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는 어떻게 포장되고 유통되는 것일까. 지난 3월 1일 광화문 광장에서 한 보수 성향 매체로부터 사진을 찍히고 난 뒤 보수인사로 둔갑해버린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사례를 보자.

뉴데일리는 지난 1일 광화문 광장에서 강기갑 전 의원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은 뒤 ‘[포토] 3. 1절 행사 참석하는 강기갑 전 의원’이라는 제목을 달고 포토뉴스를 내보냈다.

뉴데일리는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3.1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며 “광화문 광장에는 99돌 3. 1절을 맞아 기독교가 주도하는 국가회복 범국민대회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전 의원이 휴대폰을 보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표정의 사진은 태극기를 들고 있는 한 시민의 모습과 겹쳐져 있다.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기독교단체의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는 뉴데일리의 설명이 붙으면서 해당 사진은 강기갑 전 의원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함께 모여 집회에 참석했다는 뜻을 은연 중에 내포시켰다.

관련 사진은 트위터에 확산됐다. 한 누리꾼이 뉴데일리 사진을 걸고 “다들 그렇게 변희재가 되는거야”라는 멘션을 남겼다. 강 전 의원이 보수집회에 참석한 변절자가 됐다는 주장은 급속히 퍼져나갔다.

다른 누리꾼은 “쇼킹하다. 민노당 의원 강기갑이 수구꼴통 태극기 집회에 나타났다”며 “급진 운동권들을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 민주당을 더욱 개혁적으로 변화시켜야지, 민노당, 통진당, 정의당 따위에 뭔가 기대하면 안됨”이라고 적었다.

한 장의 사진, 그리고 두 문장의 사진 설명으로 인해 강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주사파로 칭하고,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보수 집회에 참석했고,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한 인사가 돼버렸다.

이날 보수단체들은 ‘문재인 사형, 박근혜 석방’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세월호 희망촛불 조형물까지 파손하면서 물의를 일으켰다.

특히 강기갑 전 의원의 사진은 지난해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내용까지 첨부돼 확산됐다. 강 전 의원은 경남 사천에서 농사를 짓다가 우연히 미보고 유익균을 발견하고 미생물 유기농법을 활용한 관행농법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강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미생물에 대해 연구하면서 자신의 정치관도 성숙했다면서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강 전 의원은 “이러한 미생물들의 성질이 딱 ‘표심’과 비슷하지 않나. 난 사실 현역 시절 국민들의 ‘표심’에 회의를 많이 느꼈다. 원망도 했다. 그런데 이 미생물을 알고부터 깨달았다. 내가 참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결국 정권을 결정하는 것은 소수의 좌와 우가 아닌 대다수의 ‘중간 표심’이었다. 조물주는 ‘생존 본능적’으로 힘 있는 쪽에 맘이 기울도록 창조한 것이다. 미생물도 사람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 SNS에서 '[포토] 3.1절 행사 참석하는 강기갑 전 의원'이라는 제목을 달고 확산된 뉴데일리 사진.
▲ SNS에서 '[포토] 3.1절 행사 참석하는 강기갑 전 의원'이라는 제목을 달고 확산된 뉴데일리 사진.

또한 강 전 의원은 “난 솔직히 현역 때 진보가 보수를 싹 청산하고 진보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그게 강기갑 스타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유아적 발상인가 싶다. 우리 몸에도 유익균만 있다면 게을러지고 자하여 퇴화하듯이 진보도 마찬가지다. 유익균과 유해균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여 진화하듯이 정치도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뤄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난 자유한국당이 밉지 않다. 결국은 (문재인 정부가) 다 끌어안고 가야한다. 지금 정부가 적폐청산에 임하고 있다. 이에 앞서 국민이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을 심판했다. 자유한국당도 이를 인정해야 하지만, 결국 서로 정리하고 함께 가야 한다. 절대 진보와 민주 하나 만으론 성공하기 힘들다.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함께 가야 한다. 과거의 강기갑과 지금의 강기갑은 다르다. 예전의 나였으면 씨를 말렸어야 하지만 이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난해 미생물과 연결된 농법을 연구하면서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쪽으로 견해가 바뀌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난 자유한국당이 밉지 않다”는 대목의 인터뷰 내용을 따로 떼네 “3. 1절 행사에 참석한” 강기갑 전 의원의 사진과 엮은 SNS 게시물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강 전 의원이 보수단체의 3.1절 행사에 참석하고 뉴데일리와 “자유한국당이 밉지 않다”고 인터뷰한 것처럼 돼버린 것이다.

해당 SNS 게시물은 강 전 의원에 변절자 확신범 딱지를 붙이는 꼴이 됐다. 해당 게시물을 보고 진보 쪽 인사들은 강 전 의원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고, 반대로 보수단체 인사들은 강 전 의원을 믿을 수 없다며 ‘스파이’라고 비난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강 전 의원이 1일 뉴데일리 사진에 찍힌 대로 광화문 광장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강 전 의원이 보수단체가 주최하는 3. 1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라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아래는 강 전 의원과 3일 오전 통화한 내용이다.

“그날 저를 찍은 사람은 수십 명이 됐다. 예사로 생각했다. 간단하게 말씀 드리면 보수단체 집회가 있는 것도 몰랐다. 저는 GMO없는바른먹거리친환경유기농 행사장에 가는 길이었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쪽 공간에 폴리스 라인을 쳐놓고 서울시청하고 회의를 해서 ‘외국에 식탁이 점령당해버렸다. OECD 국가 중 건강지수가 최하위로 전락해서 이대로 안된다’고 해서 3. 1절 99주년을 맞아 우리 먹거리가 식민지가 돼버렸으니 먹거리를 되찾자는 독립선언을 하고자 한 것이다”

“사실 광화문에서 시청광장까지 보수단체들이 대형 스피커로 떠드는 바람에 정식 허가 받고 공간을 확보했는데도 저희들은 본 행사도 시끄러워서 하지 못했다. 선언식도 해야 하는데 여러가지로 방해를 받았다”

뉴데일리로부터 사진이 찍혔던 상황은 어땠을까.

“뉴데일리인지도 몰랐고 인터뷰도 전혀 없었다. 우리가 확보한 공간에 폴리스 라인을 쳐놓고 통제를 했는데 태극기 사람들이 그 자리에 들어와 버렸다. 마침 제가 찍힌 사진에 한 시민이 태극기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을 보고 오해를 해서 연락을 한 분들이 많다”

지난해 자유한국당이 밉지 않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강기갑 전 의원은 자세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미생물은 유해균과 유익균으로 나눠 전쟁을 하고 승리하는 쪽으로 간다. 나쁜 역할도 좋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국민들도 중간계층이 있다. 계속 자본주의 가치관으로 쏠리기 때문에 보수 성향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유한국당과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다르다. 야당이라는 게 보수 쪽에서 (작년에는)한 당이었는데 지금은 보수야권에서도 유익한 면과 유해한 면이 서로 반성 성찰을 통해 자기 진화를 하고, 미생물 세계가 구축되듯이 반면교사 역할도 하면서 합리적 보수가 될 수 있다. 통일문제나 또 헌신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큰 행복을 위해서 희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호 도움을 주고 하는 행태로 가는 것이 합리적 보수이고, 이들을 끌어안고 함께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공중부양을 할 때도 보수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진보당 사태 때 내부의 패권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우리의 들보를 보여줘놓고 자유한국당을 호통 치는 게 부끄러웠다. 미워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진보가 국민의 목소리나 대중적 요구를 외면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야당에 대한 비판이나 미움까지도 그럴 자격이 없다는 성찰 속에서 나온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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