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한겨레21 편집권 침해 논란에 대해 “양상우 대표이사와 김종구 편집인의 편집권 침해가 없었다”는 사내 감사 결과에 대해 한겨레 구성원 70여명이 비판 성명을 내놓은 데 대해 해당 감사를 진행했던 이상근 전 한겨레 감사가 지난 26일 감사 과정과 입장을 밝혔다.

앞서 한겨레 구성원들은 “편집권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조사, 그에 따른 판단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며 “이번 감사 보고서가 앞으로 한겨레에서 편집권을 논의하는 데 하나의 ‘선례’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보고서에 따라 경영진이 또다시 같은 방식의 편집권 침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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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 전 감사는 “성명서 발표자들은 대표이사에게 편집권 침해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하라고 요구했는데 애초 편집권 침해 논란이 발생했을 때와 같은 주장”이라며 “성명서는 감사 결과를 통째로 부정하고 있는데 애초 감사를 청구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쯤 되면 사실 관계를 떠나 자존심 싸움이 된 모양새”라며 “집단의 위력을 내세워 굴복시키겠다는 힘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과연 이런 행태가 한겨레다운 모습인가”라고 비판했다.

▲ 지난해 11월 발행된 한겨레21 1186호 표지.
▲ 지난해 11월 발행된 한겨레21 1186호 표지.

논란이 됐던 기사는 지난해 11월 발행된 한겨레21 표지이야기 기사 2건(“박근혜 때도 기업 보수단체 거액 지원 계속돼”, “청와대·국정원·대기업 삼위일체로 지원”)이다. LG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통하지 않고 친정부단체에 직접 자금을 지원한 물증을 공개한 보도였다. 이 보도에 양상우 대표 등 한겨레 경영진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것이 일부 사원들의 주장이다.

한겨레 감사는 지난해 12월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지부의 감사 요구로 외부 언론 전문가 3인 자문 등을 거쳐 지난 5일까지 감사를 진행했다. 한겨레는 이 감사 보고서를 지난 19일 구성원들에 공유했다.

이 전 감사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한겨레가 대승적으로 편집권 독립을 위한 시스템을 보완하고 편집권 문제에 대한 공감과 신뢰의 폭을 넓히는 데 힘을 모으길 진심으로 바랐고, 감사 결과 보고서 말미에 그런 권고 사항을 분명히 적시했다”며 “하지만 그런 기대와 충정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고 했다.

실제 이 전 감사는 감사보고서에서 편집권 독립을 위한 사규의 정비·운영, 토론을 통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한겨레 편집 규정에는 편집위원회의 관련 사항을 정하고 있지만 사문화된 상태라 이의를 제기할 통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진지한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서로 공격하면서 내부 분열을 키우는 데 몰두했다고 감사는 지적했다.

이 전 감사는 감사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겨레 구성원들이 앞선 성명에서 “편집권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조사, 그리고 그에 따른 판단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고 비판한 데 대해 이 전 감사는 “편집권 침해 결과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는 정당한 것이었는데 그런 기대를 배신했다는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부실 감사의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감사는 감사 결과를 두고 일제강점기 이후 편집권에 대한 역사적 논의 과정, 한겨레 20년 사사, 창간 당시 발기 선언문, 편집권에 관한 단체협약 체결의 근거가 된 통합특위보고서, 헌법재판소 판례, 사내외 사례 등 편집권에 대한 논의들을 심층적으로 검토한 결과라고 밝혔다. 또한 모든 당사자를 조사했고 외부 언론 전문가에게 자문까지 받아 도출한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감사는 이번 감사를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그는 “감사가 양상우 대표이사와 같은 대학 선후배라 사장에게 면죄부를 주고 회사를 그만뒀다”는 미디어오늘 보도 등에 대해 “참으로 말문이 막힌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간단하다. 질렸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감사는 “사생결단식으로 삿대질하는 핏대선 눈들이 지겨웠기 때문”이라며 “대표이사와는 한겨레 입사 전에는 일면식도 없었고, 입사 후에도 긴장 관계이면 긴장 관계였지 단 한 번도 선후배의 아름다운 관계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 지난 2006년 1월부터 사용한 한겨레 제호.
▲ 지난 2006년 1월부터 사용한 한겨레 제호.

이 전 감사는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설명을 붙였다. 한겨레 구성원들이 성명을 통해 “김종구 편집인으로부터 기사 축소 요구”, “대표이사는 편집장을 불러 기사 축소·축소 지시”를 받았다고 했지만, 이 전 감사는 이 과정을 “기사 수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의견 제시나 설득이 어떻게 ‘지시’와 동의어인가”라며 “(편집장에게) 지시에 상응하는 아무런 강제 조치나 불이익이 없었다”고 했다.

한겨레 구성원들은 “한겨레21이 LG 비판 기사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전 감사는 이에 대해서도 “담당 기자나 편집장 등 개별 객체가 아니라 부서 전체가 편집권 침해의 피해자가 된 듯이 개인에서 집단으로 치환시키는 돌연변이 어법”이라며 “편집장 한 명만 편집인이나 대표이사로부터 기사에 대한 의견을 들은 것이 팩트의 전부인데 한겨레21 부서 16명 전체를 뭉뚱그려 피해자로 둔갑시켰다”고 비판했다.

한겨레 구성원들이 대표이사의 편집권 침해 인정을 요구하며 “대표이사는 끝까지 이 작은 요구조차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이 전 감사는 “어떻게 한겨레에서 대표이사가 편집권 침해를 인정하는 것이 ‘작은 요구'에 불과한가”라며 “만약 편집권을 침해했다고 그토록 확신한다면 한겨레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태이므로 당연히 사장 퇴진을 요구해야 되는 것”이라며 한겨레 구성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 전 감사는 “단체협약에 명시된 편집권 규정에 따라 구성원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이 결정한 감사 청구조차 스스로 부정하고, 상법과 사규에 따라 설치된 독립적인 감사의 감사 결과도 부정하는 듯한 주장은 무정부주의와 다름없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일지라도 조직의 정당한 절차를 거쳐 공적 기구가 내린 결론을 수용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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