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안젤라’(가명)씨가 27일 서울 서초구 서초역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이 안젤라씨의 주장을 토대로 보도한 지 20여일 만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기존 보도 이후 쟁점이었던 성추행이 일어난 시기에 대해 ‘2011년 12월23일 1시~2시 경’이 아닌 ‘2011년 12월23일 오후 5시 이후’라는 피해 당사자의 주장이 나왔다. 안젤라씨는 그 증거로 그날 5시5분과 5시37분에 정봉주 전 의원을 기다리며 렉싱턴 호텔의 레스토랑 카페인 ‘뉴욕뉴욕’에서 찍었다는 셀카 사진 등을 공개했다.

안젤라씨는 기자회견에 나선 이유에 대해 “직접적으로 나서서 말을 하지 않다보니 오해와 팩트가 아닌 부분들이 확대 재생산 되는 부분이 있었다”며 “이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확실히 설명을 하고 싶었고 실명으로 하지 못하는 부분은 송구스럽지만 양해를 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안젤라씨 측에서는 실명과 얼굴을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기자들에게 부탁했다. 기자회견은 안젤라씨의 신상을 비공개로 하기 위해 사전 이메일 신청 방식으로 진행했다. 취재 기자 외의 영상 기자, 카메라 기자는 출입이 금지됐고 안젤라씨가 기자회견을 한 이후에 현장 스케치만 가능하게 조치했다. 취재 기자들도 현장에서 안젤라씨를 핸드폰카메라 등으로 찍는 행위는 금지됐다. 

▲ 27일 서울 서초역 인근에서 열린 안젤라씨의 기자회견에 당부사항이 적혀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27일 서울 서초역 인근에서 열린 안젤라씨의 기자회견에 당부사항이 적혀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안젤라씨는 기자회견에서 “지난 20여 일 동안 저는 일관되게 2011년 12월 23일, 여의도 렉싱턴 호텔 1층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 정 전 의원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진실을 말해 왔다”라며 “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얼굴과 신원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 호소를 의심했다”고 말했다.

안젤라씨는 “정봉주 전 의원은 세간의 편견과 의심을 악용해 저를 유령 취급해 왔다”며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가장 큰 이유는, 가장 중요한 증거인 이 사건의 피해자, 즉 제 존재 자체를 밝힘으로써 최소한 기자 여러분들에게라도 제 ‘미투’가 가짜가 아니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안젤라씨는 현재 정봉주 전 의원과 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건 발생 시간’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안젤라씨는 위치 기반 모바일 체크인 서비스 ‘포스퀘어’에 남겨진 셀카 사진을 공개했다. 해당 사진에는 ‘뉴욕뉴욕’이라는 위치가 적혀있고, 2011년 12월23일 5시37분 해당 장소에 체크인하며 안젤라씨가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문구를 적은 것도 남아있었다. ‘뉴욕뉴욕’은 여의도 렉싱턴호텔(현 켄싱턴호텔)의 레스토랑 이름이다.

▲ 안젤라씨가 공개한 2011년 12월23일 렉싱턴호텔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 이 사진으로 인해 안젤라씨는 성추행 시점이 2011년12월23일 6시 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제공=안젤라 측
▲ 안젤라씨가 공개한 2011년 12월23일 렉싱턴호텔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 이 사진으로 인해 안젤라씨는 성추행 시점이 2011년12월23일 6시 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제공=안젤라 측.
이 사진에 대해 안젤라씨는 “이 기록을 통해 제가 ‘뉴욕뉴욕’을 방문해 정봉주 전 의원을 기다리고 있던 시간을 특정할 수 있게 됐다”라며 “그동안 시간대 논란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으나 실제로 12월 23일 오후 5시경 렉싱턴 호텔 내 카페에 있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그 증거를 공개하는 게 도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안젤라씨는 “여전히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제 말이 거짓이라고 주장하시려거든 저를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반드시 고소하시기 바란다”라며 “저는 수사기관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 철저히 그리고 당당하게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이후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안젤라씨는 “프레시안 보도에서 이미 밝혔듯이, 정 전 의원을 1시간 정도 기다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만난 시간은 오후 6시 정도일 것”이라며 “막상 만난 시간은 20분 정도로 짧았고, 그 이유는 정 전 의원이 만나자마자 ‘남자친구는 있냐’, ‘성형수술을 해주려고 했는데 감옥에 가게 됐다’는 말을 하면서 껴안고, 키스를 시도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봉주 전 의원은 이날 오전 BBK 사건의 재심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한 후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피해자라 주장하는 분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느낌이 정치적으로 저를 저격하는 게 아닌가”라며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고, 일단 정치적 의견 가득 담고 있고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제 기억이 조각조각은 다소 틀릴 수 있겠지만, 이미 781장 증거 경찰에 제출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안젤라씨는 “BBK 관련 정 전 의원의 행동은 굉장히 인정을 하는데, 이건 별개의 사건”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정봉주 전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판단할 몫이지만 정치인을 평가하는 중요 잣대 중 하나가 도덕성인데, ‘미투’를 정치적 공작으로 몰면서 미투를 훼손하려는데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정봉주 전 의원과 통화와 문자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27일 오후 정 전 의원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안젤라씨가 이날 자신이 정봉주 전 의원을 기다렸다는 시간대를 특정하고 성추행이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면서 정봉주 전 의원이 반박 형식으로 해당 시간대 행적을 밝힐 것인지 주목된다. 12월 23일 오후 5시 이후 행적을 가리는 것이 이번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프레시안은 지난 12월 23일 있었던 일에 대한 피해자의 일관된 증언과 주변 인물의 증언을 종합했을 때 정봉주 전 의원과 피해자가 렉싱턴 호텔 레스토랑 카페에서 만났고, 성추행 행위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봉주 전 의원은 23일 전후로 피해자를 만난 적이 없다며 성추행 뿐 아니라 만남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이후 프레시안과 정봉주 전 의원은 정 전 의원과 피해자가 렉싱턴에서 만났다는 시간을 놓고 증언과 알리바이(당일 사진)를 제시하며 공방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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