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씨에 이어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 재판에서도 ‘제3자 뇌물수수죄’가 적용된 삼성그룹의 220억 원 뇌물혐의에 무죄가 선고됐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부회장에게 승계작업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지만 형사재판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6일 오후 박씨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18개 혐의 중 이 부회장으로부터 뇌물로 수수한 것으로 지목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여 억 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을 제외한 16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 4월6일 오후 서울역에 모인 시민들이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의 선고공판 생중계 방송을 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4월6일 오후 서울역에 모인 시민들이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의 선고공판 생중계 방송을 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재판부는 “피고인 박근혜를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 원에 처한다”며 “벌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3년 간 노역에 처해진다”고 선고했다.

최씨와 공모한 11개 혐의의 경우 최씨와 동일한 내용으로 전부 유죄가 선고됐다.

이 중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죄가 적용돼 유죄 결론이 난 사건은 △53개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774억 원 강요 △현대차에 최순실 지인 회사 납품 계약 및 차명회사 플레이그라운드 광고 발주 강요 △포스코에 체육팀 창단 및 최순실 차명회사 더블루K와 계약강요 △KT에 최순실 측근 채용 및 플레이그라운드 광고 발주 강요 △그랜드코리아레저에 장애인 펜싱팀 창단과 더블루K와 계약 강요 △KEB하나은행에 최순실 측근 이상화 본부장 인사 강요 등 6개다.

뇌물 수수 및 요구혐의가 적용된 592억 원 중 유죄가 선고된 부분은 230여 억 원이다. 재판부는 △롯데그룹 70억 원 지원금에 대한 제3자 뇌물수수죄 △삼성전자의 정유라씨 승마지원금 72억 원에 대한 뇌물수수죄 △SK그룹에 요구한 각종 지원금 89억 원에 대한 뇌물요구죄 등이 유죄로 인정됐다.

이밖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 3개(직권남용권리방해행사 및 강요) △정호성과 공모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공무상 비밀누설)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퇴진요구 사건(강요미수) 등도 유죄로 결론났다.

▲ 박근혜씨 1심 선고 보도. 사진=연합뉴스TV 캡쳐
▲ 박근혜씨 1심 선고 보도.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재판부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30년에서 감형을 참작한 사유로 “이 부회장으로부터 뇌물로 받은 72억 원을 직접 취득하지 않았고 롯데그룹으로부터 받은 70억원을 반환했으며 범죄전력이 없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씨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수개월 간 재판에 불출석한 태도에 대해선 엄중히 꾸짖었다. 김세윤 부장판사는 “결국 헌정 사상 초유인 대통령 파면에까지 이르렀고 피고인은 헌법상 책임을 방기하고 국민이 준 권한을 최순실과 나누는 등의 잘못을 했음에도 오히려 최순실에게 속았다거나 자신의사와 무관하게 비서관이 했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했다”면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해 국민을 불행에 빠뜨리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검 및 검찰이 주장한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승계작업은) 언론 보도 등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실제 일반인 입장에서는 승계작업이 당연히 필요한 게 아니냐 할 수 있다”며 “그러나 형사책임을 논하는 재판에서 승계작업은 그 대상이 명확해야하고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력 있는 증거들이 있어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 4월 6일 오후 서울역 2층 대합실 TV앞에 모인 시민들이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 씨의 선고공판 생중계방송을 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4월 6일 오후 서울역 2층 대합실 TV앞에 모인 시민들이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 씨의 선고공판 생중계방송을 보고 나서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승계작업은 최순실씨 1심 선고 및 이 부회장의 2심 선고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승계작업은 이 부회장과 최순실씨 및 박씨 간 성립하는 제3자 뇌물수수죄'를 입증하는데 필요한 핵심 전제다. ‘제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뇌물을 받은 혐의가 성립하려면 뇌물을 준 쪽의 부정한 청탁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검 및 검찰은 이 부회장의 묵시적 청탁 대상으로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지목했다. 특검 및 검찰은 이를 두고 최씨의 항소심과 이 부회장의 상고심에서 법리 다툼을 벌이고 있다. 승계작업 존재 여부는 이후 이어질 박씨의 항소심에서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 4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에서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참가한 ‘제50차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사진=김현정 PD
▲ 4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에서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참가한 ‘제50차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사진=김현정 PD
이날 법정에 참관한 방청객들의 반응은 상반됐다. 20대 청년 김아무개씨는 선고 직후 “정경유착 범죄에 대해 엄벌의지를 나타내지 않은 점이 아쉽다”며 “징역 24년은 죄질에 비해, 기대했던 것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라고 밝혔다.

박씨를 지지하는 시민 대여섯명은 이날 오후 2시10분 재판부가 법정석에 앉자마자 “이 재판부의 선고는 들을 수 없다” “방청을 거부한다”고 말하며 동시에 퇴장했다.

선고가 시작되기 30여 분 전부터 법원 정문 앞 사거리에서는 박씨의 지지자들이 참가한 ‘제50차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 중 일부는 선고 직후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박씨의 제부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집회에서 “정치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이 유죄를 받았지만 공정재판 일반 재판에서는 무죄”라며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보고 계신다. 육영수 여사도 보고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는 “이 대한민국이 정상이 아니”라며 “작년 3월10일부터 대한민국의 법치는 사망했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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