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야마’를 정해놓고 기사를 쓴다는 말이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게 아니라 이미 주제를 정해놓고 “지적이 나온다”라는 말로 자신의 논리를 펼쳐나가는 기사다. 나쁜 기사의 대표적인 유형 중 하나다.

3월21일자 ‘“남북이 따로 살든”...文 대통령의 反통일 발언 논란’이라는 조선일보 기사를 보자.

조선일보는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한 발언을 조명한 보도를 내놨다.

▲ 3월21일 조선일보 홈페이지를 통해 보도된 ‘“남북이 따로 살든”...文 대통령의 反통일 발언 논란’ 기사.
▲ 3월21일 조선일보 홈페이지를 통해 보도된 ‘“남북이 따로 살든”...文 대통령의 反통일 발언 논란’ 기사.
조선일보의 주장은 이렇다. 헌법 제66조 3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나와 있는데 문 대통령의 발언은 반통일적 발언이고 통일을 지향해야하는 대통령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4명의 인터뷰이를 내세워 문 대통령 발언이 반통일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은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분단 상태에서의 평화를 얘기하는데 이러한 평화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로 볼 수 있느냐”라며 “통일이 돼야만 진정한 평화가 온다. 그래서 평화통일이라는 표현보단 통일평화라고 해야 맞는 말”이라고 말했다. 조영기 연구회장은 “통일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문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을 살펴보면 통일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이다”고도 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도 “북한은 우리 특사단에게 체제보장과 군사위협 제거를 요구했다. 체제 보장이란 결국 내정불간섭과 불가침”이라며 “북한의 요구를 담다 보니 헌법 상 통일의 의무에 반하는 ‘따로 살든’ 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과거 박근혜 정부가 북한 체제 붕괴를 전제로 해서 ‘통일대박’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을 때 통일펀드를 모금하며 분위기를 띄운 조선일보의 모습를 떠올리면 반통일이라며 문 대통령의 발언을 지적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기사 완결성으로만 봐도 헛점 투성이다.

우선, 문 대통령 발언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준비위원회에 지시를 내리는 현장에서 나온 내용이다.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이라는 발언의 바로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회담들과 앞으로 이어질 회담들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의 핵과 평화 문제를 완전히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전체 발언의 요지는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이어질 북미정상회담의 최종 목표는 한반도 평화 정착에 있다는 것이다.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이라는 말은 통일 이전 선행되어야 할 문제로 핵 문제를 해결한 뒤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걸 강조하는 말에 가깝다.

이미 문 대통령은 평화통일의 대원칙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6일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통일은 쌍방이 공존공영하면서 민족공동체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도 기존정부와 달리 북한 붕괴 불원, 흡수통일 및 인위적 통일 불추구 등 ‘3-NO’ 입장이 문재인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한을 화해협력의 대상으로 존중하고 궁극적으로 남북간 합의에 따른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통일에 관한 문 대통령의 입장 등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봤다면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에서 나온 발언의 한 대목을 따와서 반통일적 발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 지난 1월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청와대
▲ 지난 1월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청와대

더욱이 조선일보가 인터뷰한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북한 체제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에 무게를 두고 활동을 펼치는 단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정착보다는 북 체제를 흡수 통일의 대상으로 보면서 제재와 압박을 해야 한다는 보는 건데 해당 단체 소속의 인사가 문재인 대통령 발언의 한 대목만을 놓고 반통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60일 전까지만 해도 압박 제재를 주장하는 보도를 일관되게 내놨던 조선일보가 남북정상회담 뿐 아니라 북미정상회담으로까지 성사되는 국면에서 어떻게든 트집을 잡으려다 ‘문 대통령이 반통일적 발언을 했다’라는 억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 기자가 질의하고 청와대 관계자가 답한 내용을 소개한다.

기자 :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이라는 대통령 발언은 헌법에 나온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대통령의 의무 내용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청와대 관계자 : “누가 그런 지적을 하죠?”

(주변 기자들 하하하)

기자 : “제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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