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전 지사(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밤에 술을 마셔야 잠을 청할 수 있을 만큼 괴로워한다고 한다.”
“안 전 지사는 구속 가능성에 대비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속죄의 시간을 가지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 전 지사가) 소박한 식단으로 하루 한두 끼 정도 먹었다. 매 끼니 밥을 반 공기도 먹지 않았다.’ (동아일보 3월20일 “[단독]안희정 “내가 이렇게까지… ” 친구에 토로, 부인-아들과 열흘 칩거“ 기사 중)

20일 오후 서울YWCA가 주최한 ‘미투(#MeToo)운동과 언론보도’ 토론회에서는 이날 오전 동아일보가 낸 단독기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가해자의 내밀한 근황이 보도가치가 있느냐는 비난과 함께 가해자를 미화하는 결과를 가져와 부적절한 보도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 서울YWCA가 3월20일 주최한 ‘미투(#MeToo)운동과 언론보도’ 토론회에서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서울YWCA가 3월20일 주최한 ‘미투(#MeToo)운동과 언론보도’ 토론회에서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토론회 화두는 성폭력 가해자 혹은 가해자로 지목되는 인물의 면피성 발언을 받아쓰는 언론이었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자칫 고발자가 무고 행위를 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어 보도에 신중함이 요구됨에도 언론이 이를 간과한 채 ‘받아쓰기’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 주장에 대한 주의는 2014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정한 성폭력 사건보도 가이드라인에도 나와 있다. 가이드라인은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진실인 것처럼 여과 없이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정한다.

이런 조항이 있는 이유는 피해자 보호가 우선될 수밖에 없는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 때문이다. 가이드라인 1항의 1호는 ‘잘못된 통념 벗어나기’다. 1호는 “언론은 성폭력 범죄가 피해자의 잘못된 처신으로 발생하였다거나 피해자가 범죄에 빌미를 제공하였다고 인식될 수 있는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성별 간 권력관계로 훼손될 수 있는 피해자의 발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자는 취지다.

발표자로 나선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이윤택 연출가, 고은 시인 등이 입장을 표명했을 때 ‘강제성 없었다’ ‘단호히 부정한다’ 등의 주장을 무작정 받아쓴 보도가 많았다”면서 “이런 언론들은 미투 운동이 왜 일어나는지 혹은 권력문제가 연관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 20일 동아일보 5면
▲ 20일 동아일보 5면

이를 통상적인 보도관행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기사 구성은 기자의 재량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는 “어떻게 기사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내용은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며 “제목, 내용, 구성 등을 이용해 가해자 말에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을 품는 기사를 만들 수 있음에도 그냥 보도를 해버리는 식”이라 지적했다.

윤 상임이사는 이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언론’이라고 비판했다. 윤 이사는 “충분히 가치판단을 해서 보도하는 기사도 있다”며 “(성폭력 사건 경우) 어떻게 기사를 쓰는 게 맞고 틀리냐를 생각하기보다 그대로 보도하는 식”이라 말했다.

▲ 토론회에서 지적된 잘못된 '펜스룰' 관련 보도 헤드라인.
▲ 토론회에서 지적된 잘못된 '펜스룰' 관련 보도 헤드라인.

‘펜스룰’ 보도는 이 문제가 가장 극명히 드러난 사례로 제시됐다. 펜스룰(Pence Rule)은 남성들이 여성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일부 언론들은 미투운동으로 인해 ‘여성 직원와 회식을 함께 하기 힘들다’거나 ‘회식 자리가 줄어 자영업자 수익이 줄었다’는 관계자의 토로를 보도했다.

윤 이사는 “하나의 현상이지만 언론이 이를 그대로 보도한다는 건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이 사회가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으로 구성됐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보도”라면서 “미투 때문에 회식이, 장사가 안된다는 보도는 미투 운동을 그만하라는 말과 다름 없다. 언론이 미투운동의 본질을 외면하고 논의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일탈’ ‘몹쓸 짓’ ‘성추문’ 등의 용어 사용도 오류로 지적됐다. 모두 성폭력 사건을 심각하지 않은 문제로 축소하는 단어다. 박 기자는 “성추문은 ‘추잡하고 좋지 못한 소문’ 정도로 성폭력 사건을 축소시키고, 몹쓸 짓, 일탈, 나쁜 손 역시 엄연한 범죄 행위를 사소하고 우습게 만든다”면서 “잘못된 보도 관행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박 기자는 이 같은 관행에 대한 개선책으로 △성폭력 사건 전문 기자 육성 △성폭력 사건 보도 내부 평가 시스템 운영 △‘어뷰징 기사’(검색어기사) 난립 문제 해소 등을 거론했다. 박 기자는 “세월호 참사 보도 당시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이 언론의 보도 관행 변화에 영향을 줬다”며 “언론사 조직이 변화하려면 외부에서의 따끔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 이사는 “언론인들이 자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윤 이사는 “경쟁적인 취재 환경 때문이라는 이유가 변명이 될 수 없다. 미투운동 피해자들은 그들의 인생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며 “언론이 미투 운동을 앞다퉈 보도하기 전에 가부장적 시선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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