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총재 홍석현)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한파에 해고 대상자 가족들은 냉가슴을 앓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한국기원 해고 대상자 6명 가운데 2명이 퇴사했고 나머지 4명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공간에 배치됐다고 지난달 27일 보도한 바 있다.

또 중앙홀딩스 회장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기원 총재로 부임한 이래 노사 임·단협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보도 이후 한국기원은 미디어오늘에 “한국기원의 희망 퇴직은 조직 쇄신 차원에서 유창혁 사무총장이 단행했다”고 밝혔다.

유 총장은 지난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국기원은 계속 적자 방식으로 운영돼 왔고 바둑계에선 ‘한국기원이 무능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됐다”며 “내가 사무총장으로 오고 난 뒤 (기원 직원들에게) ‘1년 동안 여러분들이 하는 걸 살펴보겠다’고 했지만 역시 바뀌지 않아 내가 총대를 멘 것”이라고 밝혔다.

유 총장은 “그래서 명예퇴직을 받은 건데 그 대상자는 지난 3년 간 평가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6명이었다”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노조 측과 논의가 있을 것이다. 이 사안은 총재에게 보고한 적 없으며 총재는 이런 부분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기 공급 차단’에 대해서는 “사무실에서 전기를 쓸 게 있느냐”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보도 이후 한 해고 대상자 아내 ㄱ씨가 미디어오늘에 홍 총재와 유 총장에 보내는 편지’를 보내왔다. ㄱ씨는 중앙일보 출신의 한국기원 인사들을 겨냥해 “한국기원을 지원하러 온 것인지 통치하러 온 것인지 모르겠다”며 “한국기원 노조와 간부 사원 직원들은 분노하지만 인사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눈치만 살피는 구조가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상황을 보여주는 편지 글이라 판단하고 전문을 게재하기로 했다.

▲ 홍석현 한국기원 총재(왼쪽)와 유창혁 사무총장. 사진=미디어오늘·연합뉴스
▲ 홍석현 한국기원 총재(왼쪽)와 유창혁 사무총장. 사진=미디어오늘·연합뉴스
“홍석현 총재, 유창혁 총장님 봐주세요!”

안녕하세요? 세상 흐름에 요즘 텔레비전 틀기가 무섭습니다. 저희 가정도 하루하루 날이 밝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번 1월부터 6명 대기발령 받은 직원 중 한 명의 아내입니다. 20여년 이상을 옆에서 보기에도 열심히 직장 생활하며 살아온 남편이 요즘 출근하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오늘도 홧팅!”이라며 응원해 주지만, 그 어떤 말로도 힘이 돼 주지 못함에 이게 세상살이인가? 회의감이 듭니다.

(재)한국기원 다니며 자부심을 가지고 가정보다도 회사를 우선으로 생각했던 남편,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옆에서 보기에도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라고 존경했던 남편이 대기발령 받았다고 힘없이 어렵게 얼마 전에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 했더니 구조조정이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는데 명예롭게 그만 두는 것도 아니고, 그 결과가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최고도 좋지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기에 부부로서도 그렇지만, 같은 세대를 사는 인격체로서도 아이들에게 ‘아빠처럼만 살면 된다’고 교육했던 제가 거짓말쟁이가 돼 버렸습니다.

한 번 살아 일생이고 삶의 정석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지만 이건 아닌 거 같기에 제 맘을 표현해 남편에게 조금이나마 응원을 해주고 싶습니다. 여섯 명 중 두 분은 퇴직하셨고 네 명은 책상을 한 곳에 배치해서 전화, 컴퓨터도 주지 않고, 전원도 차단했습니다. 3월 말이면 면직된다는 말을 듣고, 이래서 사람들이 죽기도 하는 구나, 남의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월, 2월 급여 날엔 회사에서 급여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남편은 생활비를 가져다줍니다. 애들 학비, 생활비를 해야 하니 어디서 만들어서 가져오는 것 같네요. 한국기원에 컴퓨터도 없던 시절 입사해 한국바둑이 세계 제패했던 2000년대를 넘어 지금까지 바둑계를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토사구팽 당하는 것을 보니 원통하고 슬픕니다.

▲ 한국기원은 해고 위기에 몰린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전기를 제대로 공급받을 수 없는 공간에 배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고 대상자들이 위치한 공간의 전기 플러그가 막힌 모습.
▲ 한국기원은 해고 위기에 몰린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전기를 제대로 공급받을 수 없는 공간에 배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고 대상자들이 위치한 공간의 전기 플러그가 막힌 모습.


남편도 분노하고 많이 힘들어 합니다. 애들도 힘들어하고 부모님과 형제들도 힘들어 합니다. GS칼텍스 허동수 이사장님께서 한국기원 이사장을 하실 때 그 13년 동안은 직원들과 프로기사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으며 바둑계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또한 (GS칼텍스에서) 파견한 간부 직원 한 명도 행정 지원이었고, 파견된 6년 동안 성실하게 임·단협도 지원했다고 합니다.

반면 홍석현 총재님께서 파견한 (중앙일보 재무법인 대표 출신) 박형우 경영지원실장은 임·단협을 해태하며 최근 3년 간은 임금 동결과 임협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고 일방통행식 통보만 있다고 얘길 들었습니다. 한국기원을 지원하러 온 것인지, 통치하러 온 것인지 한국기원 노조와 간부 사원, 직원들은 분노하지만 인사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눈치만 살피는 구조가 돼 가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타이틀도 획득한 여성 프로기사 9단이 페이스북에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한국기원에서 물러가라”라고 했겠습니까? 과연 바둑계를 지원하러 온 것인지? 군림하러 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최근에는 중앙일보에서 작년 연말 퇴직한 송필호 부회장이 한국기원 부총재로 월 2~4회 방문해 한국기원을 통치하고 있으며 작금의 집단 구조조정도 총재에게 보고하지 않고 송필호 부총재께서 지휘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권고 사직에 시달려 퇴직한 간부 직원 2명과 현재 권고 사직에 시달리고 있는 3명의 간부 사원들은 62~70년생으로 만 47세부터 55세의 직원입니다. 단협에서 정한 이들의 정년은 5년에서 13년이 남았습니다. 아직 한참 일할 나이입니다. 단체협약과 근로기준법에 명기된 규정을 중시하고 지켜주셔서 이들이 바둑계 및 한국기원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말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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