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헌정 사상 네 번째로 전직 대통령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다.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횡령·뇌물수수·조세포탈 등이다. 전직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라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상황 자체가 이 전 대통령 ‘개인’에겐 불명예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불명예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건 시민들의 수치다. 시민들의 부끄러움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로 대변됐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정치보복이라는 주장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시민들의 수치와 부끄러움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 전 대통령 못지않게 지금 상황에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이들이 있다. 이명박 정부에 참여했던 언론인들이다. 이른바 MB정부 ‘폴리널리스트’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정권 유지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랬던’ 이들이라면 이 전 대통령 구속 여부가 거론되는 현재 상황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의식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들은 사과도 없고, 입장표명도 없다. 오히려 김효재·이동관 전 청와대 수석과 맹형규 전 장관 등은 이 전 대통령 검찰 조사 전후 그를 옆에서 ‘보좌’했다.

▲ 지난 2008년 5월8일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출입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청와대
▲ 지난 2008년 5월8일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출입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청와대
MB정부 ‘폴리널리스트’들은 이 전 대통령 구속여부와 상관없이 이명박 정부 당시 언론 상황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이른바 ‘프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며 언론과 상생·우호적인 관계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MB정부 ‘프레스 프렌들리’는 철저히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매체와 언론인들에게 국한된 캠페인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매체에 대해서는 특혜를 줬지만 비판적인 매체와 언론인은 철저히 탄압했다. 공영언론사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내 언론을 장악하려 했고, 이에 반발하는 비판적 언론인들을 해고했다. 낙하산 경영진을 비판하는 기자·PD·아나운서들은 징계와 부당전보를 당했고, 취재일선에서 물러나거나 마이크를 빼앗겼다.

언론인 뿐인가. MB정부는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 방송 진행자와 출연진들까지 배제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을 동원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분명한 것은 공영언론사에서 해직언론인이 대량 양산되고, 무분별한 징계와 전보가 횡행했던 시기가 MB정부였다는 사실이다. MB정부 의지가 아니고서는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

참담한 건, MB정부 시절 자행된 언론탄압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이들이 바로 ‘폴리널리스트’들이란 점이다. 이들은 청와대 핵심보직을 맡으면서, 낙하산으로 공영언론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비판 언론인 탄압을 주도했다. 방송사 핵심 보직을 맡으며, 언론유관단체장을 지내면서 MB정부 언론탄압에 일조한 이들도 적지 않다. MB정부에 참여한 ‘폴리널리스트’가 90명 가까이 된다는 통계까지 있을 정도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지금, 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올해 초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났을 때 언론에 대한 막말 때문에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니 SBS도 뺏겼다. 지금 부산에 KNN밖에 없는데 KNN도 회장이 물러났다. 아예 방송을 빼앗는다”는 홍 대표 발언이 언론계 반발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발언 자체도 문제였지만 당시 그 자리에 MB정부에 참여한 언론인 출신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더 논란이 됐다.

▲ 지난 1월3일 SBS 8뉴스 리포트.
▲ 지난 1월3일 SBS 8뉴스 리포트.
해당 발언이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 지 언론인 출신이라면 익히 알고도 남을 사안이었지만 홍 대표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는 ‘폴리널리스트’들은 없었다. 오히려 동아일보 출신인 이동관 전 수석은 “조중동은 잘 지키고 있지 않느냐”며 장단을 맞췄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폴리널리스트’들은 지금의 상황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조중동은 여전히 잘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MB정부 ‘폴리널리스트’들의 반성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부끄러움은 여전히 현직 언론인들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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