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심의위원’이 아닌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한 방송사 담당자가 자사 기사의 문제를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방통심의위에서는 지난해 김장겸 체제 때 MBC에서 사측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내보낸 보도 7건에 대한 의견진술이 진행됐다. 방통심의위에 1년 가까이 공백이 이어지면서 심의가 늦어진 탓에 김장겸 체제 때 보도에 대한 심의를 최승호 사장 체제의 MBC가 받은 것이다. MBC의 의견진술자로는 보도 당시 해직기자였던 박성제 MBC 취재센터장이 출석했다.

지난해 4월24일 MBC 뉴스데스크의 “‘언론부역자’ ...명단 작성자 고소” “정파적 집단의 언론인 손보기 협박” 리포트가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당시 MBC는 언론노조가 발표한 언론 부역자 명단에 반발하면서 △사안과 무관한 언론노조의 통합진보당과 정책협약 체결 사실을 강조하고 △북한 관련 영상을 내보내고 △‘부역자’라는 용어가 북한에서 쓰는 용어라고 주장하는 등 언론노조에 ‘종북’ 이미지를 덧씌웠다.

▲ 2017년 4월24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 2017년 4월24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또한 이날 보도에 사실관계가 틀린 점도 심의 대상이었다. 당시 언론노조는 모든 대선 후보에게 정책제안서를 전달했지만 MBC는 문재인 후보에게만 전달한 것처럼 왜곡했다. 또한 언론노조가 통합진보당과 정책협약을 맺은 때는 19대 총선이지만 MBC는 지난 대선 때라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는 반론을 듣지 않은 채 조갑제 등 MBC 논조에 우호적인 인사들의 멘트만 내보냈다.

이날 보도 외에도 △문재인 정부가 경영진 교체를 압박한 것이 5공 군사정권을 닮았다는 내용의 보도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착수 및 기간 연장을 비난하는 복수의 보도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 발부 및 수사에 반발하는 복수의 보도 △‘MBC정상화 시민행동’을 ‘종북’단체처럼 부각한 보도 △언론노조가 김장겸 사장에게 폭력적 행위를 했다는 내용의 보도 등이 심의에 올랐다.

박 센터장은 “(언론부역자 발표를 비난하는) 기사를 쓴 기자로부터 진술서를 받았다”면서 “처음에는 공정성을 갖추려고 노력했지만 데스크가 두 번 세 번 고쳐서 결과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뉴스가 됐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 2017년 상반기 보도된 MBC의 뉴스 사유화 소지가 있는 리포트.
▲ 2017년 상반기 보도된 MBC의 뉴스 사유화 소지가 있는 리포트.

박 센터장은 “이 기사의 데스킹을 본 부장이 부역자 명단에 있었다”면서 “그래서 언론노조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내용을 넣도록 지시하지 않았나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MBC 정상화 시민행동’에 이름을 올린 단체 소속 인물의 남편까지 언급하며 종북 성향을 강조한 보도와 관련해 박성제 센터장은 “현안과 무관한 것을 묶어 종북으로 몰아가는 보도”라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보도가 나갔다고 생각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기사를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몇몇 심의위원들은 김장겸 체제 MBC에서 벌어진 문제를 현 사측이 제재 받는 데 대해 고민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심의 과정에서 “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나” “의견진술자로서 소회” 등 평소와 다른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박 센터장은 “선처를 해달라고 부탁드릴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저와 관계없는 일이니 엄벌을 내려달라고 할 생각도 없다”면서 “근무하지 않았을 때 벌어진 문제지만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 회의. 왼쪽부터 박상수 위원, 심영섭 위원, 허미숙 소위원장, 전광삼 상임위원.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 회의. 왼쪽부터 박상수 위원, 심영섭 위원, 허미숙 소위원장, 전광삼 상임위원.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전광삼 상임위원은 “그러면 앞으로는 사측 입장을 다룬 보도를 안 할 건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성제 센터장은 “사측의 입장을 보도하더라도 MBC가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반론을 공정하게 다루는 게 공영방송으로서의 의무”라고 답했다.

이날 방통심의위 방송소위는 언론노조의 언론부역자 명단 발표에 대해 사실과 다른 일방적 입장을 전달한 보도와 ‘MBC 정상화 시민행동’ 소속 일부 단체의 이력을 부각해 ‘종북’이미지를 덧씌운 보도 등 2건을 법정제재인 ‘주의’로 의결해 전체회의에 건의했다. 법정제재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 때 감점이 되는 중징계다.

반면 다른 5건에 대해서는 구속력이 없는 행정지도 또는 ‘문제없음’ 결론이 나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