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19일과 20일 잇따라 삼성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19일은 총 7꼭지, 20일은 총 8꼭지나 할애했다. 하루 SBS 8뉴스의 전체 길이가 50여분인데, 19일과 20일 각각 20분이 넘는다. 상당히 이례적인데, 그만큼 SBS는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SBS는 해당 보도 꼭지 제목을 ‘끝까지 판다’라고 정했다. 탐사보도를 통해 이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들어가 있지만, 탐사보도팀 기자 중 ‘판다’를 닮은 사람이 있어서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는 뒷얘기도 있다.

SBS 3월20일자 뉴스화면 갈무리.
SBS 3월20일자 뉴스화면 갈무리.
① 보도의 핵심은 무엇인가?

SBS의 보도는 지난 2월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내린 판결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SBS 김현우 앵커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이재용 부회장은 2심에서 집행 유예로 풀려났다”며 “재판부가 그렇게 판단한 결정적인 근거 가운데 하나는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승계 작업 자체가 없었으니까 권력자에게 청탁할 이유도 없었다는 논리”라고 말했다.

이 설명을 앞에 배치한 이유는 이후 이어지는 SBS 보도 내용이 재판 결과를 부정하는, 즉 삼성의 편법적인 3세 승계에 국가가 어떻게 직간접적인 도움을 줬는지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19일 보도는 에버랜드가 보유한 땅의 공시지가 변화를 근거로, 20일 보도는 해당 땅에 대한 국민연금의 어이없는 자산평가를 근거로 제시한다. 오늘도 추가 보도가 예정되어 있지만 이틀간의 보도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이 잘못됐다는 것임은 분명하다.

SBS 3월20일자 뉴스화면 갈무리.
SBS 3월20일자 뉴스화면 갈무리.
② SBS 보도 프리퀄

SBS 보도 내용은 삼성의 편법적인 3세 승계 과정을 돌아보면 더 이해하기 쉽다. 에버랜드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기업을 승계하는 과정에 핵심으로 등장해왔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이건희 회장이 정정당당하게 상속세를 내지 않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기업을 상속하려 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1995년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여억원만 승계를 받았다. 물론 이에 대한 상속세는 냈다. 그리고 이 돈을 종잣돈으로 편법승계가 시작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 돈을 활용해, 이건희 회장 등으로부터 그룹의 비상장 기업 주식을 저렴하게 사서, 상장 후 거액으로 파는 방식을 이용해 재산을 불려나갔다.

그리고 그 절정이 바로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매수였는데, 전환사채란 사채로도 활용해 이자수익을 얻을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주식으로 맞교환 할 수도 있는, 당시로선 생소한 금융상품이었다. 에버랜드는 바로 이 전환사채를 7700원에 발행했고 이재용 부회장은 발행량의 절반을 사들여, 당시 최소 8만원 가량의 가치를 갖고 있던 에버랜드 주식으로 전환했다. 에버랜드로서는 주당 8만원 가량을 받고 팔 수 있는 주식을 고작 7700원에 판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손해를 본 셈이지만, 덕분에 이재용 부회장은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됐다.

SBS 3월19일자 뉴스화면 갈무리.
SBS 3월19일자 뉴스화면 갈무리.
③ SBS의 19일 보도 내용

이건희 회장이 아무리 그룹 내 강력한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주식회사인 에버랜드가 이런 헐값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근거 없이 불가능해 보인다. SBS 보도는 바로 이 ‘근거’가 무엇인지 드러낸다.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발행한 1994년에서 1995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에버랜드가 소유한 토지의 공시지가가 폭락한 것이다.

이병희 SBS 기자는 “94년 당시 에버랜드가 있는 전대리의 표준지 공시지가는 9만8천 원. 같은 시기에 서울랜드는 11만5천 원, 한국민속촌은 9만2천 원.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며 그런데 “바로 이듬해인 95년에는 3만6천 원으로 폭락했다”고 보도했다. 땅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60%나 폭락한 것이다.

공시지가는 삼성이 정할 수 없다. 현 국토교통부가 조사하고 평가한다. 그래서 시세에 비해 공시지가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이병희 기자는 “공시지가는 국가가 각종 세금과 부담금을 부과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시세보다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며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폭락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럼 이 보도에서 의문이 남는다. 대체 누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이익에 맞도록 공시지가를 조정한 것일까? 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꼼수 승계임을 알면서도 이를 도왔을까? 과연 국가가 삼성의 편의를 봐준 것이 이번 한 번 뿐이었을까?

SBS 3월19일자 뉴스화면 갈무리.
SBS 3월19일자 뉴스화면 갈무리.
④ 두 번째 스모킹 건

물론 한 번이 아니었다. 2014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갑자기 쓰러졌다. 삼성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이 삼성의 주인이 되기에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주식이었다.

20일 경제개혁연대는 ‘이재용 판결 전망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이 부회장은 승계를 위해 자신이 가진 제일모직과 삼성SDS 지분을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으로 전환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며 “자신이 지분을 보유한 제일모직과 삼성전자의 주식을 보유한 삼성물산을 합병하면서 합병비율을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가져가는 것이 삼성전자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옷 만들고 놀이동산 운영하는 제일모직과 아파트 짓는 삼성물산이 합병하는 황당한 상황도 이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두 회사를 합병하는 것도 이상한 상황인데 더 이상한 것은 제일모직 1주의 가치를 삼성물산 3주 정도로 취급해줬다는데 있다. 즉 삼성물산 주식이 10주 있었다면, 제일모직 3주의 가치밖에 안됐다.

당시 삼성물산의 자산은 제일모직의 세배를 넘는다는 평가가 나왔으며, 2014년 삼성물산 주가도 7만원대에 이르는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합병 얘기가 흘러나오고 삼성물산 주가는 5만원대까지 떨어졌으며, 이는 놀랍게도 삼성물산이 기행을 통해 자초한 일이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주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가치가 낮을수록 좋았다.

때문에 제일모직의 가치는 올리고 삼성물산의 가치는 떨어뜨려야 했다. SBS의 19일 보도는 바로 이때 에버랜드의 필지 표준지가 1곳에서 7곳으로 늘어났고, 분할된 표준지에서 땅값이 각각 2배에서 5배가량 늘었음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이재용 부회장의 이익을 위해 공시지가를 조정했다는 것이다.

SBS 3월19일자 뉴스화면 갈무리.
SBS 3월19일자 뉴스화면 갈무리.
⑤ SBS의 20일 보도 내용

‘누군가’를 찾기 위한 결정적인 단서는 국민연금의 이상한 움직임이다. SBS는 “합병 전 제일모직이 보유한 부동산 장부가는 에버랜드 땅을 포함해 9천1백억 원 규모였고 이 가운데 영업과 직접 관련이 없어서 회계에서 따로 분류된 토지는 82억 원 규모였다”며 “그런데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의뢰해 제일모직 기업 가치를 평가한 회계법인은 실제 영업에 쓰이는 에버랜드 땅 등을 비영업용 토지 항목에 넣었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중복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에버랜드의 가치를 추산할 때 에버랜드의 땅까지 한 번 계산했는데, 별도로 부동산 가치를 계산할 때 또 한 번 이 땅에 대한 가치를 매겼다는 것이다. 제일모직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제일모직의 부동산 가치를 1천410억 원으로 평가했던 상황에서 국민연금 리서치팀은 에버랜드의 땅을 1조8500억, 10배가 넘게 평가한다. 그리고 이후, 땅의 가치는 더 올라가 3조2060억원까지 올라간다는 것이 SBS의 보도다.

이 믿기지 않는 차이는 계산 방식에서 비롯됐다. 해당 토지의 68% 이상이 임야로 정부 허가 없이는 개발이 불가능한데 아직 허가도 안 난 땅을 곧 허가가 나서 개발이 될 것처럼 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 산정 중에 당시 폭등한 공시지가도 반영됐다.

국민연금이 만약 제일모직의 지분을 갖고 있었으면 이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이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려 큰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주주였다. 애써 국민연금이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가치를 떨어뜨려 손해를 본 셈이다.

⑥ 받은 언론과 받지 않은 언론

통상 한 언론이 단독보도와 같은 중요한 보도를 내보내면 다른 언론들이 추가 취재에 나서거나 받아서 보도하곤 한다. 포털에서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면, 몇몇 작은매체들이 SBS의 보도 내용을 인용 보도하거나 20일 박주민 의원과 선대인 용인시장 예비후보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하거나, 삼성물산 측의 반론을 보도했다. MBC, CBS 라디오 등에서도 이와 관련된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언론사엔 관련 보도가 없다. 이재용 부회장의 편법 경영승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인데다가 국민연금의 수상한 행동은 이미 여러 갈래로 입증됐고 이로 인해 수감된 사람도 있는 만큼, 새로운 것은 없다는 평가를 내렸을 수도 있다. 다만 SBS의 보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을 기소한 특검팀 관계자가 이 사안은 “당연히 공소사실에 포함됐어야 할 사안”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증거를 제시한 보도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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