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은 기약없이 이어진 지난 4년 간의 투쟁 끝에 소중한 결실 하나를 앞두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416 생명안전공원’(이하 추모공원) 건립이 그것이다. 안산시는 지난달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는 안산 초지동 화랑유원지 내에 416 생명안전공원을 건립하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이를 위한 새로운 재단도 곧 발족한다. 세월호 유족과 국민이 함께 설립하고 운영할 ‘4·16재단’이다. 재단은 오는 4월16일 창립이 선포될 예정이었으나 5월12일로 연기됐다. 추모공원 운영, 피해자 지원 등 11개 운영 목적을 가지고 있는 416재단은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의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전 사회 염원이 담긴 사회적 기구”다.

‘안산엔 유가족의 발자국이 안 찍힌 곳이 없다.’ 고 박성빈양의 어머니이자 416가족협의회 추모분과장인 김미현씨의 말에선 추모공원을 위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절실함이 묻어나왔다. 유족들은 ‘세금 도둑 납골당’이라는 가짜뉴스를 이기기 위해 지난 3년 간 몸으로 싸웠다. 안산 시민 10명만 모여도 어디든 찾아갔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3일 안산합동분향소에서 416재단 설립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미현씨를 만나 지난 3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 세월호 참사 피해자 고 박성빈양의 어머니인 김미현 416가족협의회 추모분과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세월호 참사 피해자 고 박성빈양의 어머니인 김미현 416가족협의회 추모분과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추모공원 반대여론? 안산 시민들이 대신 싸워줘요”

“사람들이 유원지 상당 부분을 쓴다고, 세월호 유족의 욕심이라고 오해하고 있는데 그거 다 가짜뉴스 때문이에요.” 추모공원은 화랑유원지 오른쪽 상반부 ‘귀퉁이’에 약 7천 평(2만3140m²)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전체 유원지의 3.6%를 차지한다. 완공일 등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수립되지 않았다.

416가족협의회는 가짜뉴스에 정공법을 택했다. 경로당, 골목길, 지역아동센터 등 안산 지역 방방곡곡을 누비며 시민들을 만났다. “피해자가 가장 많은 곳이 단원고 앞 고잔동, 그 위 와동, 그 옆 성구동… 거길 찾아가서 열 분이라도 모이면 간담회를 하고, 경로당, 어디 길가도 찾아 갔고, 동네 체육대회·마을잔치가 열리면 ‘엄마랑 함께 하장’(416가족협의회 주최 바자회 행사) 플리마켓에서 번 수익금으로 떡을 해 나누거나 지역아동센터에 후원하고, 독거노인분 방충망 손봐주는 일도 하고… 간담회만 오십 번은 넘게 했다.” 이런 활동은 2015년 5월부터 3년 간 지속됐다. 그 결과 유가족은 가짜뉴스를 이길 수 있었다.

▲ 2017년 5월31일 안산 중앙역에서 416안전공원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하는 모습. 사진=416 가족협의회
▲ 2017년 5월31일 안산 중앙역에서 416안전공원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하는 모습. 사진=416 가족협의회 홈페이지

“건립 부지에서 큰 싸움이 났다더라. 우리는 또 걱정을 했지. 반대시민이랑 유가족이 싸웠을까봐… 근데 찬성하는 주민이 반대하는 주민에게 ‘납골당이 아니라 9·11 추모공원 같은 곳’이라 말하면서 싸웠다는 거다. 오랜 시간을 거쳐 오해가 풀리고, 이젠 많은 지역민들이 동의와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일부 주민들이 반대를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주민들이 유가족의 뜻에 공감을 해주고 있어 힘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416 생명안전공원, 데이트하면서도 들릴 수 있는 곳”

416 생명안전공원은 유족에게 참사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만이 아니다. 유족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과 추모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위한 생명 존중의 메시지’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산책을 나오거나 즐겁게 데이트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언제든지 우리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원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어 자연스럽게 시민들 삶 속으로 파고들면서, “우리가 정치·사회 현상에 대해 깨어있는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이런 참사가 다시 반복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 아이들을 아프게만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416안산시민연대가 만든 416 생명안전공원 조감도
▲ 416안산시민연대가 만든 416 생명안전공원 조감도

유족들이 수 년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에 대해 김 위원장은 “세월호 뿐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모든 일들을 정치적 사안으로 끌고가는게 싫었다”며 “그래서 우리 엄마들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자. 정치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정치적 상황에 좌지우지 되지 않을 수 있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스스로 만들자’며 재단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 발기인으로만 현재 154명이 모였다. 한 가정 당 500만 원의 거금을 기금으로 냈다. 투쟁에 전념하느라 수입이 없는 집도, 박근혜 전 정부로부터 배·보상금을 받지 않고 국가 상대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 집도 참여했다. “각자 사정을 알기에 많아야 50명 참여할까 생각했다. 90%가 소송을 진행 중인 빠듯한 사람들이었다. ‘이 돈은 애들을 위해 내는 돈’이라며 함께 했다. 마음 깊이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유족들은 발기인 이름이 새겨질 비석에 ‘2학년 몇 반 누구누구’의 이름을 새길 예정이다.

국민발기인은 226명이 모였다. 모두 재단의 뜻에 동의해 100만원 이상의 기금을 후원한 시민들이다. 이밖에 기억위원으로는 20일 기준 6895명이 참여해 4억9천여 만원의 기금이 추가로 모였다. 준비위원회는 정관 제정, 창립총회, 재단 등록 등의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절실하게 싸운 3년, 같은 기간 언론·경찰·정부는?

‘깨어있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 유족들은 추모공원을 통해 알리려는 메세지를 지난 4년간 몸소 실천해왔다. 단식투쟁은 매해 있었다. 국회, 광화문, 청와대 앞, 정부청사까지 고위공직자들이 오가는 곳을 찾아가 수백일 동안 길바닥에서 농성했다. 언론을 통해 확인되는 굵직한 기자회견만 70여 회고 범국민추모대회는 100여 회다. 대국민 서명운동만 7차례, 총 447만여 명의 시민 서명을 모았다.

그렇다면 지난 4년 간 언론과 정부는 어떻게 변했을까. 2017년 대선을 전후로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정부기관 태도가 변했다는 지적이 많지만 유족들의 생각은 다르다. 김 위원장은 그 중에서도 언론의 무책임함으로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세월호 유족을 향한 부정적인 보도만 줄었지 그 외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참사 당시 오보 횟수, 왜곡보도 횟수를 확인해보라. (방송사 당) 60번, 70번은 될 것이다. 근데 사과 방송 한 번으로 다 해결이 되느냐. 그때 연일 보상금, 돈 문제 보도하며 3년 동안 사람들을 세뇌시켜 놓고 사과 방송 한 번하면 문제가 바로 잡히느냐. 당신들이 한 만큼만 정정보도 내달라는게 우리 바람이다.” 김 위원장은 “세월호 전과 후가 바뀌어야 한다고 왜 글만 쓰느냐. 글 쓰는 사람이 바뀌어야지”라고도 말했다.

▲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2014년 5월8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사를 항의방문해 세월호 사고를 교통사고와 비교한 김시곤 보도국장의 해임과 길환영 사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2014년 5월8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사를 항의방문해 세월호 사고를 교통사고와 비교한 김시곤 보도국장의 해임과 길환영 사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2014년 5월8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사를 항의방문해 세월호 사고를 교통사고와 비교한 김시곤 보도국장의 해임과 길환영 사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2014년 5월8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사를 항의방문해 세월호 사고를 교통사고와 비교한 김시곤 보도국장의 해임과 길환영 사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되는 이슈’만 쫓아다니는 취재관행도 지적됐다. 김 위원장은 “언론은 세월호 관련해 ‘이 정도 이슈될 만한 거 몇 번 했음 됐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언론의 역할은 이슈될 때 터트리는게 아니라 (이슈가) 잊혀질만하면 잊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 말했다. “뭘 다루려고 오지도 않는 것 같다. ‘인양 며칠 째다’ ‘나 여기 왔다갔다’ 이렇게 (기자가) 도장만 찍는 느낌도 든다. 박근혜 정부 땐 받아쓰기를 했다면 지금은 이슈 쫓아와서 보고 찍고 마무리하는 식이다.” 그가 덧붙였다.

참사 당시 언론계는 재난전문기자를 육성한다거나 세월호에 대한 심층보도 역량을 쌓아야 한다는 자성을 내놨다. 현장을 지켜온 유족의 눈엔 이를 지킨 언론사는 없다. 세월호 관련 이슈를 지속적·주기적으로 취재하는 언론사도 전무한 수준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감정이 섞인 눈으로 바라 봐 덜 정확할 수 있지만 기자는 냉철하게 볼 수 있다”면서 “지속적으로 취재한 기자가 현장을 가장 정확하게 안다. 그런데 그런 기자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 기관에 대해서도 “상황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특조위를 방해했던 ‘세력’들은 여전히 남아있는”데다 “정권만 바뀐 것이지 그 아래의 행정관, 실무자들은 그대로”라는 주장이다. 가까운 예로 자유한국당은 1기 특별조사위원회를 방해한 인사로 지목되는 황전원씨를 2기 특조위에 재추천해 유족의 반발을 사고 있다.

2016년엔 특조위에 파견된 해양수산부 과장급 공무원이 보수단체 대표로 하여금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고소하도록 부추겼다. 교육부는 전국교직원노조가 만든 ‘4·16 교과서’가 학교 각급에 활용되지 않도록 금지 조치를 내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세월호 2주기 추모제에서 ‘구호 제창은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4년간 정부기관을 지켜 본 유족의 눈엔 각 기관의 책임자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김 위원장은 추모공원이 건립되고 특조위 2기 구성을 앞 둔 시점에도 감시와 비판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언론이 좀 더 따지고 질문하면서 사회를 일깨워줬으면 좋겠다”며 “세월호 가족들의 활동도 그대로 지속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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