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신진안무가 A씨는 지난해 공연을 올리기 위해 ‘한 달 생활비’를 극장에 냈다. A씨의 안무를 공연 작품으로 선정한 극장이 ‘기획비’ 명목으로 100만 원을 요구한 것이다. 동료 무용수 B씨는 같은 이유로 70만 원을 요구받았다. A씨는 ‘어렵게 딴 공연 기회인데 포기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돈을 내고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 수입이 일정치 않은 30대 안무가 C씨는 아티스트가 ‘경연비’를 왜 내야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그는 지난해 9월 한 유명 무용축제의 청년안무가 지원프로그램에 오디션비로 8만 원을 냈다. 3개월 전엔 모 사단법인이 주최하는 축제에 20만 원을 내고 참가했다. C씨에겐 적잖이 부담되는 값이다. 어떻게 책정된 금액인지 설명도 없다. C씨는 의문을 가지지만 계속 돈을 지불하면서 각종 공모전에 나서고 있다. (취재사례 재구성)

청년 무용가 사이에서 공연 비용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무용계 관행이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각종 공모전이나 지원프로그램 참가 시 적게는 8만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까지 참가비 및 기획비 명목으로 비용 지불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청년 무용가들을 위한 공연 기회 자체가 부족한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 자료사진. 사진=이우림 기자
▲ 자료사진. ⓒgettyimagesbank

서울 소재 ㅇ극장의 경우 지난해 기획공연 중 하나인 신진안무가전에 뽑힌 무용가들에게 70~100만 원 규모의 기획진행비를 요구했다. 비용은 미리 공지되지 않았고 선정 결과가 나온 후 통보됐다. 일부 무용가는 비용 요구 근거를 납득하지 못해 공연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30대 무용가 C씨는 이와 관련 “2~3년 전엔 50만 원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다른 기획공연에 선정된 동료 무용수는 100만 원을 내고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ㅊ예술원이 주최하는 20여 년 역사의 한 무용 축제도 지난해 60~70만 원 상당의 참가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2012년 경엔 동료 무용수들이 40만 원을 내고 이 축제에 참가했고 점점 올라 지난해 60~70만 원 수준이 됐다고 들었다”며 “무용인들은 공연 기회가 적으니 돈을 내서라도 자신을 알리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오디션 참가에도 돈이 필요하다.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협회가 주최하는 ㅁ페스티벌의 신진무용수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오디션 참가비가 8만원이다. 보통 20~30개 단체가 지원해 7~8개가 선정된다. 선정된 이들은 축제 무대에 올라 공연을 선보이지만 공연료는 따로 지급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진흥회가 주최하는 ㅅ페스티벌의 경우 ‘신청금’(참가비)이 20만 원이다. 축제 참가자 중 최대 8명에게 상을 수여하고 그 중 6명에게 총 600만 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2017년엔 총 37개 단체가 축제에 참여했다.

청년 무용인들 일각에선 이를 두고 ‘투명하고 공정한 보상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획비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2월, 복수의 청년 무용가들은 자신의 SNS를 통해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에 기획비를 요구하는게 맞느냐’ ‘금액이 책정된 근거와 과정이 무엇이냐’ 등의 글을 쓰며 항의했다.

C씨는 “ㅁ페스티벌은 국가로부터 3억 원 넘게 지원을 받는데 왜 무용가에게 오디션비를 요구하고, 왜 선정된 작품에 공연료를 지원하지 않느냐”면서 “공연 기회가 부족한 젊은 무용가들에게 ‘무대에 올려줄 테니 공짜로 무용해라’고 하는 갑질로도 보인다“고 비판했다. ㅁ페스티벌의 경우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4억1천만원 및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소극장 대관 서비스를 지원받았다.

비용을 요구한 기관들은 ‘피상적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기획비의 경우는 부족한 예산 문제도 겹쳐 있다는 지적이다. ㅇ극장 관계자는 “개인이 공연 하나를 올리려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비용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조금 더 많은 무용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공연을 하는 것”이라면서 “70만원이 부담스러울 순 있지만 한정된 예산에서 광고·공간운영비·인건비 등 최소 비용만 산정해 산출한 금액이다. 민간 극장이 매번 적자를 감수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각종 오디션 참가비용은 오디션 진행에만 쓰이는 실비라는 입장이다. ㅁ페스티벌 측은 비용 책정과 관련된 질의에 “참가비는 (1·2·3차) 오디션 대관과 멘토들의 실비(교통비), 오디션 진행을 위한 인건비로 사용된다”고 밝혔다.

ㅅ페스티벌 측도 참가비 20만원에 대해 심사위원비 등으로 쓰이는 실비라고 밝혔다. 축제 관계자는 “비영리사업을 하는 사단법인인데 돈을 벌겠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축제 진행과 관련된 예산이 적자가 날 정도로 부족한 상태니 심사와 관련해 따로 신청금을 받기 시작한 것”이라면서 “불가피하게 심사료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이(경연 방식의 축제)를 지양하고 순수 축제로 전환하기 위한 방향을 연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무용가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상황은 신진 무용가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한 무용기획자 D씨는 “중견무용가들도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면서 “티켓을 (강제로) 사게 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출연자에게 티켓을 미리 사서 팔아라는 것인데, 물론 다 판다면 적자는 없지만 보통은 다 못 판다”고 비판했다. 가령 극장이 2만원 상당의 티켓 60장 구매를 요구하면 무용가가 120만 원을 주고 사는 식이다.

청년무용가들은 보다 합리적인 사례가 존재하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예로 한국무용협회의 ‘젊은안무자창작공연’ 지원사업이 있다. 보통 40여 개 팀이 지원해 9팀 혹은 12팀이 선정됐다. 오디션을 보지만 참가비는 없다. 공연 기회도 주어지면서 250만 원 가량의 공연료도 지급됐다.

이들은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4천만원을 지원받았다. 참가비를 받는 ㅅ페스티벌의 경우는 지난해 7천만원을, ㅁ페스티벌은 4억1천만원을 지원받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