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당시 SBS 현직 라디오 PD였던 박성원 세종대 겸임교수가 언론사 지망생 A씨에게 글쓰기 수업 등을 해주겠다고 유인한 뒤 수차례 성추행과 성희롱을 가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해당 증언 이후 비슷한 수법으로 피해를 당했다고 밝힌 추가 피해자 B씨도 등장했다.

소위 ‘언론고시’라고 불릴 정도로 언론계 입사가 힘든 상황에서 현직 언론인이라는 권위를 이용해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일으킨 사례는 공공연한 비밀로 떠돌았다.

박 전 PD는 당시 지상파 PD인 동시에 대학에서 강의도 했기 때문에 언론사 지망생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 증언이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A씨와 B씨는 모두 2009년 1학기 세종대에서 박 전 PD가 진행한 ‘라디오 제작’ 수업을 들었고 여름방학 기간에는 박 전 PD가 개인적으로 진행한 글쓰기 수업에도 참여했다.

이들은 박 전 PD가 말을 굉장히 잘했고 학생들을 압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2009년 5월) 이후 검은 양복을 입고 수업에 들어와 ‘부끄러워하라’는 식으로 일갈한 적이 있다”고 했다. A씨는 박 전 PD에게 위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수업을 듣던 동료들도 좋은 평가를 내렸다.

▲ 박성원 당시 SBS PD 겸 세종대 겸임교수.
▲ 박성원 당시 SBS PD 겸 세종대 겸임교수.

A씨에 따르면 1학기 수업이 끝나고 박 전 PD는 A씨와 같은 수업을 들은 동기 등에게 ‘작가 수업’을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접근했고 학생들은 방학 중 개별 수업을 받게 됐다. 매주 토요일 SBS 본사를 방문해 ‘수업 아닌 수업’을 접했다는 것.

교수이자 현직PD, 학생들 상대로 성범죄

A씨는 “박 전 PD가 말하는 개인 수업의 요지는 ‘너희들이 진짜 작가가 되고 싶으면 다양한 텍스트와 감정을 몸소 경험해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 전 PD는 ‘집요한 관계’를 요구했고 개인적으로 연락해 “네가 진짜 작가가 되려면 네가 먼저 나에게 섹스하자고 해야 한다”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희롱에 시달리면서도 ‘그렇게 용기가 부족해서 어떻게 작가가 되겠느냐’ 등의 비난을 받는 입장이었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하루는 박 전 PD가 나를 자신의 차에 태운 뒤 강제로 키스를 했고 손을 그의 성기에 갖다대며 만지게 했다”며 “(박 전 PD는) ‘바닥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본 작가들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등의 말을 반복했다”고 밝혔다.

A씨에 따르면, 박 전 PD는 당일 부산과 서울을 왕복하는 업무에 동행하자고 한 뒤 역 근처에 있는 모텔을 보며 ‘자고 갈까’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KTX에서도 A씨를 강제로 만지며 키스했다고도 했다.

당시 수업 자료 중에는 한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던 야한 내용의 익명 소설도 있었다. A씨는 미디어오늘에 “삼류 무협과 같은 삽화가 들어가 있었지만 당시 미디어계 이슈였던 ‘미디어법’을 소설에 빗대 의미를 부여했다”며 “야한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며 ‘진짜 작가가 되려면 이런 문장을 쓸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A씨는 뒤늦게 해당 익명 소설이 박 전 PD가 쓴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 박성원 전 SBS PD가 익명으로 한 스포츠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의 한 부분.
▲ 박성원 전 SBS PD가 익명으로 한 스포츠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의 한 부분.

A씨는 지난 1일 관련 내용을 SNS에 폭로했다. 이를 본 또 다른 피해자 B씨는 미디어오늘에 “나도 비슷한 수법으로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B씨 역시 해당 소설을 읽고 방송 리포트 형식으로 요약하는 과제를 제출했다.

B씨는 “하루는 박 전 PD가 밥을 사주겠다며 집 근처로 불러 ‘내가 자자고 하면 잘 거냐. 네 취향이 아니라고 하면 단념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B씨는 박 전 PD의 강요를 수차례 거절했다. B씨는 또 “차를 타고 이동하기 전 ‘친구끼리 뽀뽀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요구해 한 번 해준 적 있다”고 말했다.

절박한 학생들 악용한 성범죄

피해자들은 해당 사건을 권력에 의한 성범죄로 규정했다. A씨는 “지상파 방송사 라디오 PD라는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객원교수라는 권력을 이용해 수업을 이수했던 학생에게 고의적으로 접근했고 개인 수업을 빌미로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자행했다”며 “이것만은 결코 변하지 않는 명백한 진실”이라고 말했다. B씨 역시 “취업 준비생들이 절박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지난 2016년 문단 등에서 성폭력 고발 운동이 있을 당시 일부 사실을 폭로했지만 같은 학교 선배가 웃어넘기고 마는 등의 모습을 보여 모든 글을 지우기도 했다.

A씨는 “성폭력 고발이 이어질 때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스스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때의 환멸이 들어 내 자신에 대한 비난이 커져만 갔다”며 “더 이상 지난날을 자책하며 내 자신을 멍청하다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B씨는 해당 사건 이후 “성인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나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본인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전 PD는 ‘남궁연의 고릴라디오’, ‘책하고 놀자’, ‘DJ처리와 함께 아자아자’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담당했다. 심의팀 부장 등을 거친 그는 현재 SBS에서 퇴임했다.

미디어오늘은 박 전 PD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그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박 전 PD 지인은 미디어오늘에 “지난해 초부터 모임에도 나오지 않았고 연락도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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