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_미투’ 연속보도는 전적으로 한 뜻있는 신자의 굳은 결심 덕에 가능했다. 김민경 씨는 7년 전 아프리카의 어느 외딴 선교지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에 대해, 긴 침묵을 깨고 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살기 위해서.

민경 씨와의 첫 만남은 홍대 앞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취재기자로서 어느 제보자와 첫 만남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종교계에서 나온 첫 ‘미투’인데다 이메일 내용 또한 충격적이었기에 ‘과연 사실일까? 믿을 만한 사람인가?’라는 경계심이 유달리 컸다. 그런데 민경 씨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이 기자가 이 사건을 끝까지 밀고나갈 수 있을까?’ 혹은 ‘방송을 위해 교묘히 이용해먹고 모른 체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과 의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두 가지를 약속했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고 각자 안전망을 만드는 차원이었다. 첫째, 방송에 낸다고 장담 못 한다. 제보 내용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근거가 확보돼야 보도한다. 둘째, 민경 씨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은 방송에 내지 않는다. 그렇게 취재가 시작됐다. 경기도 광주와 수원을 오간 지 일주일 만에 ‘#천주교_미투’ 연속보도가 이뤄졌다.

예상은 했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교구 측과 만남이나 연락 자체가 어려웠다. 가해자 한아무개 신부가 속한 수원교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 통화만 수차례해야 했다. “교구장님이 오늘 안에는 꼭 만나겠다고 하셨어요”라는 답변을 믿고 성당 앞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끝내 교구장은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다.

심지어 첫 방송이 나간 이후 수원교구 측은 전화와 문자 모두에 응답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연락이 두절됐다. 정의구현사제단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협조해주지 않았다면, 기본적인 사실 확인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수원교구는 김민경 씨에게 약속한 내용 중 하나를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 대주교 사죄 이후 아무 조치도, 연락도 없는 상태다.)

이번 보도는 취재하고 기사를 준비하는 동안 잠시도 편하지 못 했다. 내가 감히 ‘미투’에 나선 이들의 심경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들이 버텨낸 시간들에 대해, 이제 와 목소리를 내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단어 하나, 질문 하나 고르는 데도 예민해져야 했다.

기사만 문제없이 잘 끝내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보도 이후 마주친 현실은 훨씬 버거웠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워낙 관심이 높고 대통령 지시도 있어서 저희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답했고, 검찰은 “고소를 하게 되면 피해자가 더 힘들어질 수 있는 거 아시죠? 입증하기도 힘들고, 입증한다 해도 처벌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자면 경찰과 검찰의 태도는 여전히 너무나 아쉬웠다.

일부 신자와 사제는 교단 보호 논리를 앞세워 ‘왜 문제를 밖으로 알렸느냐? 너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며 오히려 피해자를 나무랐다.

신자들은 이미 이런 현실을 잘 아는 듯하다. 방송 이후 “이대로 끝내면 아무 것도 안 바뀔 것이다” “계속 파헤쳐달라” 등의 요구와 응원 메일이 쏟아졌다. 특정 사건에 대해 자세히 제보하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 사회’의 특성상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어렵겠다는 이들이 많다. 종교계 ‘미투’가 왜 이어지지 못 하는지 짐작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돌아갈 수 없기에, 조금씩이라도 기를 쓰고 나아가야 하기에, 민경 씨의 심리상담을 맡은 김이수 선생님의 말씀으로 글을 맺는다. 모든 ‘미투’ 참가자와 그리고 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다.

▲ 류란 KBS 기자
▲ 류란 KBS 기자
“미투(#MeToo)는 살고 싶다는 몸부림이에요. 복수하거나 괴롭히겠다는 데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내 탓이야. 내 잘못으로 그렇게 된 거야’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예요. …(중략)…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옆에서 기댈 곳이 되어주고 들어주고 ‘많이 힘들었겠다’ 공감해주는 것으로 충분해요. 그리고 ‘이제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가 함께 해줄게’ 이렇게 말해주는 이웃이, 사회가 된다면 우리는 한 단계 발전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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