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양상우 한겨레 대표와 김종구 편집인이 자사 주간지 ‘한겨레21’ 편집권을 침해했다는 논란이 벌어진 가운데 한겨레 감사가 지난 17일 감사보고서를 통해 “대표와 편집인이 편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는 사내 감사 결과를 내놨다. 한겨레는 이날 이사회 결의에 따라 ‘한겨레21 편집권 침해논란 감사보고서(요약본, 14쪽)’를 19일 구성원들에게 공유했다.

이상근 전 감사는 감사보고서를 마무리하면서 사의를 표명했고 지난 17일 주주총회에서 새 감사가 선임됐다. 감사를 청구했던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지부장 지정구·한겨레지부)는 지난 12일 이 전 감사의 사의 표명 배경과 새 감사 추천 절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바 있고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한겨레 단체협약에 따르면 편집권 침해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지부는 당사자인 한겨레21 구성원들 의견을 듣고 향후 대책을 논의 중이다.

감사는 지난해 12월1일 한겨레지부의 감사 요청으로 같은 달 8일부터 외부 언론 전문가 3인의 자문 등을 거쳐 지난 5일까지 진행됐다. 감사 결과로 양 대표와 김 편집인은 ‘편집권 침해’ 논란과 관련한 징계를 피하게 됐다. 이 사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국민의 자발적 후원 형식의 국민주로 창간한 한겨레였기에 벌어진 논란이다. 편집권 독립은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창간 정신이기 때문이다. 한겨레 감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결론을 냈는지 공개된 감사보고서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 한겨레21 1186호 표지
▲ 한겨레21 1186호 표지

논란 진행 경과

지난해 10월30일 한겨레21 취재 기자가 편집회의에서 발제한 표지이야기는 11월1일 최종 결정됐다. 취재 과정에서 LG 임원은 10월30일부터 11월1일까지 취재 기자와 팀장, 한겨레21 편집장, 출판광고부장, 출판국장(한겨레21은 출판국 소속), 한겨레 광고담당 이사, 김종구 편집인 등에게 전화·면담 등을 통해 해명 및 요청 사항을 전했다.

김 편집인은 11월1일 LG 임원을 회사 앞에서 우연히 만나 해명 및 요청 사항을 듣고 양 대표와 만나 “표지이야기로는 함량 미달”이라는 의견을 모아 출판국장과 3인 회의에서 재검토 뜻을 정했다. 출판국장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자 한겨레21 편집장은 표지이야기 교체를 거부했고 김 편집인이 11월2일 의견을 전달하자 보직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다음날인 3일 김 편집인이 출판국장을 통해 다시 의견을 전달했다. 편집장이 두 차례 보직사퇴를 표명하자 인사 문제로 번져 양 대표가 개입하게 됐다.

양 대표가 11월3일(금요일, 한겨레21 마감날) 표지이야기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밑줄 친 프린트물을 편집장이 가져갔지만 분실했고, 이날 저녁 양 대표는 편집장에게 카카오톡을 통해 의견을 전했다. 양 대표가 편집장과 카톡을 주고받은 시간은 이날 오후 6시3분부터 6시19분까지, 편집장이 표지이야기를 출고한 시간은 이날 오후 6시4분과 6시17분. 양 대표 의견이 기사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감사는 확인했다.

감사는 2010년 5월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 관련 기사를 포털에 즉시 공급하지 않았던 건, 2012년 7월 삼성 백혈병 관련 기사를 한겨레 사이트에 올리는 걸 지연했던 건으로 책임자들이 징계를 받았던 과거 사내 편집권 침해 사례와 2006년 시사저널의 삼성 관련 기사 무단 삭제 건, 같은 해 헌법재판소가 언론사내에서 편집권의 주체가 누군지 명확하지 않다고 결정한 내용 등을 참고해 감사 결과를 이끌었다.

대표·편집인 편집권 침해 여부

한겨레지부는 △세 차례나 반복적으로 개별 기사의 교체·데스킹 등 편집에 개입했고 똑같은 요구를 반복한 행위는 압력이며 부당한 지위 남용 행위라는 것 △편집 책임자가 직을 걸고 거부한 ‘편집권 수호 행위’를 무시하고 기사 교체를 강요한 것 △편집권을 보장받은 한겨레21 전체 기자들이 공동의 입장을 성명으로 발표하면서 ‘편집권 침해’로 규정한 것 △대표의 유감 표명에도 한겨레 구성원 80명이 대표의 편집권 침해 인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 등을 편집권 침해 근거로 들었다.

▲ 지난 2006년 1월부터 사용한 한겨레 제호.
▲ 지난 2006년 1월부터 사용한 한겨레 제호.

감사는 지난해 11월1일 양 대표, 김 편집인, 출판국장의 회의가 “관행 수준에 그치는 정도”라며 “대표가 편집인, 출판국장과 회의를 통해 표지이야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회의 결과 표지이야기 교체에 대한 결론을 편집장에게 전달하도록 한 행위는 편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11월3일 양 대표의 편집장 면담이 두 차례 보직 사퇴 의사를 밝힌 데 대한 인사권 문제에서 비롯됐고 그 배경이 표지이야기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의견 제시가 나온 것이었으며 “사전에 계획되거나 의도적으로 이뤄졌다기보다는 우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라 판단했다.

양 대표가 편집장에게 카톡으로 의견을 보낸 것과 관련해 카톡이 사장실 의견 제시의 연장선상이며 편집장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한 것 등을 이유로 편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감사는 판단했다.

감사는 김 편집인의 편집권 침해 여부에 대해 “LG임원은 편집인만 만나서 해명 및 요청 사항을 하소연한 게 아니라 10월30일부터 11월1일까지 담당팀장, 편집장, 출판국장, 광고담당 이사 등을 만나서도 표지이야기에 대한 해명 및 요청 사항을 전달했다”며 “편집인이 LG임원을 만나서 해명 및 요청 사항을 듣고 살펴보겠다고 한 행위 자체는 편집권을 침해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감사는 편집권 독립을 위한 사규의 정비·운영, 토론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한겨레 편집규정에는 편집위원회의 관련 사항을 정하고 있지만 사문화된 상태라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진지한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서로 공격하면서 내부 분열을 키우는 데 몰두했다고 감사는 지적했다.

감사보고서 마지막 3쪽은 양 대표와 한겨레21 취재기자의 SNS 활동에 대한 감사 결과 내용이다. 한겨레 소셜미디어 준칙에 따르면 임직원의 SNS 활동은 한겨레의 신뢰도와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고 임직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하지 않아야 한다. 한겨레 감사는 편집권 침해 논란이 벌어진 지난해 11월 전후로 양 대표와 취재 기자의 SNS 활동을 각각 문제 삼았고 SNS 활동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고했다.

편집권 침해 논란이 남긴 것

이번 논란은 언론계에서 사실상 무너진 편집권 독립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감사보고서에서는 다룰 수 없거나 다루지 않았지만 이번 논란은 몇 가지 쟁점을 던졌다.

▲ 1988년 5월 한겨레 창간 당시 한겨레 제호. 미술평론가 유홍준씨를 중심으로 한 준비위원회가 서예가 장일순 선생의 붓글씨와 '오륜행실도'에서 집자한 목판글씨를 여러 화가의 그림과 목판화에 얹어 수 십가지 시작품을 만든 끝에 유연복씨의 목판와 '백두산 천지'를 배경그림으로 하고 '오륜행실도'의 글씨를 조합시킨 것이다. 자료=한겨레 홈페이지
▲ 1988년 5월 한겨레 창간 당시 한겨레 제호. 미술평론가 유홍준씨를 중심으로 한 준비위원회가 서예가 장일순 선생의 붓글씨와 '오륜행실도'에서 집자한 목판글씨를 여러 화가의 그림과 목판화에 얹어 수 십가지 시작품을 만든 끝에 유연복씨의 목판와 '백두산 천지'를 배경그림으로 하고 '오륜행실도'의 글씨를 조합시킨 것이다. 자료=한겨레 홈페이지

첫째는 과연 편집인 등 기사 편집 권한이 있는 간부가 재벌 임원을 신문사 내에서 만나도 되는가에 대한 문제다. 이번 논란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실제 김 편집인이 LG 임원을 만나고 ‘표지이야기 감이 아니’라고 판단한 시점은 해당 기사가 작성되기 전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연히 만난 취재원을 내치는 게 쉽지 않다. 이 사안을 차치하더라도 언론사 간부들이 광고주인 재벌 관계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언론사 내부의 근본적인 고민이 요구된다.

둘째 ‘함량 미달 기사’를 누가 판단하는가의 문제다. 논란이 된 기사는 한겨레21이 연속으로 보도한 ‘지난 정권 때 국정원·재벌의 친정부단체 지원 기사’ 일부로 볼 수 있고, 해당 취재팀은 최근 여러 보도를 통해 한국기자협회·시민단체·한겨레 내에서 기자상을 받은 기자들이었다. 물론 상을 휩쓴 기자라고 항상 좋은 기사를 쓴다는 보장은 없다.

기자들 간 경험과 성향 등의 차이로 기사 판단 기준은 각자 다르다. 또 경영진과 일선 기자들의 기사 가치 판단 기준은 매번 같을 수 없다. 경영진이 악의 없이 ‘함량 미달’로 판단했더라도 취재기자 입장에서는 ‘기사 흔들기’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남는다.

셋째, 기사가 함량 미달일 경우 언론사 대표가 기사에 밑줄을 그어도 괜찮은지도 논쟁거리다. 취재 기자들은 양 대표가 기사에 밑줄을 그었고 양 대표의 요청 사항이 개별 기사 편집권을 가지고 있는 한겨레21 편집장에게 전달된 것을 문제 삼았다. 이번 감사에서는 편집장의 인사 문제로 사장이 개입하게 됐고, 논란이 된 게 표지이야기 기사였기 때문에 대표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낸 것이라며 편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언론사 대표가 기사에 대해 어디까지 의견을 낼 수 있는지는 앞으로도 논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한겨레 감사는 이번 감사를 하면서 외부 언론 전문가들 자문을 받았다. 해당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에 대해선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서약을 썼다. 편집권 독립을 고민하는 언론인 입장에서 이들 의견이 공개되지 않은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이번 논란 와중에 언론계 종사자들과 학자들의 침묵도 주목할 만하다. 한겨레라는 한국 사회의 자산은 지금도 필요하고,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에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 편집권 독립 문제가 관심을 끌지 못하는 상황은 자본에 종속되는 언론 환경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 수 있으나 보다 치열하고 생산적인 논쟁이 사라진 현실은 도리어 언론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관련기사 : 한겨레 감사 결과 “밑줄 그었지만 편집권 침해는 아냐”]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