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등의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아산병원 사망 간호사의 동료 직원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선생님들은 용기 내어 목소리를 높여달라”며 호소하고 나섰다.

자신을 ‘故 박선욱 간호사의 2017년 9월 입사동료’라 표현한 한 익명의 간호사 A씨는 28일 ‘故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우리 간호사 모두의 죽음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서울아산병원 인근 육교에 게시했다. 육교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주로 다니는 보행로로, 박 간호사를 추모하는 흰 리본이 수십개 달려 있다.

▲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리본이 걸린 육교에 익명의 서울아산병원 동료 간호사가 '故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우리 간호사 모두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사진=간호사연대
▲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리본이 걸린 육교에 익명의 서울아산병원 동료 간호사가 '故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우리 간호사 모두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사진=간호사연대

A씨는 “매일 12시간 이상으로 근무하기 일쑤였고, 근무 시마다 미숙한 점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꾸지람까지 들을 때도 많았다”며 “그럴 때마다 저희는 스스로 미숙한 점에 대해 자책감을 느끼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적었다.

이어 A씨는 “출근 전 한두 시간씩 도서관에서 근무 조별 업무 흐름 복습 및 환자파악을 하고, 오프에도 공부 및 과제와 간호기록 수정을 한 날들이 많았다”며 “매일 출근 전 전산을 열어보면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래도 저희는 ‘이 시간도 곧 지나가겠지’, ‘다른 병원보다는 처우가 나을거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밝혔다.

A씨는 사망 배경으로 간호사들 간의 직장 내 괴롭힘 관행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단편적으로는 신규간호사에 대한 높은 연차의 간호사의 태움으로만 비춰질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간호사 근로환경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그 이유로 “간호사 한 명당 돌보는 환자 수가 많아 업무 부담이 높으며, 간호사의 업무는 환자 안전과 직결되므로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 신규간호사는 업무 수행 속도가 느리고 실수를 일으킬 위험이 많아 경력간호사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며 “이에 신규간호사와 함께 일하는 경력간호사들은 업무 부담이 증가하며, 신규간호사는 독립 후 실수에 대해 혹독한 훈육을 받고 장기간 근무를 하게 된다”고 적었다.

A씨는 이에 병원 및 병원 내 간호사들을 향해 세가지를 요구했다. 그는 병원 측에 “서울아산병원은 사건이 발생한지 14일이 지나도록 어떠한 대책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면서 “신규간호사 자살사고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또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선생님들은 용기 내어 목소리를 높여주십시오”라고 적었다. 그는 “이와 같은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도 가만히 침묵하고 어떠한 변화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들은 간호계 발전에는 무관심한 집단이 되는 것”이라며 “우리 병원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진정한 변화는 외부의 힘으로만 일으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병원 간호부에겐 “간호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태움’이라는 직장 내 괴롭힘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선 간호사 조직을 총괄하는 간호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A씨는 “그동안 서울아산병원의 간호혁신 및 개선활동은 주로 간호부 주도의 활동을 각 부서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며 “그러나 근로환경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는 부서마다 특성이 다르고, 업무도 다르고, 형성된 조직문화도 달라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는 변화를 도모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각 부서의, 다양한 연차의 간호사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간호부에서 경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A씨는 박 간호사와 같은 달에 발령을 받은 '달동기' 간호사로 박 간호사와 전체 교육을 같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리본에 '태움은 폭력입니다'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간호사연대
▲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리본에 '태움은 폭력입니다'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간호사연대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던 박선욱 간호사는 설 연휴 첫 날인 지난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 간호사는 이 아파트 고층에서 투신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경위 파악을 위해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박 간호사의 사망 배경엔 ‘태움’이라 불리는 간호사 직업군 내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의 태움은 선배 간호사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방식을 지칭하는 용어다.

유가족은 지난 24일 입장문을 내 “앞으로 우리 선욱이와 같은 불행한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유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해달라”며 “병원의 내부감사결과 보고서를 유가족에게 공개하고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여 저희처럼 고통 받는 유가족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주시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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