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된 지 3시간 만에 병원 측에 의해 철거된 서울아산병원 사망 간호사 추모 리본이 철거 당일 재설치됐다. 동료 간호사들은 “태움은 폭력이다” “당신은 소중한 존재” 등의 추모인사를 리본에 적어 병원 인근 육교에 매달았다.

간호사연대 회원 수 명은 지난 27일 밤 9시 경부터 추모 리본을 다시 만들기 시작해 28일 새벽 1시경까지 서울아산병원 인근 성내천에서 병원으로 향하는 육교에 리본을 매달았다.

▲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리본에 '태움은 폭력입니다'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간호사연대
▲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리본에 '태움은 폭력입니다'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간호사연대

간호사연대 회원들은 리본에 “박 선생님, 오늘도 잘 버티셨어요” “아픔이 없는 그곳에서 부디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보석 같은 아이였다고 하시더라” “비단 아산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등의 추모 문구를 적었다.

이들은 지난 26일 밤 11시 경 동일한 추모 리본을 같은 자리에 게시했으나 불과 7시간 가량이 지난 다음 날 아침 7시 출근하던 동료 간호사로부터 모든 리본이 철거됐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철거한 측은 서울아산병원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죽음과 같은 부정적 표현이 병원 인근에 쓰여져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신고가 있었다’는 이유로 지난 27일 새벽 3시 경 리본을 철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사연대 회원 측은 28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을 방문해 리본을 일방적으로 철거한 것에 대해 항의 의사를 전달했다. 병원 측은 이들에게 ‘일부 환자 보호자가 병원 직원의 죽음에만 신경쓰고 환자의 일엔 신경을 쓰지 않느냐’는 민원이 들어왔다며 ‘환자 동선을 피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불만을 제기한 분을 만나게 해주면 과도한 업무나 병원 관행이 환자에게도 좋지 않고, 이런 문제가 사회에 알려져 병원 시스템이 바뀌어야 환자도 안전히 치료받을 수 있다고 저희가 설명을 드릴 수 있다” 며 “병원도 리본을 떼지 말고 이런 분들에게 설명을 해주면 좋겠다” 고 병원 측에 답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던 고 박선욱 간호사는 설 연휴 첫 날인 지난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 간호사는 이 아파트 고층에서 투신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경위 파악을 위해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 서울 잠실나루역 인근 성내천을 지나 서울아산병원으로 가는 육교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하얀 리본이 매달려있다. 지난 2월27일 최초 설치한 리본이 강제 철거된 후 간호사들이 다시 제작해 설치한 추모리본이다. 사진=간호사연대
▲ 서울 잠실나루역 인근 성내천을 지나 서울아산병원으로 가는 육교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하얀 리본이 매달려있다. 지난 2월27일 최초 설치한 리본이 강제 철거된 후 간호사들이 다시 제작해 설치한 추모리본이다. 사진=간호사연대

박 간호사의 사망 배경엔 ‘태움’이라 불리는 간호사 직업군 내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의 태움은 선배 간호사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방식을 지칭하는 용어다.

박 간호사의 사망 직후 그의 남자친구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자친구의 죽음이 그저 개인적인 이유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며 “여태 그동안 간호 업무를 어떻게 관리 했으며 간호부 위선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태움’이라는 것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그는 박 간호사의 사망 전날 “나 큰 일 났어, 무서워 어떡해?“ 라는 메시지를 받고 병원 기숙사에서 박 간호사를 기다리는 중 ”멀리서 손을 벌벌 떨면서 다가오는 여자친구를 봤다“고 적었다. 그는 박 간호사가 ’출근하기가 무섭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지?‘ 등의 메시지를 일상적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유가족 또한 지난 24일 “병원은 그 책임을 인정하고 죽은 우리 선욱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는 입장문을 냈다. 유족은 “선욱이는 예민한 아이도, 우울한 아이도 아니었다. 진짜 이상한 것은 우리 선욱이가 아니라 멀쩡했던 아이가 자살까지 결심하게 만든 병원”이라면서 “매년 수많은 간호사들이 선욱이처럼 힘들어 하며 병원을 그만둔다고 들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아무 것도 개선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고통 속에 방치해온 것은 병원”이라고 비판했다.

유족은 또한 “앞으로는 우리 선욱이와 같은 불행한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유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해달라”며 “병원의 내부감사결과 보고서를 유가족에게 공개하고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여 저희처럼 고통 받는 유가족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주시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간호사연대는 오는 3월3일 오후 6시 광화문역 4번 출구에서 고 박선욱 간호사의 추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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