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어떻게 풀지 관심이 쏠린다.

북측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전례없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지만 미국은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면서 신경전에 돌입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과정과 이후 상황을 복기하며 정상회담 프로세스를 밟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상황과 2005년 당시 상황의 공통점, 그리고 9·19 공동성명 파기 교훈 등을 되짚고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05년 당시 미국 부시 행정부는 2차 북핵위기(2002년 10월 북한 고농축우라늄 의혹 제기로 시작)를 해결하기 위해 다자협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북은 북미양자협상 우선을 강조하면서 신경전을 펼쳤다. 결국 6자회담이 열렸지만 서로의 입장만 확인한 채 세 차례 회담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북은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을 하게 된다. 북이 핵보유를 선언하자 우리 정부는 주도적으로 상황을 조율하기 위해 전면에 나선다. 현재 북이 핵완성을 선언하고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자 정부가 적극 대화 조율에 나서고 문재인 대통령 운전자론이 부각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정부는 평양에서 열린 6·15 기념식에 정부 대표단을 파견한다. 그리고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다. 이 자리에서 북측으로부터 6자회담에 재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한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이 나오게 된다. 정부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한 대북특사단을 파견하고 접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김일성 주석의 유훈’ 발언이 나오게 과정과 흡사하다.

2005년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내자 미국도 협상팀을 만든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 내용을 가지고 미국을 방문하고, 딕 체니 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6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한다.

세 차례에 걸쳐 아무런 실익을 얻지 못한 6자회담에 심장을 불어넣은 것은 당시 노무현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삼아 남북 대화에 나서고, 북미대화를 조율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2005년 4차 회담은 이전 회담과 질적 차이를 보였다. 미국이 북한과 양자 협상에 임하면서 결국 9·19 공동성명을 내놓게 된다. 9·19 공동성명은 북한의 핵 포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5개국의 조치가 반영돼 있다. 우선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고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뜻을 모았다. 9·19 공동성명은 북측이 핵무기와 핵계획을 포기하고 미국은 공격 의사가 없다고 약속한 뒤 외교를 통해 정상국가로 인정하는 로드맵을 명시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통했다.

▲ 2005년 9월19일 낮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 등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회담을 성공리에 마친 6개국(남한·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 대표들이 회담 직후 손을 맞잡고 이를 축하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05년 9월19일 낮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 등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회담을 성공리에 마친 6개국(남한·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 대표들이 회담 직후 손을 맞잡고 이를 축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핵심 쟁점도 한반도 비핵화에 따른 조치에 달려 있다. 북측이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비핵화 ‘행동’을 제안하면 미국이 이에 상응해 군사적 위협과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핵 카드로 북한이 받아내려는 보상은 북미 수교”라며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마련하려는 건 정상국가 도약 계기다. 깡패국가나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같은 오명을 벗겠다는 열망이 김 위원장에게 강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번 북미정상회담도 북측이 정상국가로 인정받는 모양새가 취해질 때 비핵화 문제가 풀리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세현 전 장관은 “비핵화 프로세스 가속화 관건은 한미가 대북 경제 지원을 얼마나 빨리 하느냐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보면 비핵화, 북미·북일 수교, 평화협정 등과 함께 경제 지원이 들어가 있다”며 비핵화에 따른 경제적 조치 문제가 관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9· 19 공동성명이 나온 이후 북미 관계를 그르친 것도 경제적 조치 문제였다. 북미는 9· 19 공동성명을 자신들에게 유리한대로 해석하면서 입장차를 보였다. 그런 가운데 미국 재무부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한데 이어 북한 소유로 의심되는 2500만 달러를 인출 금지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북미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9·19 공동성명 이후 열린 6자회담은 북미의 대결장이 됐고 2006년 7월 북은 대포동 2호를 발사하고 10월 1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2005년 상황과 현재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 의제를 올려놓고 남북 및 북미 양자 사이 대화를 통한 해결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과정과 그 이후 상황은 참고해볼 만한 내용이다.

북미정상회담 성공 여부는 개최 장소를 어디로 정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 메시지를 수용하는 쪽으로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북미수교의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 최초로 미국을 방문하고, 정상이 만난 것은 정상국가로 대우받은 상징적인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미국 내부 강경파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진전된 협상 결과물이 있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평양으로 가는 것 역시 파격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적성국가로 분류하며 온갖 비난을 퍼부었던 게 불과 지난해였는데 관계 정상화를 위해 평양에 직접 체류하며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자체로 평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참고문헌 “70년의 대화”(김연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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