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대 뇌물과 350억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22일 예정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아직도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한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개인 비리를 생각해보면 납득되지 않는다. 과거 최고 권력자의 뻔뻔함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검찰 수사는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 어떻게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사유화했는지 보여줬다. 검찰은 “다스는 누구 것인가”라는 국민 질문에 “이명박 것”이라는 명료한 답을 내놨다. 이전 정부와 다르게 청와대의 수사 개입이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 전 대통령 비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2007년 12월19일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서울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함께 기뻐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 연합뉴스
▲ 2007년 12월19일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서울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함께 기뻐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 연합뉴스
그러나 검찰에 책임은 없는가 묻는다면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검찰은 2007년 대선 직전 BBK 의혹에 대해 “BBK는 이명박 소유가 아니며, 옵셔널벤처스 주가 조작 사건에도 이명박이 공모한 증거가 없다” “다스를 이명박 소유로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7년과 2018년 수사는 180도 다르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MB는 ‘살아있는 권력’이었다. 지금은 ‘죽은 권력’이다. 이처럼 권력이 누구냐에 따라 수사 의지가 뒤바뀌는 것은 검찰의 생존법이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 검찰은 피의 사실을 공표하는 등 망신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MB 국가정보원의 검찰 수사 개입 의혹이 최근 제기되기도 했지만 당시 이인규·우병우·홍만표 등 ‘정치 검사’의 행태는 입길에 오르내렸다.

이번 수사라고 다를까. 이와 관련해 이재용 서울경제 사회부 차장의 21일자 칼럼이 눈길을 끈다. 이 차장은 ‘MB 수사에서 드러난 검찰의 오점’이라는 칼럼에서 “인신 구속에 집착해 피의자의 인권과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는 수사 행태도 여전히 논란거리”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주 이 전 대통령 측근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재판에서 재판부는 “김 전 기획관을 구속한 지 한 달 반이 지났는데도 아직 수사 기록을 정리하지 않았는데 그럴 거면 왜 그렇게 서둘러 구속했느냐”고 검찰을 질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차장은 “피의 사실을 언론에 공표해 수사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피의자를 망신 주는 행태도 되풀이되고 있다”며 “이번 수사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5억원을 수수하고 다스 법인카드로 4억원을 사용했다는 등의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9년 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것과 판박이”라고 지적했다. 

이 차장 역시 “검찰이 두 전직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파헤쳐 법의 심판대에 세운 성과는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평가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검찰의 권력 지향적 속성과 피의자 인권침해, 피의 사실 공표 등 오점도 일부 드러났다”고 말했다. 

검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론도 2009년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장면을 실시간 생중계한 언론들은 이번에도 드론과 헬기를 띄웠다. 이 전 대통령 자택에서 검찰까지 10분 거리의 이동 상황은 생중계됐다. 

국민일보는 지난 17일자 조간 1면에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서울 논현동 자택 테라스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실었다. 같은 날 경향신문, 세계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서울신문, 중앙SUNDAY 등은 이 사진을 국민일보로부터 받아 지면에 실었다.

석진환 한겨레 법조팀장은 21일자 칼럼 ‘MB의 죄는 단죄할지라도’에 “김 여사가 실내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자신의 집 테라스에서 찍힌 사진이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을 때는 솔직히 속내가 복잡했다”며 “그 사진이 보도 가치가 있다는 건 분명하지만,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억울했을 2009년의 노 전 대통령과 그가 썼던 글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썼다.

▲ 국민일보 17일자 1면.
▲ 국민일보 17일자 1면.
실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진 후인 2009년 4월21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언론에 호소합니다.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부탁합니다. 그것은 제게 남은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입니다. 저의 집은 감옥입니다. 집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저의 집에는 아무도 올 수가 없습니다. 카메라와 기자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아무도 올 수가 없습니다. 신문에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나올 사진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상한 해설도 함께 붙겠지요. 오래 되었습니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요. 이런 상황을 불평할 처지는 아닙니다. 저의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생활은 또한 소중한 것입니다.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자유, 마당을 걸을 수 있는 자유, 이런 정도의 자유는 누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지금 이만한 자유가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는 집 뒤쪽 화단에 나갔다가 사진에 찍혔습니다. 잠시 나갔다가 찍힌 것입니다. 24시간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제는 비가 오는데 아내가 우산을 쓰고 마당에 나갔다고 또 찍혔습니다. 비오는 날도 지키고 있는 모양입니다. 방 안에 있는 모습이 나온 일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커튼을 내려놓고 살고 있습니다. 먼 산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보고 싶은 사자바위 위에서 카메라가 지키고 있으니 그 산봉우리를 바라볼 수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언론에 부탁합니다. 제가 방안에서 비서들과 대화하는 모습, 안 뜰에서 나무를 보고 있는 모습, 마당을 서성거리는 모습, 이 모든 것이 다 국민의 알권리에 속하는 것일까요?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간곡히 호소합니다. 저의 안마당을 돌려주세요. 안마당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자유, 걸으면서 먼 산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최소한의 사생활이라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 2009년 4월3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본관에 도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버스에서 내려오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2009년 4월3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본관에 도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버스에서 내려오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검찰동우회 소식지 ‘검찰동우’에 ‘수사십결’(搜査十訣)을 기고했다. 이는 바둑을 두는 데 명심해야 할 열 가지 비결을 담았다는 ‘위기십결’(圍棋十訣)에서 따온 것이다. 심 전 고검장이 제시한 수사십결 가운데 첫째는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마라’였다. 2009년 검찰과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을 찌른 뒤 칼을 비틀었다. 

MB가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는 권력을 사유화했다. 국가를 자신의 수익 모델로 삼았다. 각종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했다. MB야말로 전임 대통령에 가혹했다. 각종 혐의에 비춰보면 MB 구속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향후 재판을 통해 그가 사유화한 재산은 국고로 귀속시켜야 할 것이다. 저지른 죄에 합당하게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래도 칼은 비틀면 안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