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쓰지 못한 취재 현장의 얘기를 해주면 돼.” 매우 쉽게 이야기 하길래 정말 쉬운 일인줄 알고 덥석 원고청탁을 받았다. 기사에 쓰지 못한 취재현장의 이야기, 그런 게 뭐가 있더라. 아무래도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부유하듯 회사를 옮겨 다니다 3년 만에 다시 ‘국민TV’로 돌아왔더니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 주어졌다. ‘보도팀장’이라니. 사실 역할이라고 하기도 창피한 것이, 이런 저런 사연으로 사람들이 떠나 휑뎅그렁한 곳에 여전히 버티고 남은 사람들을 그러모아 꾸역꾸역 기사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감투에 붙은 이름의 무게가 있어 모종의 취재지시를 한다. 월요일 아침이면 회의를 주재하고 아이템을 논의한다. 그 때마다 시름과 고민에 빠진다. 사람도, 시간도, 노하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선택엔 늘 아쉬움이 따르고 집중해서 내놓은 결과물엔 더 큰 아쉬움이 따른다.

며칠 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미투(MeToo)’ 고발이 있던 날이었다. 모처럼 정시 퇴근을 하고 저녁 장까지 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뉴스룸 봤어? 안희정, 미투, 비서.” 어찌나 다급한지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떼어낸 말을 이해하지 못해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충남도청으로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하는지, 국회로 달려가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면 큰 언론사들에서 하는 뉴스를 보고 있어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결국 충남도청으로 취재팀을 보내고, 나는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최고위원회의가 끝나고 안 전 지사를 제명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충남도청으로 출발했던 취재팀은 안 전 지사의 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다시 상경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며칠 후엔 동료 기자가 귀한 자료를 찾아왔다. 이 자료를 잘 이용하면 ‘특종’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여럿이 모니터에 코를 박고 들여다봐도 이 자료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었다. 남들은 잘도 ‘입수해 분석했다’고 쓰던데. “선배는 좀 아시겠어요?”라고 묻는 후배에게 “전문가를 찾는 게 더 확실하겠지”라고 답하며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실은 매우 창피했다.

고백하건대 우리는 ‘햇병아리’다. 취재기자라곤 3명이 전부고 이 셋의 경력을 다 합쳐봐야 10년 안팎이다. 어떤 아이템을 선정할지, 그 아이템은 어떤 방식으로 취재할지 머리를 모아도 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햇병아리들이다. 회의시간의 대부분을 시무룩해지는 데 할애하고 남은 시간은 푸념하는 데 사용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여전히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한다. 남들은 다 하는 걸 우리만 따라가지 못해 시무룩하지만 우리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자고 말한다. 세상의 이목이 쏠리는 곳에 우리만 없다고 푸념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관심 밖에 버려진 것들에 집중하자고도 말한다. 그것을 모종의 ‘허세’라고 말해도 괜찮다. 남들만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 다 하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허세.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국민TV’에서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한 후배가 처음으로 리포트를 만들었다. 많은 언론이 폭로전에 몰두하며 여남 갈등이 만든 콩고물에만 관심을 보일 때, 더디지만 전진해 온 여성주의의 성과를 톺아보자는 기사다. 다른 동료는 세 달여를 장위동 철거민에게 매달려 마침내 1시간 30분짜리 르포를 만들었다. 관련한 어떤 기사보다도 취재대상에 가까이 다가간 기사다. (그러나 아쉽게도 둘 다 조회수는 영 마땅치않다.)

▲ 성지훈 국민TV 보도팀장
▲ 성지훈 국민TV 보도팀장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허세를 부릴 작정이다. (물론 허세를 부리고 돌아서자마자 시무룩해지고 푸념도 할테다.) 경험이라는 것은 단박에 쌓이는 것이 아니고, 여건이라는 것도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우리의 결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허세에 가까울 예정이다. 그렇게 허세를 부리고 시무룩해지고 이내 다시 허세를 부리며 기사를 쓰는 시간이 쌓이면, 그때는 정말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 나와 ‘국민TV’의 동료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그 때가 되면 “기사에 쓰지 못한 취재현장의 이야기들”을 더 재미있게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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