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천해성 통일부 차관에게 군비축소 회담(‘군축’)을 언급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오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YTN이 자사 보도를 수정·삭제하지 않고 있다.

YTN은 지난달 31일 “[단독] 北 ‘8월15일 군축회담 열자’… 돌출 발언?”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엊그제(3월29일) 남북 고위급회담에 북측 대표로 참석했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오는 8월15일에는 남과 북한이 군비축소에 관한 회담을 열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는 이 보도를 통해 “회담 종료 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리선권 위원장은 회담에 참석했던 남측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배웅했다”며 “이어 천해성 차관을 배웅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군비축소 회담 개최를 언급했다”고 한 뒤 “전문가들은 북측 고위급 인사의 이 같은 발언은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첨단 재래식 무기와 관련한 군축회담에 대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분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YTN 보도 영상만 보면 리 위원장이 천 차관과 악수하며 “군축합시다”라고 발언한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군축’으로 단정하기엔 리 위원장 음성이 명확하지 않아 당사자들의 확인이 필요했다.

통일부는 보도 당일 출입기자단 단체 카톡방을 통해 “3월31일자 YTN 보도는 잘못된 보도임을 알려드린다. 리선권 위원장이 3월29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개최된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석한 우리 측 대표들을 배웅하면서 8월15일이 생일인 천해성 통일부 차관에게 ‘8월15일에는 경축합시다’라고 발언한 사실이 있다”고 공지했다. ‘경축’을 ‘군축’으로 보도한 오보라는 것이다.

▲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천해성 통일부 차관에게 군비축소 회담(‘군축’)을 언급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오보라는 지적에도 YTN이 자사 보도를 수정·삭제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YTN 홈페이지 화면 캡처
▲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천해성 통일부 차관에게 군비축소 회담(‘군축’)을 언급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오보라는 지적에도 YTN이 자사 보도를 수정·삭제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YTN 홈페이지 화면 캡처

YTN은 5일 오후 현재도 리포트를 수정하지 않고 있다. 김주환 YTN 기자는 5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평안도 사람들한테 한번 들려줘 보라”며 자신의 보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기자는 “사전에 (사람들에게) 키워드를 주면 뇌가 동조화한다”며 “그래서 경축으로 들리느냐 그러면 경축으로 들린다고 그러는 거고, 군축으로 들리느냐 하면 군축으로 들린다고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경축’이라고 해명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군축이 아닌 경축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뜻이다.

김 기자는 ‘현장에서 직접 들은 건가’라는 질문에 “나는 국장급”이라며 즉답을 피했고 대신 “그거(보도) 낼 때 8명한테 들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 가족 출신지가 북한과 관련돼 있음을 강조한 뒤 “이북(북한) 사투리를 쓴다고 가끔 탈북 기자라고 오해를 한다”며 “내 귀에 평안도, 함경도 사투리가 더 잘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천 차관 등에게 확인해봤느냐’고 묻자 그는 “왜 이렇게 사람이 급한가. 1년 뒤에 특종이 되는 것도 있고”라며 “8월15일까지 기다려보라”고 말했다. ‘독자(시청자)가 오인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그건 귀하 사정이고 난 안 급하다”고 말했다.

천 차관은 5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주고받은 문자에서 “이미 대변인을 통해 말씀드린 그대로”라며 “무엇을 더 확인해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YTN지부는 이날 노보에서 해당 보도를 두고 “애매한 발음을 ‘단독’까지 달아쓰면서 관련 부처에 최소한의 확인조차 없었던 것”이라며 “‘군축’ 같은 중요한 발언을 남북 고위급 회담이 끝난 배웅 자리에서 할 가능성은, 삼척동자가 생각해도, 지극히 낮다. 김정은도 웃을 일”이라고 질타했다. 언론노조 YTN지부는 “보도국에서도, 실국장 회의록에서도 관련한 문제제기 흔적이 없다”며 “해당 기사는 YTN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에 버젓이 남아있다. 기본적인 취재·보도 체계와 보고 라인이 모두 마비됐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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