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희 교사(위례초)는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가 이에 반대하는 일부 시민들의 극렬한 비난에 시달려왔다. 최 교사는 2018년 3·8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성평등조합원상을 받았다.

최 교사는 수상 소감에서 “제가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시작한 것은 우리 사회의 위계적인 성별 이분법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얼마나 교묘하고 은밀하게 억압하는 지를 깨닫고 난 후부터였다”면서 “그러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 있었고, 여성을 향한 억압과 차별이 여성살해, 강간 등의 범죄와 연결되어 있고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그날부터 이전과는 다른 치열함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학교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짧은 인터뷰 영상으로 수많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성평등교육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는 것을 보며 고통 속에서도 기뻤다”며 그간의 과정이 녹록치 않았음을 고백했다.


최현희 교사는 현재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과 그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구했다. 가해자를 규탄하고 피해자를 안타깝게 여기는 방관자적이고 시혜적인 태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강간문화, 일상의 여성혐오를 성찰하고 자신과 주변부터 바꾸어나가겠다는 결심과 실천이 미투운동에 대한 진정한 지지라고 그는 강조했다. 

또 미투 운동에서 중립지대는 없으며 성폭력이 어떤 구조 속에서 발생하며 ‘나’는 거기에 어떻게 복무해 왔는지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폭력적인 사회구조를 승인하는 또 다른 가해자일 뿐이라고 역설했다. 멀리 있는 미투를 지지하는 것은 쉽지만 ‘내’가 속한 집단과 조직의 미투를 보며 피해자의 편에서 연대하는 것은 아픔과 상처 없이 불가능하며 지금은 그 아픔과 불편함을 함께 견뎌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 교사는 자신이 소속된 민주노총과 전교조에 대해서도 뼈아픈 비판을 했다. 2008년 있었던 민주노총 전교조 조합원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받고 있으며, 당시 전교조 지도부는 그 사건을 피해자의 편에서 제대로 책임있게 해결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직적 2차 가해를 방조하고 가해자를 비호했던 당시 전교조 위원장(정진후)에게 경기도 교육감 후보 출마를 철회할 것과 피해자 지지모임에 대한 고소를 취하할 것을 촉구했다.

최 교사는 “얼마 전 고은 시인의 이야기를 꺼내며 가해자 고은에게 감정이입하여 그가 마치 시대의 희생양인 것처럼 말하던 한 전교조 조합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여기 계신 모든 여성노동자를 대신하여 마지막으로 전하겠다”며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시대의 한계였다, 내 세대의 한계이다, 핑계대지 마십시오.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관습’을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을 감히 가혹하다 말하지 마십시오. 정말 가혹한 것은 피해자들이 그동안 말 못하고, 홀로 고통받으며, 고립되어 있어야 했던 시간들입니다. ‘관습’은 가해자의 언어입니다. 피해자에게 그것은 과거에도 폭력이었습니다.

성폭력 범죄자들이 거리낌없이 숨쉬며 활보할 수 있었던 그 공기와 그 시간을 그리워하지 마십시오. 시대와 역사를 거슬러 구습 속에 남아있지 마십시오. 힘들게 생존해서 살아남아준 희생자들이 비로소 연대하여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이 기적 같은 역사의 진보를 받아들이십시오. 이제라도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될 수 있게 된 것을, 변화하는 시대의 목격자이자 참여자로서 감사하게 여기십시오.”

▲ 3·8 여성의 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성평등조합원상을 받은 최현희 전교조 조합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3·8 여성의 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성평등조합원상을 받은 최현희 전교조 조합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다음은 최현희 교사의 발언 전문이다. 

 제가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시작한 것은, 우리 사회의 위계적인 성별이분법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얼마나 교묘하고 은밀하게 억압하는지를 깨닫고 난 후부터였습니다. 그러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 있었고, 여성을 향한 억압과 차별이 그저 인간의 잠재력을 억압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성살해, 강간 등의 범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지 교육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그날부터 이전과는 다른 치열함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짧은 인터뷰 영상으로 수많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성평등교육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는 것을 보며 고통 속에서도 기뻤습니다.

미투 운동으로 폭로되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을 많은 언론에서는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인 듯 보도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여성들은 공감하고, 분노할지언정,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으리라 생각습니다. 여성을 향한 억압은 보편적이기에 다른 여성이 당한 일이 바로 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이 공기처럼 당연했기에, 그것을 문제라고, 폭력이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성폭력이 가해자의 언어로 설명되었기에 피해자의 목소리가 지워져온 역사가 되풀이 되었을 뿐, 분노에 찬 여성들의 목소리는 우리의 역사 어디에서든 있었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 중에 미투를 지지하지 않을 분은 없을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미투를 지지한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성찰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가해자를 규탄하고 피해자를 안타깝게 여기는 방관자적이고 시혜적인 태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강간문화, 일상의 여성혐오를 성찰하고 자신과 주변부터 바꾸어나가겠다는 결심과 실천이 미투운동에 대한 지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투를 지지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피해자의 진실성을 평가하고 때로 가해자의 입장을 변호하며 마치 이 운동에서 안전하고 중립적인 지대가 있는 것처럼, 진정한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려든다면 그것은 결코 미투를 지지하는 일이 아닙니다.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는 무지의 소산이며, 용기를 낸 수많은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운동에서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성폭력이 어떤 구조 속에서 발생하며, 나는 거기에 어떻게 복무해왔는지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폭력적인 구조를 승인하는 또다른 가해자일 뿐입니다.

미투를 지지한다 말하며 그 미투가 자신의 세계와는 온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멀리 있는 미투를 지지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내가 속한 집단과 조직의 미투를 보며 피해자의 편에서 연대하는 것은 아픔과 상처없이 불가능합니다. 그 아픔과 불편함을 모두가 견뎌내야할 때라고 믿습니다.

미투 운동은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운동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서는 이미 십년 전에 미투가 있었습니다. 바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힘겹고 외로웠던 싸움입니다. 저에게 이러한 상을 주시고 발언의 기회를 주신 것은 우리 안의 아픔을 낱낱이 드러내 함께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라 믿고 용기내어 이야기하겠습니다.

민주노총 성폭력 피해자는 십년이 지나도록 아직 고통받고 있습니 다. 그 고통은 결코 가해자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가 속해있던 당시의 전교조 지도부는 그 사건을 피해자의 편에서 제대로 책임 있게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수많은 2차 가해자들의 방관과 은폐 속에서 피해자는 고립되었으며 그 고통의 시간은 무려 십년째 계속 되고 있습니다.

조직적 2차 가해를 방조하고, 가해자를 비호했던 당시 전교조 위원장은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경기도 교육감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한 명의 일선교사이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런 자가 교육감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낼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부끄럽습니다.

전 위원장의 반성없는 행보는 물론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하고 짓밟은 그를 키워내고 지켜준 우리 조직과 사회를 향한 분노와 부끄러움입니다.

전교조에게 한 명의 조합원으로서, 같은 피해의 위험 속에 살아가는 한면의 여성노동자로서 호소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많이 늦었습니다. 지난날의 과오를 바로잡고 피해자의 편에 설 마지막 기회입니다. 전교조가 스스로를 부끄러움 없이 진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제라도 끝나지 않은 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편에 서서, 정진후 전위원장의 후보사퇴를 조직의 입장으로 정하여 연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정진후 경기도교육감 출마자에게 이 자리를 빌어 촉구합니다. 교육감 후보 출마를 철회하십시오. 더불어 피해자지지 모임에 대한 고소를 취하 하십시오. 긴 시간 동안 피해자와 함께 하며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해왔던 분들입니다. 성평등교육에 대한 관심과, 미투라는 운동이 온 사회를 뒤덮은 지금, 스쿨 미투라는 이름으로 학교안의 묵혀있던 성폭력 사건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당시 책임자로서 공동체적 책임을 저버리고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안긴 사람이 반성평등 교육을 향한 정확하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 늦었지만 아직 기회 있습니다. 이제라도 양심에 따라, 아니 시대의 요구에 따라 사퇴하십시오.

얼마 전 고은 시인의 이야기를 꺼내며 가해자 고은에게 감정이입하여 그가 마치 시대의 희생양 인 것처럼 말하는 한 전교조 조합원을 만났습니다. 자신 역시 나이든 남성으로서 이 모든 이야기들이 불편하고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하셨지요. 그분께 해드리고 싶었던 말씀을 여기 계신 모든 여성노동자를 대신하여 마지막으로 전하며 소감 마치겠습니다.

시대의 한계였다, 내 세대의 한계이다, 핑계대지 마십시오.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관습’을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을 감히 가혹하다 말하지 마십시오. 정말 가혹한 것은 피해자들이 그동안 말 못하고 홀로 고통받으며 고립되어 있어야했던 시간들입니다. ‘관습’은 가해자의 언어입니다. 피해자에게 그것은 과거에도 폭력이었습니다.

성폭력 범죄자들이 거리낌없이 숨쉬며 활보할 수 있었던 그 공기와 그 시간을 그리워하지 마십시오. 시대와 역사를 거슬러 구습속에 남아있지 마십시오. 힘들게 생존해서 살아남아준 희생자들이 비로소 연대하여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이 기적 같은 역사의 진보를 받아들이십시오. 이제라도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될 수 있게 된 것을, 변화하는 시대의 목격자이자 참여자로서 감사하게 여기십시오.

의미있는 상과 귀한 발언의 시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 혼자라면 버티기 힘들었을 모든 순간을 함께 하며 언제나 저의 용기가 되어 주셨던 전교조 여성위원회 선생님들과 이 상의 영광과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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