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제작 회사에서 일하는 A씨는 조달청 ‘나라장터’ 사이트를 꼼꼼하게 살핀다. 온라인 동영상을 통한 정책 홍보가 주목받으면서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홍보 영상 제작 입찰 공고를 많이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고를 살필 때마다 ‘찜찜함’을 느낀다. 사업 신청서를 쓸 때 업무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학력’과 ‘출신 학교’ 이름을 써야 한다. 입사지원서도 아니고 동영상 제작 계약을 하는 회사 직원들의 구체적인 학력을 요구하는 점은 의문스럽다고 한다.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는 정부 기조에도 맞지 않다.

A씨는 미디어오늘에 “업무 담당자의 학력보다는 과거 어떤 작업을 했는지가 더 중요한데, 경력사항에 학교 이름과 학력을 왜 넣도록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한 정부부처의 홍보영상제작 입찰 공고 지원서.
▲ 한 정부부처의 홍보영상제작 입찰 공고 지원서.

실제 조달청 ‘나라장터’ 사이트에 올라온 ‘동영상 입찰’ 공고 내역을 확인한 결과 현재 진행 중인 입찰 공고 다수가 참여 인력 전체의 출신 대학을 명시하도록 강제하는 등 불필요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영상광고물 제작’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영상기록물 제작 △대구광역시 시정홍보영상 제작 △서울특별시 교육청 공익 영상광고 제작 용역 등의 신청서 작성 과정에서 ‘전문인력 보유현황’ 또는 ‘참여인력 이력사항’ 항목을 통해 회사 구성원들의 최종학력과 학교명, 전공을 쓰도록 하고 있었다.

신청서에 최종 학력과 대학 이름을 쓰도록 한 기관은 실제 심사에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하는 것일까? 해당 기관 관계자들은 최종학력과 전공은 전문성을 가늠하는 데 필요한 참고사항이며 대학 이름을 쓰도록 한 건 ‘관행’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통일부 관계자는 “영상 부문의 사업이라 영상 관련 전공자의 경우 전문성이 있다고 보는 근거로 쓰는 차원에서 기재하도록 한다”면서 “대학 이름을 쓰게 하는 건 관성”이라고 밝혔다.



▲ 영상제작회사에서 일하는 A씨는 계약 입찰 때 출신학교를 써야 하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gettyimagesbank
▲ 영상제작회사에서 일하는 A씨는 계약 입찰 때 출신학교를 써야 하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gettyimagesbank

대구광역시 관계자 역시 “관련 학과를 졸업했는지 여부는 본다. 물론, 최근에 관련 업무 경력만 있으면 전문기술 인력으로 보기 때문에 전공이 심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면서 “(학교 이름을 쓰는 건) 서류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점수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있는 걸 그대로 해서 그런 거 같은데 미처 파악을 하지 못했다. 심사에 반영되는 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A씨는 “일반적으로 관련 경력이 있는 구성원들을 갖춘 회사가 경력을 공개하고 지원하기 때문에 전공과 학력을 쓰는 것도 의미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소수이긴 하지만 종료된 입찰 공고 가운데는 참여 인력의 학력 관련 사항을 묻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바이럴 홍보영상’ 공고에는 개별 참여 인력의 학력, 출신학교, 전공이 아닌 자격증 보유 여부만 물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조금 더 세심하게 챙겼으면 좋았을텐데, 전례를 따르다보니 그랬던 것 같다.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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