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불거진 ‘한겨레21’ 편집권 침해 논란에 대해 한겨레 감사가 “양상우 대표이사와 김종구 편집인이 편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은 것에 한겨레 기자를 포함한 구성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한겨레 사원 70여 명은 23일 성명을 통해 “편집권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조사, 그리고 그에 따른 판단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며 “우리는 이번 감사 보고서가 앞으로 한겨레에서 편집권을 논의하는 데 하나의 ‘선례’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보고서에 따라 경영진이 또다시 같은 방식의 편집권 침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됐던 기사는 지난해 11월 발행된 한겨레21 표지이야기 기사 2건(“박근혜 때도 기업 보수단체 거액 지원 계속돼”, “청와대·국정원·대기업 삼위일체로 지원”)이다. LG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통하지 않고 친정부단체에 직접 자금을 지원한 물증을 공개한 보도였다. 이 보도에 한겨레 경영진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것이 일부 사원들의 주장이다.

한겨레 감사는 지난해 12월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지부의 감사 요구로 외부 언론 전문가 3인 자문 등을 거쳐 지난 5일까지 감사를 진행했다. 한겨레는 이 감사 보고서를 지난 19일 구성원들에 공유했다.

▲ 지난해 11월 발행된 한겨레21 1186호 표지.
▲ 지난해 11월 발행된 한겨레21 1186호 표지.

한겨레 사원들은 성명에서 “이번 사태에서 분명한 사실은 한겨레21이 LG 비판 기사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압력을 받았다는 것”이라며 “해당 기사는 쓰이기도 전부터 김종구 편집인으로부터 기사 축소 요구를 받았고 담당 기자는 마감 시간보다 일찍 기사를 작성한 뒤 편집인의 검토를 받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알려진 바대로 대표이사는 한겨레21 마감일에 밑줄을 그어가며 기사를 품평하고 편집장에게 표지 교체를 당부하는 등 개별 기사를 상대로 한 경영진의 지속적인 압력이 있었다”며 “한겨레 대표이사는 경영의 책임자이면서 인사권자다. 기사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나름의 ‘선의’가 광고주 등 자본의 이해와 맞물리면, 개별 기사에 대한 대표이사의 의견 제시는 기자들에게 압박으로 작용해 편집권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또 “이번 사건에서 대표이사는 편집인을 통해 대기업의 기사 수정 요청을 전달 받았고 편집장을 직접 불러 기사 축소·수정 지시를 했다”며 “담당 기자와 편집장이 압박을 받은 일련의 과정은 ‘건전한 토론’이 아닌, 특정 기업을 비판하는 기사를 훼손하려는 편집권 침해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표이사가 편집권 침해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의 의지를 보여달라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요구사항이었다”며 “하지만 대표이사는 끝까지 이 작은 요구조차 외면하고 있다. 대표이사는 편집권 침해를 인정하고,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감사는 감사 보고서를 통해 “한겨레신문에서 편집권은 편집인 또는 기자에게 독점적, 배타적으로 부여되는 법적 권리라고 볼 수 없고, 오히려 발행인, 편집인, 편집국장, 기자들이 공유하는 권리”라며 “대표이사가 편집장에게 표지이야기의 함량 미달을 지적하고 기사의 품질 제고를 요청한 것은 회사의 모든 업무에 대한 총괄 책임을 지는 대표이사로서 부적절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감사는 또 △대표이사가 편집장에게 표지이야기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동기가 계획적이거나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우발적으로 표지이야기에 대한 의견이 제시된 점 △의견 제시한 내용을 기사에 반영하도록 강요하거나 지시했다기보다 편집장의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논의나 설득 수준이었다는 점 △대표이사는 표지 교체 등에 대한 고심을 당부하면서도 결정을 내리는 것은 편집장의 몫이고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면서 편집장의 편집권을 존중했다는 점 △표지이야기가 교체되지 않은 채 예정대로 발행됐다는 점 등의 사유를 들어 양 대표의 편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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