓰자고 하는가 하면, ‘조선족’·‘혼혈’ 같은 차별적 표현을 쓰지 말자고 제안한다. 미세먼지 농도를 놓고 ‘좋음’이란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지적도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줄곧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책을 들춰보는 이들의 관심은 따로 있다. 그가 ‘주군’으로 모셨던 노무현과 문재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양정철의 ‘정세판단’과 ‘전망’이다. 실제로 양정철은 한국사회의 차별적 언어에 대해 서술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관련 에피소드를 적절히 풀어내는 식으로 나름 독자의 기대에 부응한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를 두고 “그 분은, 떠나며 남긴 마지막 언어마저 낮게 썼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고성의 나라”라고 정의하며 정치가 품격을 갖추고 공감을 얻기 위해 고성을 절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데뷔 이후 늘 새로운 정치를 꿈꿨던 문재인 대통령은 첫 총선에서 지역구인 부산 사상을 돌며 시끄러운 유세를 피하고자 무진 애를 썼다”고 적었으며, “높은 목소리 대신 땀과 진정성으로 호소한 조용한 유세는 성공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양정철/세상을 바꾸는 언어/메디치미디어
▲ 양정철/세상을 바꾸는 언어/메디치미디어
그는 ‘빨갱이’란 단어를 “극단적인 사람들이 이념적 적대감에서 누군가를 타도 혹은 척결하자고 주장할 때 쓰는 표현”으로 정의하며 “문 대통령이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판에 염증을 느끼고 가장 지긋지긋하게 생각한 행태가 바로 종북 빨갱이 프레임 공격이었다”고 적기도 했다. 그는 “빨갱이·좌파·종북 같은 증오의 언어는 이제 색깔론이 아니라 나라를 망치는 망국론”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 대한 그의 평가였다. 그는 “선거 상황에서 강력한 결집력을 지닌 온라인 지지자들은 문 대통령에게 무척 고마운 분들이었지만, 그 가운데 극히 일부는 배타적 폐쇄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한편으로 큰 부담이었다”고 적었다. 양정철은 “많은 이들은 온라인 지지자들의 강력한 비판 댓글이 문재인 캠프와 연계된 조직적인 것으로 오해했다”고 전하며 “지지하는 정치인이 다르다 해서 적대시하고 같은 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대립하고 혐오”하는 것을 우려했다. 양정철의 이 같은 인식은 사실 정부여당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여론이기도 하다.

그는 언론에 대한 쓴 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언론은 전투적인 보도 문장부터 고쳐야 한다. 선거나 스포츠 경기, 각종 경쟁 상황보도를 보면 전투 중계를 방불케 한다. 언론에서부터 일상까지 전투 용어가 일반화 된 것은 우리 아픈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 미디어가 전쟁·군사 용어를 마구 쓰면 과도한 대결적 정서나 폭력 문화가 양산될 소지가 있다.”

언론의 전투적 보도 문장이 언론의 정파주의를 강화하거나 사건을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의 지적은 언론인들이 좀 새겨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쳐지긴 어려울 것이다. 양정철은 “언론은 객관의 언어를 써야 한다. 거의 모든 사안을 논란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실 관계만 객관적으로 전해야 하는 언론의 절제 원칙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는데, 언론이 태생적으로 논란을 쫓고 논란을 만드는 존재들이란 점에서 이 대목은 읽으며 씁쓸한 맛이 났다.

▲ 문재인 대통령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정연주 전 KBS 사장. ⓒ양정철
▲ 문재인 대통령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정연주 전 KBS 사장. ⓒ양정철
양정철은 이 책에서 “나는 패권이란 말이 삼철이라는 말만큼이나 지긋지긋하다. 패권이나 삼철은 오로지 문재인을 흠집 내기 위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프레임이었다”고 강조했는데, 여기선 두 명의 대통령을 만들어내며 그가 마주해왔을 주류언론에 대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언어 민주주의를 위한 여러 변화 중 하나로 법원과 검찰의 판결문과 공소장이 쉽게 쓰여 져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공감이 갔다. “판결문을 보면 법관들은 여전히 자기들만의 암호 같은 언어로 장벽을 쌓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언어민주주의야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이뤄내고 싶었던 진보였음을 강조했다.

이 책에서 의아했던 대목은 “이제 박정희와 노무현이 역사 속 인물로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며 “관용과 포용”을 강조한 지점이었다. 그는 한국사회의 두 축으로 ‘박정희’와 ‘노무현’이란 프레임을 세운 뒤 “정치가 먼저 증오와 배제와 대결의 언어를 거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와 노무현의 공존을 주장하는 이 정치인의 책에 담긴 행간이 영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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