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앙. 문화재. 1일1재앙. 이 말들은 지난 겨울 포털과 뉴스 매체의 일부 독자들이 입버릇처럼 즐겨 쓰던 것이다. 새 정부 들어서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난이 급증하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 말이다.

지난 1월17일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앙’을 거론했다. 포털을 중심으로 한 뉴스 독자들이 댓글에서 ‘익명의 그늘에 숨어 대통령을 재앙으로 부른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일부 독자들이 문재앙, 즉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나서 재앙이 많이 벌어진다’고 인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규모가 큰 사건들이 벌어졌다. 2017년 11월15일의 포항 지진, 12월21일의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8년 1월26일의 밀양 세종병원 화재 같은 것이 그렇다.

▲ ▲ 사망자 29명, 부상자 37명의 인명 피해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진=충북 제천소방서.
▲ 사망자 29명, 부상자 37명의 인명 피해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진=충북 제천소방서.

두 번째 이유는 이런 대형 사건 말고도 자잘한 화재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일부 독자에게는 문재인 정부 이후 유달리 불이 많이 나고 있고 정부가 공약과는 달리 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정부를 직관적으로 비판하기 좋은 재료가 된 것이다. ‘문재앙’ 담론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재앙이 자주, 또 집중적으로 벌어지고 있을까. 실제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는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1일 1재앙’ 주장을 형성시킨 가장 직접적이고 체험적인 근거는 화재다. 일상에서 다양한 규모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재 건수, 피해 규모, 사망자 수 같은 사항을 기준으로 하여 과거 다른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기를 비교해 보면, ‘문재앙’은 근거 없는 주장일 뿐이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의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기간에 벌어진 화재는 과거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한해 화재 건수는 화재분류 체계가 달라진 2003년 이전을 제외하면 매해 4만~5만 건 사이를 유지해 왔다. 이 기간 평균 발생 건수는 4만4446건이며, 문재인 정부가 등장한 5월 이전 기간까지 모두 포함해 2017년 수치를 잡더라도 4만4178건으로 전체 평균보다 낮다. 과거 기록을 보면 상대적으로 불이 많이 난 시기는 이명박 정부 때다. 통계에 따르면 ‘문재앙’보다는 ‘이재앙’이 더 맞는 셈이다(아래 도표 참조).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17년에 유달리 화재가 많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자료=빅카인즈.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17년에 유달리 화재가 많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자료=빅카인즈.
화재가 난방기구를 많이 쓰는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점, 그리고 문재인 정부 시기 대형 화재가 이 시기에 벌어졌다는 점을 고려하여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 간의 화재를 대상으로 보아도 결과는 비슷하다.

지난 10년 동안 겨울철 3개월에 발생한 화재는 평균 1만2354건으로, 지난 겨울의 발생 건수 1만2749건과 거의 비슷하다. 겨울에 가장 많은 화재가 발생했던 시기는 역시 이명박 정부 때로, 2008년에 1만3665건, 2010년에 1만3523건의 불이 났다(아래 도표 참조).

▲ 2017년 12월~2018년 2월의 화재 건수도 다른 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자료=빅카인즈.
▲ 2017년 12월~2018년 2월의 화재 건수도 다른 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자료=빅카인즈.
일부 독자가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형 화재의 영향으로 언론에 화재 관련 보도가 급증한 것이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밀양 세종병원 화재가 벌어졌던 2017년 12월~2018년 2월 석 달 동안 14개 언론사가 내보낸 화재 관련 보도는 모두 6592건이다. 이 수치는 동일 매체들이 과거 같은 기간에 보도한 양의 두 배 가까운 분량이다(아래 도표 참조).

▲ 화재 관련 보도는 급격히 늘었다. 붉은 선은 2016년까지의 평균치. 자료=빅카인즈.
▲ 화재 관련 보도는 급격히 늘었다. 붉은 선은 2016년까지의 평균치. 자료=빅카인즈.
이러한 상황에서 평소 잘 읽히지 않던 자잘한 화재 사건까지 주목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예컨대 매체들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부터 열흘 남짓 지난 1월3일 경북 예천군의 한 우사에서 일어난 화재를 보도했다. 피해는 우사 33㎡(10평)와 소 한 마리였다. 비교적 경미한 화재였지만, 독자들은 포털에 뜬 관련 기사 밑에 예외 없이 ‘문재앙’ ‘1일 1재앙’ 같은 댓글을 달았다.

대중 일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실제 통계는 ‘문재앙’이 오해나 정치적 폄하, 음해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디어 심리 전문가인 서강대 나은영 교수는 “대형 화재 보도를 보고 나면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활성화되고, 그 결과 최근에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심리 현상과 정치 공세 마인드가 합쳐져 사실과는 다른 상황 인식이 발생한 셈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