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게 언론이다. 박근혜와 이명박이 감옥에 갔지만 이들을 대통령으로 만든 언론 권력은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이재용은 결국 풀려났고 대부분의 언론이 삼성의 떡고물을 받아먹으며 여전히 여론을 분탕질하고 있다. 용비어천가를 불렀던 언론의 반성 한 줄 본 적이 없다. ‘기레기’라 욕을 먹을지언정 아직까지 문 닫은 언론사 하나 없고 독자들은 떠난 지 오랜데 언론은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

언론 개혁의 핵심 과제를 짚어보자.

이명박 정부 시절 보수 언론에 던져준 특혜를 폐지하는 게 시작이다. 종합편성채널의 의무전송 채널 지정을 철회하고 황금 채널 배정 역시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사용료도 종편의 콘텐츠 가치에 맞게 조정될 것이다. 소유 제한 위반 등 태생부터 불법이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종편 미디어렙 역시 전면 점검해야 한다. 종편의 승인과 재승인 심사에서의 부정행위가 있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 종합편성채널 4사 로고.
▲ 종합편성채널 4사 로고.
지상파 방송의 독립 역시 정치권력의 선의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KBS의 경우 이사 11명 가운데 7명을 정부와 여당이 선임하고 MBC는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 가운데 6명을 정부와 여당이 선임한다. 분명히 양승동과 최승호는 김재철이나 김인규, 고대영, 김장겸 등과 다르다. 그러나 애초에 사장이 바뀔 때마다 성향과 논조가 뒤집히지 않도록 독립된 지배구조를 보장하는 게 개혁의 핵심이다.

방송 장악의 첨병 역할을 했던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5명의 위원 가운데 3명이 정부와 여당의 몫이고 무늬만 민간 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9명 가운데 6명이 정부와 여당의 추천 위원이다. 방통위의 과제는 정치적 독립과 방송의 공공성 보장이다. 위원 선임과 운영 방식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방통심의위 개혁은 공정성 심의 폐지가 시작이다. 최근 드러난 청부 심의 의혹 역시 철저한 진상 조사와 엄정한 처벌이 필요할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현안이 많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 장악과 언론 탄압에 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아직 시작도 안 됐다. 방송 평가와 재허가·재승인 조건과 기준도 손봐야 한다. KBS 수신료 인상과 함께 공영방송 정상화도 사회적 과제고 여론 집중도와 시청 점유율 기준을 개선해 여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연합뉴스의 독립성과 공정성 강화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포털 사이트의 플랫폼 공공성도 사회적 화두다.

▲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어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어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그러나 제도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언론계의 반성과 자정 노력이고 독자들의 감시와 비판이다. 기사와 광고의 결탁을 처벌할 방법은 없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했던 언론이 부끄럼 없이 “이제는 앞만 보고 뛰어라”고 낯뜨거운 사설을 늘어놓고 있다. 무죄가 아니라 엄연한 유죄 선고에 집행유예일 뿐인데도 “정경유착은 없었다”고 여론을 호도하고 “피해자를 범죄자 만들었다”며 되레 호통을 친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던 4대강 사업을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언론이 “4대강 사업을 정쟁화하지 말라”거나 “국가의 미래를 위한 백년 대계”라고 여론을 호도하지 않았다면 단군 이래 사상 최대의 ‘삽질’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KBS는 “4대강 사업은 하느냐 마느냐를 넘어 어떻게 하면 부작용 없이 수행하느냐는 차원으로 접어들었다”며 거들었다.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입수해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의혹을 보도했을 때 보수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세계일보의 대주주 통일교 재단에 대해 갑작스럽게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기자를 사찰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사장이 교체되는 과정에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박근혜가 탄핵된 이후였다. 숨길 게 많았던 박근혜는 언론 통제와 여론 조작으로 4년을 버텼으나 레임덕 국면에서야 언론에 의해 무너졌다.

▲ 지난 2011년 12월1일 TV조선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출연 방송분에서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사진=TV조선 화면 갈무리.
▲ 지난 2011년 12월1일 TV조선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출연 방송분에서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사진=TV조선 화면 갈무리.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무결점 완판녀”, “빨주노초파남보, 패션 외교” 등의 낯 뜨거운 찬사를 늘어놨던 언론이 여전히 한국 사회 여론을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이명박을 “위대한 부자”라고 칭송했던 사람이 보도 전문 채널 YTN 사장으로 있다. 지금은 웅크리고 있지만 한국 사회 기득권 세력은 다시 조중동과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하고 변화에 저항하면서 여론을 호도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 개혁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정치 권력은 언론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된다. 언론의 자정 노력 역시 기대난망이다. 요새 조중동을 누가 보냐고 하지만 여전히 보수 언론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공영 언론을 복원하는 것 못지않게 기득권 언론의 횡포를 제어하는 사회적 압박이 필요하다. 언론 개혁 없이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는다. 독자들이 바뀌어야 언론이 바뀐다. 독자들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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