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성폭력 피해자들은 연극계 관계자들의 고소 취하 압박을 끊임없이 받으면서도 이 전 감독을 고소했다. 고소인들은 “지금도 그만두라는 협박·강요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시민사회를 향해 “많이 응원해주시고 끝까지 지켜봐달라”고 호소했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연극인 이재령·홍선주씨 등은 이 전 감독을 고소한 피해자 16인을 대신해 5일 오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주최한 ‘미투(#MeToo)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기자회견에 참석해 심경을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에 이 전 감독에 대한 형사 고소장을 접수했다.

▲ 3월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이윤택 감독 성추행 및 성폭행 피해자 16명 기자회견 '미투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에서 이재령(오른쪽) 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3월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이윤택 감독 성추행 및 성폭행 피해자 16명 기자회견 '미투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에서 이재령(오른쪽) 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민중의소리

피해자 첫 발언자로 나선 김수희 대표는 울음 때문에 목이 메어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기사로 접했고 극단을 나온 후 잊으려했던 이윤택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면서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연극계의 선생으로 군림하고 있는 그이기에 멋지고 훌륭한 연극 인재들이 그 때문에 연극을 그만두게 된다면, 이런 끔찍한 환경에서 눈치나 보며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공연으로 어떻게 관객과 현재를 나눌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14일 이 전 감독의 성폭력 사건을 최초로 고발한 피해자다.

공동고소인은 총 17명이었으나 1명이 빠져 16명으로 줄었다. 한 명이 제외된 이유는 연극계 관계자들이 고소 취하를 종용했기 때문이다.

공동변호인단의 이명숙 변호사는 “어떤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된 사람(연극계 선배)을 가장해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피해자로선 굉장히 무서운 것”이라며 “‘고소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데 감당할 수 있느냐’ 등의 말을 전화, SNS, 문자, 간접 연락 등 다양한 형태로 전달하는 2차 가해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공동변호인단은 피해자들을 향한 이런 종용 행위를 강요이자 협박으로 보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규정했다.

홍선주씨는 지인들로부터 ‘너는 그러면 안된다’ ‘너는 선생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 그러면 안된다’ 등의 비난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홍씨는 “사건 고백 후 가족들과 극단의 신상까지 노출되며 너무나도 가슴 아픈 시간을 견뎌야 했다”며 “피해자들에게 ‘왜 이제까지 말 안했냐’고 묻지 말고 ‘이제라도 말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주목받고 싶었냐’고도 묻지 말라. 이런 일로 주목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추가 피해자들의 제보도 계속되고 있다. 이재령씨는 “지금도 저에게 자신의 피해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많다. 오늘 아침에도 80년대 때 선배들로부터 구체적인 성폭력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이후 드러나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변호인단 소속 김보람 변호사는 “함께 하는 101명 변호사 중 절반 정도가 실질적인 지원에 참여할 것이라 약속했다”며 “강요·협박,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고소 등에 민·형사상으로 적극 대응할 것이며 상습적인 성폭력 가해자에 강한 법적 책임을 지우는 제도 개선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에 당부 “손가락 말고 달을 짚어 달라”

이들이 고소장에 적시한 이 전 감독의 가해 사실은 1980년대 초반부터 2017년까지 37년에 걸쳐 있다.

어떤 법조항을 적용해 고소했느냐는 물음에 이 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사건은 수사기관 수사를 통해서 말씀드리려 한다”며 “80년대 초반부터 2017년 1월까지의 피해 사실을 파악했다. 처벌할 수 있는 지 여부와 관련해선 많은 변수들이 있다. 처벌할 수 없다고 비관적으로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 5일 오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주최한 ‘미투(#MeToo)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기자회견에서 회견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5일 오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주최한 ‘미투(#MeToo)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기자회견에서 회견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는 언론이 공소시효 만료를 근거로 이 전 감독에 대한 처벌이 불투명하다고 분석한 것에 대한 지적으로 보인다. 친고죄가 적용되는 2013년 6월 이전 사건의 경우 사건 발생 후 1년 내로 고소하지 않으면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전망, 강간·강제추행죄의 공소시효가 10년인 점 등이 지속적으로 보도됐다.

이 변호사는 제도 개선 움직임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일제 강점기 하의 강제 위안부 동원 피해자를 예로 들며 “수십 명의 피해자들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오랜 기간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공소시효 충족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못한다면 어찌 일본에 대해 책임을 말할 수 있겠느냐”라며 “국회는 공소시효를 없애고 소급입법을 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드는 등 성폭력 근절을 위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대위는 미투운동에 대한 언론 보도를 ‘견지망월’에 빗댔다. “어리석은 사람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눈이 쏠려 정작 봐야 할 달을 못 본다”는 뜻이다.

이 변호사는 “손가락이 길다, 짧다, 하나만 길다, 손가락을 다 폈거나 아니다 등 여러가지가 있다. 언론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당했고 공소시효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앞다퉈 보도를 할애했다”면서 “많은 미투운동의 목소리가 하나 같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 달이 무엇이고 왜 그것을 잘 못보는지 함께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공대위는 그 예로 수사·사법기관의 전문성, 피해자에 대한 지원 인프라 등을 점검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변호사는 “서울지방경찰청 성폭력범죄특별수사대에 신고할까 생각했지만 지금 실종아동, 학교·가정·아동 폭력사건 등으로 인력이 없어 경남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 검찰에 고소했다”면서 “한국사회에 성폭력 수사 전담 검사·수사관이 몇 명인지, 전문성은 얼마나 축적됐는지 등을 점검해달라”고 지적했다.

공대위는 전국 128개 여성인권운동 및 시민사회 단체와 101명의 공동변호인단으로 구성됐다. 피해자들과 초기 상담을 진행한 변호사 6명이 최초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했고 이들이 동료 변호사의 참여를 독려한 지 하루 만에 변호사 101명이 모였다. 1년차부터 30년차까지, 성별·나이를 막론하고 다양한 변호사들이 동참했다.

홍선주씨는 “연희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색안경 끼고 바라보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며 “어려운 고백을 통해 지금도 현장에서 땀흘리는 연극인들이 마음 편하게 연극을 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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