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관계부터 바로 잡자. 지난달 1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하 뉴스공장)에 출연한 KBS 기자들은 신상을 드러내고 ‘미투’를 외쳤던 이들이다. 공영방송 KBS에도 각종 성차별·성적 대상화가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러 나간 것이다. 정경훈 tbs PD는 이런 출연자들에게 “씨X년”, “더럽다” 등의 욕을 했다. KBS 측이 밝힌 내용만 이 정도였다. 저 두 마디가 전부가 아니란 뜻이다. 욕은 10초 정도 지속됐다고 한다. 잘못은 정 PD에게 있다.

KBS 취재팀은 설 연휴가 끝나고 ‘출연자에게 협찬고지를 재차 요구한 것’, ‘이를 정당하게 거절했음에도 PD가 심한 욕설을 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tbs에 문제를 제기했다. 출연 당시 뉴스공장 제작진이 협찬고지를 읽어달라고 부탁했고 KBS 기자들이 이를 거절했다. 뉴스공장 제작진과 진행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간 소통이 제대로 안 돼 김 총수가 생방송 중 재차 협찬고지를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뉴스공장 측의 실수이지 KBS 기자들의 잘못은 아니다.

정 PD는 욕설한 사실을 인정했다. tbs는 정 PD를 직위해제했다. 직위해제 주체는 tbs이고 KBS는 직위해제를 요청하지 않았다. 직위해제는 회사에서 쫓아내는 해고가 아니다. 스튜디오 밖 라디오 조정실에서 정 PD 욕설을 들은 이는 뉴스공장 작가들과 스태프, 게스트, KBS 기자 등 총 7명이었다. 모두가 들은 말이 혼잣말이었을까.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미디어오늘은 정 PD의 직위해제 사실을 중심으로 이 사건을 지난 14일 보도했다. 불똥은 엉뚱하게 ‘미투’에 동참한, 정PD에게 욕을 먹은 박에스더 기자에게 튀었다. 일부 누리꾼들이 해당 뉴스공장 방송을 듣고 당시 박 기자 발언과 태도를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누굴 부각할 것인가’는 사건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가의 문제다. 지난 15일 내내 박에스더 기자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에 올랐다. ‘미투’를 외쳤던 박 기자는 뉴스공장 PD뿐 아니라 여론에 의해서도 2차 가해를 당했다. 미투에 동참한 박 기자 태도가 방송에서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거셌다. 다음은 해당 방송에서 진행자와 게스트 간 인터뷰 내용이다.

박에스더 : 혹시 공장장님께서도 조금?
김어준 : 저는 그런 적은 없습니다.
박에스더 : ‘미투 (KBS 취재팀)’에서 취재해봐야겠네요. 과연 그런 적이 없었는지. 어쨌든 그런 차원이 아니라 이런 문제를 함께 더 생각하자는 거죠. 같이 대책을 만들어 가고. 사실 남자 분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좀 어려워해요.

박 기자는 분명하게 “어쨌든 그런 차원이 아니라 이런 문제를 함께 더 생각하자”고 말했다. 방송 이후 김 총수는 박 기자 또는 KBS 측에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정 PD가 KBS 기자들에게 욕한 사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음은 정 PD의 직위해제 소식을 전한 미디어오늘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단순히 광고멘트 안 한 것 때문에 욕한 걸로 오해할 만하게 기사를 썼네요.”
“광고멘트 안 해서 욕했냐? 무슨 기사를 이따위로 쓰나.”
“박에스더 기자가 공장장을 협박했기 때문에 혼잣말로 욕설을 했다, 거기다 KBS 기자단이 내용증명까지 보내 징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뉴스공장 들어보니 욕 나올 만 했다.”

▲ 정경훈 tbs PD 직위해제 소식 이후 트위터 반응.
▲ 정경훈 tbs PD 직위해제 소식 이후 트위터 반응.

‘박 기자가 김 총수를 불편하게 했고 정 PD가 이를 보고 욕을 했다’는 허위가 만들어졌다. 정 PD의 직위해제는 김 총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됐고 정 PD는 김 총수를 수호했던 사람이 됐다.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에는 ‘박 기자가 김총수를 성희롱했고 이를 보고 욕한 정PD가 직위해제 당했다’는 서사가 등장했다. 박 기자가 가해자로 돌변한 것이다. 아울러 인신공격이 시작됐다. 박 기자뿐 아니라 미투 운동 자체를 폄훼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언론도 박 기자가 김 총수를 불편하게 했다는 관점으로 기사를 생산했다. 정PD가 아닌 박 기자 얼굴사진이 함께 실렸다.

“박에스더 문제의 발언, 무엇이 문제인가”(헤럴드경제, 3월15일자)
“박에스더 한마디에 김어준 ‘뿔났다’” (한국경제TV, 3월15일자)
“박에스더, 김어준 죽이기?” (한국경제TV, 3월15일자)
“기자 박에스더 누구길래? KBS 최초의 법조 출입 여기자 ‘웃음은 무례하고 혀는 칼날 꼴이다’”(서울경제, 3월15일자)
“‘박에스더 발언 문제 없었다’…논란에 기름 부은 KBS 해명”(헤럴드경제, 3월16일자)
“박에스더 “남성 ‘미투 운동’ 적 아냐”…그런데 김어준 향한 논란 발언은?”(국제신문, 3월16일자)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는 15일 “미투 운동을 핑계 삼아 갑질하려는 박예스더(박에스더의 오기) 기자를 처벌해주세요!!”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16일 오후 현재 이 청원에는 6700명 넘게 참여했다. 반대로 정 PD가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KBS 시청자 의견 게시판, KBS 감사실, 뉴스공장 불만접수센터 등의 홈페이지 주소가 적힌 게시물이 퍼지고 있다. 여론과 언론을 통해 2차 가해가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KBS 기자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
▲ KBS 기자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

이들은 김 총수가 KBS 기자의 발언에 위협을 느꼈다고 보는 걸까. 김 총수가 불편해할지도 모르는 말은 모두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미투 운동 자체가 불편했던 걸까. ‘나는꼼수다’를 진행했던 당시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수많은 팬과 영향력을 가진 김 총수를 왜 피해자 내지 약자로 만드는 걸까.

김 총수는 당시와 그 이후에 어떤 식으로든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피해자라는 근거는 없다. 김 총수를 피해자 입장에 놓아야 하는 이유만 있을 뿐이다. 그래야 박 기자를 가해자라고 비난할 수 있고 정 PD 욕설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박 기자가 김 총수에게 불쾌감을 줬다 하더라도 정 PD가 김 총수를 대신해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쏟아내는 건 문제다. 편을 나누고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한 뒤 어떻게든 공격거리를 찾아 몰아붙이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가해자들의 운신의 폭은 여전히 넓다는 것이 확인된다. 미투 운동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거악’에 맞섰던 경험이 있다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박 기자 실명이 들어간 기사 수는 정 PD를 언급한 기사 수를 압도한다.

박 기자에 대한 비난이 지속되고 있다. 다른 미투 운동과 다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런 판단은 누구의 시각인가. 모든 인권 이슈는 피해자 의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 성폭력 사건의 객관성은 피해자가 얼마나 증명해냈는가에 있지 않다.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존중하는가에 달려 있다.

[관련기사 : tbs ‘뉴스공장’ PD, 욕설로 직위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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