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와 구글코리아, 한겨레21이 함께하는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은 매년 우승자에게 미국 구글 본사 탐방의 특전을 주는데, 인솔자 자격으로 동행할 수 있었다. 첫 해외 출장이자 첫 실리콘밸리 방문이다. 그리고 내가 안내해야 할 두 분의 학생들까지 있다. 이번 일정에 초년생 기자가 담았을 패기는 굳이 안 봐도 상상이 가실 것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가 편리한 건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고, 취재의 벽은 높았다. 한국에서 온 초보 기자에게 취재 일정 잡기란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금방 연이 닿을 수도 있다고 했지 연이 있다고는 안 했다. 한국의 IT 미디어 기자라는 말로 섭외 총력전을 펼친 후에야 정말 일정이란 게 잡혀갔다.
실리콘밸리는 서로를 향한 신뢰와 확신으로 가득 찬 동네였다. 이 긍정이 과연 캘리포니아 날씨만의 덕일까. 그들은 실리콘밸리 사이클 안에 들어와 있다면 일단 믿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이방인인 기자의 질투를 불러냈다. 일정 기간에 만난 취재원은 “동료가 평가 미달로 회사를 떠나도 결코 그를 능력 미달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단지 회사와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곳엔 최소한 개인과 시스템에 대한 믿음, 두 가지가 공존했다. 어디서부터 오는 확신인지 짐작은 갔다. 다만 부러울 따름이었다.
믿음에 기반한 사내 문화는 직무 평가 시스템에서도 돋보였다. ‘철저한 평가 시스템’으로 알려진 실리콘밸리의 점수 체계는 한국과 많이 달랐다. 일단 상위 조직에서 실무진에 대한 실적 평가를 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평가는 모두 동료로부터 이뤄진다. 팀 프로젝트 위주의 업무 방식 특성상 가장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동료라고 믿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평가의 기준 역시 기대(expected) 였던 점이다. 일정 중 만난 각기 다른 글로벌기업 재직자들은 ‘A, B, C, D, E’가 있는 한국의 평가 방식과는 달리, 그곳엔 △아주 잘함 △기대보다 훨씬 잘함 △기대보다 잘함 △기대만큼 함 △기대보다 못함’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단, ‘기대보다 못함’이 이어질 경우 하루아침에 책상이 비워진 사례는 있었다는 말을 했다.
실리콘밸리에는 흔히 명과 암이 있다고 한다. 주로 좋은 면이 먼저 부각된 곳에서 나온 말이다. 4박 6일간의 짧은 일정 덕에 우리는 해가 채 지기 전에 그곳을 떠나왔다. 밝은 면만 실컷 보고 온 셈이다. 솔직히, 그래서 실컷 부러웠다. 무엇보다 그곳의 인프라와 시설, 나와 내 동료에 대한 완벽한 신뢰, 능력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같은 것들이 특히 부럽게 느껴졌다. 개인의 능력이야 뭐 그리 다를까. 이런 것들을 느끼며 취재 보따리를 여몄다. 이제 다시 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