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침실에서 관련 보고를 받았다.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10시20분의 상황이다. 그리고 이후 2시15분까지 행적은 모호하다. 최순실씨가 2시15분 경 검색 절차도 없이 청와대 관저로 들어왔고 직후 박근혜·최순실씨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비서관들과의 회의를 통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그리고 화장과 머리손질을 한 이후 중대본을 방문해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발견이 힘드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다시 관저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후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28일 검찰이 발표한 ‘세월호 참사 보고 시간 조작 사건’ 등의 수사 결과를 요약하면 위와 같다. 참사 이후 국회 질의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 등에서 당시 박근혜 청와대가 내놨던 해명과는 차이가 크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은 서면보고만 11차례에 이르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오후와 저녁, 총 2회 보고서를 출력해 박근혜씨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2016년 11월1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간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 - 이것이 팩트입니다’ 등을 통해 주장했던, 10시 첫 보고, 10시15분 첫 지시 주장도 거짓이었다. “참사 당일 외부인이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은 없다”던 정연국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말도 거짓이었다. 최순실씨가 청와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3월29일자. 한겨레 2면.
3월29일자. 한겨레 2면.
검찰의 발표대로라면, 세월호에 탑승했던 수백명의 승객들은 죽어가고 있었고, 당시 대통령은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청와대는 우왕좌왕하다 골든 타임을 놓쳤다. 하지만 청와대와 그 관계자들은 이를 덮고자 문서를 불법 조작하고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위증을 했다.

29일자 언론은 대체로 이 점에 초점을 맞췄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었고 최순실은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었다”고 비판했고 한겨레 역시 사설에서 “황당하고 참담하다”, “말문이 막힌다”고 개탄했다. 한국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국민일보 모두 박근혜씨가 최순실씨와 참사 당일 관저에서 회의를 했다는 점을 제목으로 뽑았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만은 달랐다.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지면에 2개 전했는데 10면 윗 보도에는 “문 정부 검찰 “성형 시술·굿판…세월호 7시간 괴담 실체 없다””는 제목을 뽑았다. 기사의 시작도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고 나온다.

3월29일자. 조선일보 10면.
3월29일자. 조선일보 10면.
반면 타 매채의 검찰 발표와 관련한 지면의 첫 기사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경향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16일 오후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청와대 관저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관저 침실에서 휴대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승객 구조의 골든타임 후에야 첫 상황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동아일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최순실씨와 회의를 했고, 최씨의 제안에 따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인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최순실씨가 당시 청와대 관저에 있었던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중앙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최순실씨와 의논한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결정했다고 검찰이 28일 밝혔다”

한겨레 “‘박근혜 청와대’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의 부실 대처를 은폐하기 위해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시각을 20분 앞당긴 오전 10시로 조작한 것으로 28일 드러났다”

한국일보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가라앉던 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둘러싼 수수께끼 일부가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3월29일자 경향신문 1면.
3월29일자 경향신문 1면.
반면 조선일보는 첫 기사에서 검찰 수사 결과에 위와 같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대신 “‘세월호 7시간’ 의혹은 2016년 말에서 지난해 초까지 이어진 탄핵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중요한 요소였다”며 “(검찰조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을 때를 제외하고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당시 박근혜씨를 둘러싼 ‘특정 인물과의 밀회’ 논란, ‘성형 시술’ 논란, ‘굿판’ 논란은 ‘괴담’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하단에 “박 전 대통령, 세월호 참사 당일 최순실과 관저서 대책회의” 제목의 별도 보도를 내긴 했지만, 이번 검찰 조사 결과 발표에서 ‘괴담’에 주목도를 더 높여 편집한 것은 조선일보가 유일하다.

또한 조선일보가 앞세운 해당 보도는 28일 이 사안과 관련해 발표된 자유한국당 논평과도 맞닿아 있다. 자유한국당 홍지만 대변인은 “검찰의 세월호 7시간 의혹 수사결과 발표에 경악한다”며 “7시간을 두고 정상적인 근무 상태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말, 정윤회 씨와의 밀회설, 종교의식 참석설, 프로포폴 투약설, 미용 시술설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나라를 뒤흔들었다”고 주장했다.

홍 대변인은 이어 “세월호 7시간을 탓하며 광화문에서 촛불을 태워 올린 그 많은 세력과 사람들은 무엇이냐”라며 “박 전 대통령은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뒤에야 참사 발생을 알게 됐고, 최순실 씨가 청와대로 오기 전까지 국가안보실장,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 지시를 한 번씩 한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았다.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을 했으면 됐지 7시간의 난리굿을 그토록 오래 벌일 일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순실 씨를 청와대에서 만난 것에 대해 ‘사전에 예약된 만남’일 뿐”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조선일보는 지난 2014년 7월18일 최보식 칼럼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에서 “세간에는 ‘대통령이 그날 모처에서 비선과 함께 있었다’는 루머가 만들어졌다”며 “대통령을 둘러싼 루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권가 정보지나 타블로이드판 주간지에 등장했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는 걸로 여겼다. (중략) 때마침 풍문 속 인물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더욱 드라마틱해졌다”고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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