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MBC 경영진 시절 MBC 아나운서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던 배경에 ‘아나운서 블랙리스트’가 존재·작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MBC 공정방송 파업 직전 폭로된 ‘카메라 기자 블랙리스트’ 역시 실제 인사에 반영됐고 MBC 임원회의에서 퇴출 계획을 지시한 사실도 확인돼 파장이 예상된다.

MBC 감사국에 따르면 MB정부 국가정보원이 MBC 장악을 위해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과 MBC 내부에서 폭로된 ‘카메라 기자 성향 분석표’ 문건 존재가 확인됐고 전직 임원들이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기소됨에 따라 지난 1월8일부터 3월22일까지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MBC 사측은 감사를 통해 추측만 무성했던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존재가 확인됐다고 2일 밝혔다. 

지난 2013년 12월 A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성향 분석’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해 당시 아나운서국을 관할했던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에게 보고했다. 아나운서들을 ‘강성’, ‘약강성’, ‘친회사적’ 등 3개 등급으로 분류한 이 문건은 실제 인사 발령에 반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MBC 감사국 보고서에는 아나운서를 강성 6명, 약강성 7명, 친회사적 성향 19명 등으로 분류한 문건이 언급돼 있다. 실제 인사 발령 내용을 보면 ‘강성’, ‘약강성’으로 분류된 13명 가운데 최소 9명(69%)은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 '아나운서 블랙리스트'에 '강성', '약강성'으로 분류된 이들의 실제 인사발령 내용. 사진=MBC
▲ '아나운서 블랙리스트'에 '강성', '약강성'으로 분류된 이들의 실제 인사발령 내용. 사진=MBC
신아무개 아나운서의 경우 2014년 4월 이후 TV편성부, 온라인뉴스부, 뉴미디어뉴스편집부 등 본래 업무와 무관한 조직으로의 인사 발령이 계속됐다. 오아무개 아나운서는 2015년 6월 이후 매체전략국 신매체개발부로, 차아무개 아나운서는 2016년 3월 이후 경인지사 문화사업제작센터와 문화사업기획부 등으로 발령을 받았다.

MBC는 이에 대해 “(당시 임원진이) 특히 박아무개, 김아무개, 최아무개 아나운서 등은 업무에서 배제하도록 임원회의에서 직접 언급했고, 블랙리스트 작성 당시 휴직 중이었다가 복직한 손아무개 아나운서에 대해선 반드시 배제하도록 임원회의에서 지시했다”고 밝혔다.

▲ 2017년 8월 22일 제작거부에 나선 MBC 아나운서들이 서울 상암동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17년 8월 22일 제작거부에 나선 MBC 아나운서들이 서울 상암동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2013년 7월 MBC 카메라 기자 B씨는 카메라 기자들을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노조 참여도에 따라 ‘☆☆’, ‘○’, ‘△’, ‘X’의 4등급으로 분류했으며 ‘계속 격리’, ‘방출 필요’, ‘주요 관찰 대상’, ‘회유 가능’ 등의 평가를 덧붙였다. 지난해 8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폭로한 카메라 기자 블랙리스트는 파업의 도화선이 된 바 있다.

▲ 2일 MBC 감사국이 공개한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내용 일부. 사진=MBC
▲ 2일 MBC가 공개한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내용 일부. 사진=MBC

▲ 2017년 8월 8일 오전 MBC 영상취재기자들이 상암동 사옥앞 광장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장겸 MBC 사장 등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17년 8월 8일 오전 MBC 영상취재기자들이 상암동 사옥앞 광장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장겸 MBC 사장 등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문건 작성자 B씨는 앞서 ‘개인적으로 작성한 문건일 뿐’이라고 해명해왔다. 하지만 MBC 감사 결과 B씨가 보도국 주요 간부에게 ‘블랙리스트’가 반영된 인사안을 보냈고 대부분 블랙리스트 내용이 실제 인사안과 거의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MBC는 “문건 존재가 알려진 2017년 8월8일 직후 관련자들 전원이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해 이메일을 대량 삭제한 사실도 추가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2014년 10월 MBC 직원 78명을 대상으로 이른바 ‘방출 대상자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사실도 확인됐다. MBC 감사국은 회사 메일 로그 기록에 ‘임원회의’ 등의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 지난 2014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조아무개 비서실장이 백종문 당시 미래전략본부장에게 ‘임원회의 요약본’을 메일로 보낸 로그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해당 요약본을 통해 확보한 ‘방출 대상자’ 명단과 2014년 10월24일 임원회의 이후 인사 발령 내용을 조사한 결과 총 61명이 이른바 ‘유배지’로 발령되거나 한직으로 전보된 사실이 확인됐다. MBC는 “임원회의에서는 당시 임원들이 방출 대상자 중 다수를 보낸 신설 부서를 ‘보호관찰소’로 표현했다”며 “(방출 대상자가) 주요 부서에서 근무한 사례가 거의 없어 블랙리스트는 철저히 실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임 경영진 시절 MBC 내부의 '방출 대상자' 일부 인사 발령 내용. 사진=MBC
▲ 전임 경영진 시절 MBC 내부의 '방출 대상자' 일부 인사 발령 내용. 사진=MBC

안광한 전 MBC 사장이 ‘인력 퇴출’ 계획을 지시한 사실도 확인됐다. 지난 2014년 7월 MBC 임원회의에 참석한 안 사장이 인사고과시 ‘R’(최하등급)을 부여하고, (이를 근거로) 인력을 퇴출시키기 위한 계획을 갖추도록 했다는 것이다. MBC는 같은 해 9월에도 안 사장이 소송을 감수하더라도 ‘R’ 등급 부여를 실행하고 “내년에 3명은 퇴출시켜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MBC “직원 이메일 감사, 열람 대상 최소화…
열람 대상자 충분한 의견 진술 기회 보장, 사생활 메일은 열람 안 해”

이런 가운데 MBC는 최근 ‘직원 이메일 사찰’ 논란을 불러온 이메일 감사와 관련해 감사 대상 및 방법에 대한 추가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MBC는 “‘MBC 정상화 문건’ 실행, ‘블랙리스트’ 작성과 활용, 부당노동행위 지시 및 실행은 구두 지시, 인트라넷 메일, 문자·메신저를 이용해 은밀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기에 전직 임원들과 일부 보직자의 메일 로그와 출력 로그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메일 로그’에는 메일 수·발신 당사자와 날짜, 첨부 파일명이, ‘출력 로그’에는 출력자명과 출력물 파일명, 출력 날짜 등이 기록돼 있다.

MBC는 ‘성향, 명단, 리스트, 좌파, 카메라 기자, 임원회의, 격리, 외곽 조직, 배제’ 등을 ‘검색 키워드’로 선정한 뒤 대상자 메일 로그의 메일 제목과 첨부파일 명에 ‘검색 키워드’가 포함된 경우와 출력 로그의 출력 파일명에 ‘검색 키워드’가 포함된 경우를 선별해 열람 대상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MBC는 이 같은 방법을 통해 4명을 메일 열람 대상으로 선정했다. 4명은 선별 결과 ‘임원회의 요약본’ 문건이 나타난 조아무개 전 비서실장, ‘카메라 기자 인사 이동’ 문건이 나타난 권아무개 카메라 기자, 조사 과정에서 연관성이 드러난 임아무개 카메라 기자, ‘아나운서 성향 분석’ 문건에 나타난 최아무개 아나운서 등이다.

MBC는 또 열람 대상 메일·출력물에 대해서는 이를 직접 인쇄하거나 감사인 입회 하에 대상자와 함께 열람하는 방식에 대해 당사자 동의를 구했으며, 열람에 동의하지 않은 경우에는 정보 누설 금지에 서약한 감사인 2명이 열람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MBC는 “열람 대상자에게는 충분한 의견 진술 기회를 보장했다”며 “대상자라 하더라도 ‘사생활’ 관련 메일은 열람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박영춘 MBC 감사는 이번 감사로 드러난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관련자 2인과 ‘카메라 기자 블랙리스트’ 관련자 4인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 오는 5일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정기이사회에서 감사 결과에 대한 공개 보고가 이뤄질 예정이다. MBC는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필요한 검토 조사를 마친 뒤 사규에 따른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전직 임원들의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한 자료는 추후 검찰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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