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경제지 국장을 만났다. 자본과 언론 유착을 보여주는 ‘장충기 문자’에도 언급됐던 인물이었다. 삼성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삼성이 잘못한 일도 있지만”이라고 입을 뗀 그는 “삼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했다. ‘삼성이 잘 돼야 국가도 잘 되고 결국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언론이 삼성을 두둔하고 대변하는 현상이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금(18일)도 포털에는 삼성에 우호적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를 테면 “삼성 ‘기업 평판’ 70→26위 껑충… 애플은 20→58위 추락”(연합뉴스), “기업 평판, 삼성 70→26위 껑충… 애플 20→58위 추락”(헤럴드경제), “삼성 기업 평판 26위로 상승… ‘배터리 조작’ 애플은 58위로 추락”(BBS), “전 세계 기업 평판서 삼성 26위, LG 41위… 애플은 58위로 추락”(중앙일보), “삼성전자, 전 세계 기업 평판 순위서 70→ 26위… 최대 상승폭”(아주경제신문) 등 삼성에 대한 평판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소식은 주요하게 다뤄졌다.

삼성은 언론의 최대 광고주다. 삼성 앞에만 서면 언론의 감시·견제 기능은 마비되곤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16년 12월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광고를 통한 언론사 압박을 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2013년 5월3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이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 연합뉴스
▲ 2013년 5월3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이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당장 삼성에 비판 논조인 한겨레가 겪고 있는 상황만 봐도 이 부회장 발언은 거짓임을 확인할 수 있다. 양상우 한겨레 대표이사는 지난 17일 주주총회에서 “삼성의 광고 탄압으로 지난해 대규모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다행히 흑자 전환했다”면서 “올해는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움츠러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신문에 삼성 견제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은 태생적 한계 속에서도 방송 언론 가운데 가장 예리한 비판을 보여줬지만 더 많은 언론의 감시와 탐사 보도가 요구된다. 이 부회장과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유착이 보여주듯 ‘정경유착’은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보도본부 차원의 혁신을 단행한 SBS도 굵직한 삼성 보도를 단독하며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삼성은 한겨레뿐 아니라 JTBC, SBS 등 비판적 매체에 대한 광고 집행을 줄여왔다.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삼성 무노조, 세습·지배구조, 하청업체 쥐어짜기 문제 등을 다뤄온 몇 안 되는 매체다.   

정상화 궤도에 오른 공영방송이 최근 삼성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KBS ‘추적60분’, MBC ‘스트레이트’ 등 공영방송 탐사 보도 프로그램들은 ‘이건희 차명계좌’, ‘장충기 문자’ 등을 다루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파업에 참여했던 공영방송 종사자들은 치열한 보도 경쟁 시장에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삼성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16년 12월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광고를 통한 언론사 압박을 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16년 12월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광고를 통한 언론사 압박을 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반면 새 사장 취임 이후 내부 개혁이 막힌 YTN에서는 고위 간부가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제보자들을 삼성에 연결시켜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연합뉴스의 경우 전·현직 간부들이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충성 문자’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 매체들은 삼성과 연루된 인사들을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지난 1월 KBS 파업 집회에 참여해 “KBS가 제 통장에서 꼬박꼬박 돈을 뜯어가고 있다”며 “그 돈으로 고대영 사장 월급을 주고 있다. 월급을 주고 있는 까닭은 ‘국민의 방송이 공정방송을 하라’는 것에 있다”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공정방송은 비판 기능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과 정치권력의 국정농단을 뼈저리게 경험한 시청자와 독자들은 삼성 문제를 외면하는 언론에는 더 이상 신뢰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황씨 말처럼 삼성에 대한 견제·비판 기능이 죽은 언론은 공정방송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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