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노동조합이 양상우 한겨레 대표이사를 상대로 요청한 사내 감사 결과, 양 대표가 한겨레21 편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내부에선 감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논란이 된 기사는 지난해 11월6일자로 나온 시사 주간지 ‘한겨레21’ 1186호 표지이야기(‘어떤 영수증의 고백’) 관련 기사 2건이다. LG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통하지 않고 친정부단체에 직접 자금을 지원한 물증을 공개한 보도였다.

취재 기자가 LG쪽 취재를 시작하자 LG 간부가 한겨레를 찾아 김종구 편집인을 만났다. 김 편집인은 기사가 작성되기 전부터 한겨레21 편집장에게 관련 기사를 표지이야기에서 뺄 것을 주문했다. 이후 양 대표는 해당 기사가 최종 출고되기 전 출력물을 펜으로 그으며 문제점을 지적해 한겨레21 편집장에게 전달했다.

▲ 한겨레21 1186호 표지
▲ 한겨레21 1186호 표지

[관련기사 : 한겨레21 ‘LG 영수증 기사’ 사장이 직접 수정 요청했다]

한겨레 기자들과 시민단체는 이를 ‘편집권 침해’로 규정했다. 지난해 11월20일 한겨레21 기자 16명은 “경영진과 (한겨레21) 편집장의 판단이 다를 때 최종 결정 권한은 편집장에게 있다”며 “이번 사태가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는 한겨레 핵심 가치를 훼손한 중대한 사태로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언론개혁시민연대도 “한겨레21 기자들의 편집권 침해 사과 및 재발 방지 요구는 당연하다”며 양 대표에 사과를 요구했다.

양 대표는 지난해 11월23일 사내 구성원들에게 “편집권 침해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논란을 잠재우진 못했다. 같은 날 한겨레 구성원 80명(12월12일 기준)은 “대표이사의 편집권 침해 행위 인정이 먼저”라며 편집권 침해 인정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지부장 지정구·한겨레지부) 역시 같은 달 30일 “대표이사가 ‘한겨레21’ 표지 교체를 요구하고 기사를 직접 ‘데스킹’한 것은 명백한 편집권 침해 행위”라고 비판하며 사내 감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는 이들의 의견과 정반대였다. 당시 이상근 감사가 작성한 감사보고서(17일자)를 보면, 한겨레 사규에는 없지만 대표이사·편집인·편집국장·논설실장 등이 참여해 다음날 보도할 주요 기사를 논의하는 ‘대편집회의’가 관행처럼 있어 왔다. 양 대표가 편집인·출판국장 등과 회의를 통해 표지이야기 교체 의견을 전달한 것은 대편집회의 관행 수준에 그치는 정도로 편집권 침해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감사는 양 대표가 해당 기사 초고에 밑줄을 그으며 의견을 제시한 행위, 한겨레21 편집장에게 카카오톡으로 의견을 전달한 행위 등에 대해서도 편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김 편집인에 대해서도 편집인 권한을 넘어 편집권 침해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한겨레의 한 기자는 “밑줄은 그었지만 편집권 침해는 아니라는 논리는 댓글은 달았지만 정치 개입은 아니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노조가 사내 감사를 요청하면서 문제 제기 통로가 막혔다는 지적도 있다. 사내 감사 결과 ‘편집권 침해가 아니’라고 결론이 날 경우 편집권 침해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다. 앞서 한겨레지부에서도 사내 감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한겨레지부는 “회사의 존망이 걸린 문제이므로 즉각적이고 신속한 감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내 감사 결과는 해를 넘겨 나왔다.

한겨레 내부에서는 ‘감사가 양 대표와 대학 선후배 사이인데, 양 대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내놓고 감사직에서 물러난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 이상근 한겨레 감사는 사의를 표했다.

이 전 감사는 지난 2월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해당 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편집권 침해 관련 감사가) 민감한 문제라 여러 가지 신중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내 감사 결과 편집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고 감사가 자리를 내놓을 것이란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한겨레신문사는 지난 17일 제30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신기섭 ‘이코노미인사이트’ 편집장을 새 감사로 선임했다.

지정구 언론노조 한겨레지부장은 1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논란으로 조직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어 제도적으로 풀어야겠다고 판단했고 감사를 요청했다”며 감사 요청 이유에 대해 말했다. 결과적으로 감사를 요청한 노조에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의견에 대해 “비판 받을 부분이 있다고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 지부장은 “한겨레 단체협약에 따르면 행위 그 자체로서 편집권 침해는 분명하나, 당사자가 한겨레21 구성원이므로 먼저 그 의견을 들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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