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언론의 유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두 가지 사례가 최근 드러났다.

첫 번째,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4일 “삼성이 언론에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보여주는 문자메시지를 MBC가 단독 입수했다”며 “그룹 현안과 관련해서 공중파 방송사 보도국의 뉴스 편집 상황을 들여다보고, 주요 경제지의 사설까지 빼도록 했다는 정황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진 MBC의 탐사기획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뉴스데스크 보도 내용을 구체화하며 언론인들이 삼성의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보낸 문자 내용도 공개했다. 지난해 8월 시사인의 보도로 이미 한 차례 논란이 된 바 있는데, 관련 내용이 추가로 보도된 것이다.

두 번째, 뉴스타파는 4일 “YTN 간부, 이건희 동영상 제보 삼성에 ‘토스’”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보도 전문 채널 YTN 보도국 간부가 일선 기자들 몰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성매매 관련 영상 제보 사실을 삼성 측에 알리고, 삼성 측 연락처를 제보자들에게 넘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YTN 간부와 제보자 사이에 이뤄진 통화 녹취 파일을 통해 확인됐는데, 이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범죄 혐의가 들어있는 희대의 특종을 제보자들이 제보를 미끼로 돈을 요구하자, 언론사 간부가 일선 기자들에게 상의 없이 삼성 쪽에 넘겨버렸다는 얘기다.

▲ 지난 4일 MBC 스트레이트가 보도한 장충기 문자 관련 내용. 사진=MBC 화면 캡처
▲ 지난 4일 MBC 스트레이트가 보도한 장충기 문자 관련 내용. 사진=MBC 화면 캡처
이런 보도에 나온 언론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2015년 당시 연합뉴스 편집국장 직무대행은 장충기 전 사장에게 문자를 보내 자신을 “국민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제가 어떤 분을 돕고 있나 알고 싶고 인사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장 전 사장에게 각골난망(刻骨難忘·은혜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 잊지 아니함)이란 표현을 써 논란이 됐던 문화일보의 광고국장은 “문화일보,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저희는 혈맹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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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들이 자본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삼성의 고위 관계자 정도에 굽실거리며 노골적으로 ‘삼성을 위한 기사’를 쓰겠다는 충성 맹세를 한 셈이니,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 “짐작은 했지만, 개처럼 꼬리 흔드는 기레기들의 적나라한 맨 얼굴에 기가 막힌다”, “진짜 삼성공화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합니다”, “쪽팔린 줄 알아라”, “삼성공화국인 줄 알았더니, 삼성 왕정체였다”는 댓글이 미디어오늘 실명 공개 기사에 쏟아졌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보도를 다른 언론에서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MBC가 4일 보도한 ‘장충기 문자’의 경우 5일자 SBS 8뉴스, KBS 뉴스9,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 MBN 뉴스8, 채널A 뉴스A 등 각 방송사 메인뉴스에서 보도되지 않았다. 다만 SBS 8뉴스의 경우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을 YTN 간부가 삼성 측에 연결해줬다는, 뉴스타파의 보도와 같은 내용을 별도로 보도했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지난 5일~6일자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9개 주요 조간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보도를 한 곳은 6일자 한겨레가 유일하다. 한겨레는 “‘이건희 동영상 제보’ 삼성에 전하고…제일모직 상장 차익 보도 무마하고…” 보도를 통해 “언론이 사실상 ‘삼성 공화국’의 조력자로 ‘활약’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문자·녹취록 등이 공개됐다”고 했다.

이 보도가 빠진 대신 삼성과 관련해 들어간 보도는 6일자 조선일보의 “삼성·LG전자 ‘인공지능 TV’ 신제품 경쟁”, 6일자 국민일보의 “삼성카드 서비스 ‘키즈곰곰’ 獨 ‘iF 디자인 어워드’ 수상”, 동아일보 6일자 사진기사 “‘갤럭시 S9 체험’ 인파”, 세계일보 6일자 “갤S9 체험객 160만명 넘어서” 등이다.

광고국장이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봐 왔다’는 문화일보는 역시 5일자에서 “갤S9에 쏠린 시선…체험 스튜디오에 5일 동안 160만 인파”, 삼성이 새로 출시하는 갤럭시 S9의 카메라 기능을 소개하는 6일자 “스마트폰 카메라 기록 → 소통 → 인지 ‘무한진화’”기사, “글 쓰면 자동으로 만화 그려주는 ‘AI SNS’ 기사 등이 삼성과 관련된 기사였다. 연합뉴스는 자사 홈페이지 검색창에 ‘장충기’ 검색어를 입력한 결과 관련 보도를 한 건도 내지 않았다.

다만 차한성 전 대법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의 상고심 변호인단에 합류한 사실에 대해 다룬 언론은 경향신문, 한겨레, 서울신문, 국민일보, 조선일보, 연합뉴스 등이 있었으며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뒤늦게 과징금을 물린 조치를 사설을 통해 비판한 곳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이 있었다.

눈여겨 볼 것은 온라인이다. 그나마 온라인에는 관련 보도가 상당수 있다. 프레시안이나 오마이뉴스 등 온라인 매체들은 스트레이트 리뷰 형태로 자세한 내용을 다뤘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언론이 다룬 내용은 대체로 MBC 보도와 미디어오늘의 실명 공개 보도를 인용한 ‘어뷰징’성 보도가 대다수다.

그렇지 않으면 MBC 스트레이트가 공개한, 제일모직이 상장된 2014년 12월 이인용 당시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이 장충기 전 사장에 보낸 문자메시지 중 JTBC와 관련해 “종편은 JTBC가 신경이 쓰여서 김수길 대표께 말씀드렸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는 내용에 대해 JTBC가 공식 입장을 내고 “제일모직 상장 보도를 했다”고 반박하고, 이에 MBC 스트레이트가 문자 전문을 공개한 것일 뿐 JTBC와 관련된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는 해명자료를 낸 것을 옮긴 수준의 보도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국민일보, 문화일보 등은 관련 내용이 다음 포털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어뷰징이 ‘좌우’도 떠나 온라인에서 이슈만 되면 쓰곤 한다지만, 이들 언론은 삼성 앞에서는 관련 보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지난 2월5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353일만에 구치소에서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2월5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353일만에 구치소에서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삼성과 관련해 언론이 유독 단합된 모습을 보인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달 5일 서울고등법원 정형식 부장판사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이재용 부회장이 풀려난 것과 관련해 일간지는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하고 낯뜨거운 제목으로 이재용의 앞길을 축복한 바 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달 7일 일간지 및 경제지들의 제목을 분석한 결과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제외하고 판결에 대한 비판이 전무했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판결문을 공개한 오마이뉴스에 대해 법원·검찰청 등을 취재목적으로 출입하는 법조기자단은 출입정지 1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기자단은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 1~2심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부 관례를 들었지만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4년 9월25일에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을 공개한 바 있다. 이 당시에는 오마이뉴스에 대한 징계 논의가 거론되지 않았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삼성은 언론사 입장에서 최대 광고주다 보니 광고주와 연관된 비리를 보도하지 않으려 한다”며 “언론이 정치 권력 뿐 아니라 경제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데 그만큼 경제 권력에 대한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은 말 뿐 아니라 광고를 줄이고 중단하는 식으로 압력을 가한다고 하는데 언론은 그게 두려워서 삼성 관련 보도를 소극적으로 보도하거나 축소 보도하는 형태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언론사의 고유 영역 아니냐는 질문에 “결정은 언론사가 하지만 국민의 관점에서 가치 판단이 나와야 한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역할이 있는 것인데 회사의 관점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공감대를 얻을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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