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방송계·학계 등 사회 각 분야로 ‘#미투(Me Too)’ 운동이 번져나가면서 국회에서도 처음으로 공개적인 미투 고발 글이 나왔다.

그동안 국회에서도 숱한 성폭력 사건들이 벌어졌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국회 특성상 소문은 빨리 퍼지지만 와전되기도 쉬워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분별한 2차 피해, 불안정한 고용 관계 등으로 국회 내 성폭력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미투 운동에 동참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러다 5일 오후 국회 홈페이지 ‘국민제안’ 게시판에 “[#me too]용기를 내보려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본인을 모 의원실 5급 비서관이라고 소개한 A씨는 “많은 분이 용기를 내 ‘미투 운동’에 동참을 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잘한 선택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며 “답 없는 질문을 거듭하면서, 더 이상 침묵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A씨는 지난 2012년부터 3년여간 근무했던 의원실에서 벌어진 성폭력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함께 일하기 전부터 아는 사이였던 4급 보좌관에게 일상적으로 반복된 성추행과 성희롱 등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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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금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로되고 있는 성폭력의 강도에 비춰보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직장 내 성폭력은 폭력의 정도에 따라 경중을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일상화된 폭력은 내가 해당 의원실을 그만둘 때까지 3년간 지속됐다. 아무도 없을 때 둘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이기 때문에 증거를 모을 수도,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또 “당사자에게 항의도 해보고, 화도 내봤지만 소용없었다. ‘가족만큼 아낀다’, ‘동생 같아서 그랬다’라며 악의 없는 행위였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늘어놨다”면서 “항의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의원실 내에서의 내 입지는 좁아졌다”고 밝혔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의원실 보좌진들이 ‘생계형 보좌진’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하고도 그만두거나 강하게 항의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A씨는 “의원실을 옮길 때조차 같이 일한 직원들, 특히 함께 일한 상급자의 평판은 다음 채용 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보좌진 생활을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법적 절차를 밟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A씨는 “현직에 있는 분들은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나처럼 가해자와 한 공간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퇴직자가 아닌 이상 같은 업무 공간에 존재하는 전·현직 의원실의 가해자를 고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비교적 의원실 상급자에 속하는 직급을 가지고 있는 나는 항의라도 했지만, 직급이 낮으면 낮을수록 약자일 수밖에 없는 비서들은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도 덧붙였다.

A씨는 또 언론이 미투 고백 피해 정황을 지나치게 상세하고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행태도 지양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내 글은 아마 국회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국회에 출입하는 기자들도 보리라 생각한다”며 “행위에 대한 묘사로 피해자가 성적 대상화 된다면 이로 인한 2차 피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라고도 지적했다.

A씨는 이어 자신의 글을 통해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많은 피해자가 스스로 치유를 위해 함께 나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피해자의 자기 고백은 치유의 시작이기도 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A씨는 “나를 비롯한 미투 사례 대부분은 ‘권력형 성범죄’다. 자극적인 기사로만 피해 사실이 소모되는 것은 미투 운동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행위 자체도 문제지만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길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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