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을 심리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선고 3개월 전 한 건설업자의 뇌물죄엔 “사라져야 할 관행”이라며 단호한 엄벌의지를 나타내 중형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과 동일한 요구형 뇌물 사건인데다 뇌물 액수도 0.3%에 미치지 못한 점에 비춰 이 부회장에게 이중잣대를 적용했다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합의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23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배임수재·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A건설 현장소장 함아무개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5천만원의 추징금을 명령했다. 2017년 2월5일 이재용 부회장의 2심 선고가 열리기 3개월 전이다.

▲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석방될 당시 모습.ⓒ민중의소리
▲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석방될 당시 모습.ⓒ민중의소리

함씨는 하도급 업체 등과 공모해 2015년 1~10월 ‘수서~평택 고속철도 2공구’에 대한 노반신설공사를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수퍼웨지공법’으로 진행하겠다고 속여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182억 원의 공사대금을 타낸 혐의를 샀다.

이 과정에서 함씨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한국철도시설공단 관리자 박아무개씨 등에게 2014년 5월부터 1년7개월 간 1200만 원의 뇌물을 지급했다. 1·2심 재판부 모두 함씨의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정 판사는 선고를 하면서 “이 사건을 심리하면서 든 생각은 '도대체 우리 공사현장이 이렇게 오염됐는가'였다”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나중에 어떻게 잘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뤄진 행위들이 이런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 판사는 또한 피고인들을 향해 “수없이 많은 접대와 상납구조가 이뤄지는 것 자체가 도대체 이 현장만인지 우리나라 토목현장 모두가 이런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라며 “뇌물도 자동차를 넘겨받는 식으로 이뤄지는데 어떻게 이런 식의 범행이 이뤄질 수 있는지”라며 탄식했다.

정 판사는 ‘수동적 뇌물’이라거나 ‘업계 관행’이라는 함씨 측 주장도 일축했다. 함씨의 판결문엔 “상급업자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업계에서 돈을 주고 받는 것은 관행적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관행은 사라져야 할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판사는 발주처, 시공사, 하청업체 등이 뇌물을 주고 받는 불법 관행에 대해서도 ‘검은 거래’라고 칭했다. 정 판사는 또한 함씨에 대해 “진지한 반성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형량 참작 사유를 밝혔다.

이 같은 엄벌의지는 3개월 후 열린 이재용 부회장 2심 선고에서 보여준 태도와 상반된 모습이다.

정 판사는 ‘대통령 요구에 의해 수동적으로 뇌물을 지급했다’는 이 부회장 주장을 감형 사유로 받아들였다.

함씨의 범행엔 ‘사라져야 할 업계 관행’이라고 비판했지만 이 부회장 사건에 대해서는 ‘정경유착 뇌물’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검이 “재벌 총수와 정치권력 간의 검은 거래를 ‘뇌물죄’로 단죄하기 위한 자리”라고 주장했으나 정 판사는 정경유착 사건이라 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정 판사는 함씨 사건에서 외제차를 이용한 뇌물 상납에 대해 “차를 주고 받고, 넘겨 받고 어떻게 이런 식의 범행이 이뤄질 수 있는지 참…”이라고 언급했다. 정 판사는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에게 승마 지원이라는 합법적 계약을 가장해 뇌물을 준 혐의를 인정했지만 가중처벌 사유로 적용하지 않았다.

정 판사는 ‘경영권 승계 작업을 알지 못한다’거나 ‘승마 지원에 대해 보고받거나 지시하지 않았다’는 이 부회장의 범행 부인 태도도 꾸짖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 및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특검 및 삼성 양측이 상고한 ‘삼성 뇌물 사건’은 지난 8일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에 배당돼 법리검토가 진행 중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