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시사 고발 프로그램 ‘뉴스토리’에서 일하던 작가들이 부당한 해고를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방송통신위원회 등 5개 부처가 권고한 표준계약서를 작성했지만 방송계 ‘을’의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못한 셈이다. ‘KBS구성작가협의회’ 게시판 익명 글을 통해 사건이 알려지면서 SBS 내부 제보 센터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6일 부당 해고를 주장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었다.

뉴스토리는 SBS 기자 1명, 메인작가 1명, 막내작가로 불리는 후배 작가 1명이 한 팀을 구성해 총 6팀이 3주에 한 번씩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방송은 매주 토요일 오전 7시40분부터 50분 간 방영했다. 한 팀은 1회당 15분 분량을 준비했고 두 팀이 1주 방송에 투입됐다. 메인작가는 총 7명이었다.

작가들에 따르면 연말부터 프로그램 개편 얘기가 돌아 작가들이 불안해 했지만 일방적으로 쫓아낼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목요일인 지난 22일까지 SBS로부터 개편 관련 공식 통보는 없었다.

▲ SBS 뉴스토리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SBS 뉴스토리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한명씩 불러서 통보

A작가는 “개편 얘기가 나올 때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작가들과 같이 논의하자고 할 줄 알았다”며 “정권이 바뀌었으니 시사를 강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 정도만 했다”고 말했다. 두 달 전쯤 박아무개 부국장으로 데스크가 교체됐고 기자도 일부 인사이동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3일 SBS 보도국 소속 김아무개 부장은 각 팀의 메인작가들을 한명씩 불러서 ‘시사를 강화하려는데 다함께 가진 못할 것 같다’, ‘같이 일하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등의 입장을 전했다. SBS 측은 지난 23일, 50분 간 한 가지 주제로 방송하기로 개편 방침을 정했다.

A작가는 “(언론을 억압하는) 지난 정권 분위기 탓에 연성 아이템 밖에 못했던 것이고 작가 혼자 아이템을 선정하는 게 아니라 기자 등과 같이 했다”며 “통보를 받았을 때 작가들은 ‘나만 잘리겠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전체를 해고할 거라고 예상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 불러서 왕작가(가장 선배인 C 아무개 작가) 한 명만 살리고 다 정리한다고 하면 반발할까봐 방송을 마친 작가들 순으로 한 명씩 불러 통보한 것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해고’ 통보를 받았다가 다시 같이 일하게 된 작가도 있었고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알린 작가도 나왔다.

김광일·박환성·이한빛 PD 사망 이후 방송사 ‘갑질’ 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체부 등 5개 부처는 방송사에 표준계약서 작성을 권고했다. SBS도 지난달 이에 따라 뉴스토리 작가들과 두 달(1월29일부터 3월30일까지)짜리 계약서를 작성했다. 작가들 중엔 SBS와서 쓴 첫 계약서라는 이도 있었다. A작가는 “한 작가가 계약 기간 얘기를 꺼내니까 선심 쓰듯 ‘그럼 3월30일까지 일하실래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계약서가 어떤 안전장치도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해고 사유를 모르는 작가들

작가들은 기자들, 데스크, 메인작가 6명 중 유일하게 ‘해고’ 통보를 받지 않은 C 작가 등이 자신들의 ‘성향·역량’ 등을 문제 삼아 해고했다고 주장했다. B작가는 미디어오늘에 “물론 작가 이름으로 받는 건 아니지만 뉴스토리에서 일하면서 기자 상을 3번 받았고, SBS노조에서 주는 상도 받았다”며 “프로그램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한 가지 주제로 구성되는)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작가들이) 못할 거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 작가들 원고를 본 적 있는지 등 작가들에 대한 평가의 근거를 물었는데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 서울 양천구 SBS 본사. 사진=연합뉴스
▲ 서울 양천구 SBS 본사. 사진=연합뉴스

 

작가들은 C 작가를 ‘사측 작가’라고 표현했다. B작가는 지난해부터 막내작가들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를 SBS노조 등을 통해 제기했는데, 당시 C 작가가 이를 불쾌하게 봤다고 전했다. 또한 C 작가가 B작가에 대해 기자들과 호흡이 안 맞는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해고’된 작가들이 C 작가가 이번 평가에 가담했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다.

 

C 작가는 자신이 해고사태를 주도하지 않았고 주도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부장, 데스크, 담당 기자들이 한참 회의를 하고 나서 나부터 불러서 개편 방침과 작가들이 정리될 거라고 통보했다”며 “1시간짜리 방송 같이 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의견을 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명씩 통보를 했다는 걸 알고 났을 때는 (내 주장이) 안 받아들여진 이유를 후배들에게 설명할 기회가 없었다.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며 “당시 문제제기를 못한 부분도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C 작가는 자신이 평소 문제 제기를 강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SBS 보도국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사측 작가’라는 오해를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막내작가 페이 올리는 건 당연히 동의한다”며 “작가들의 문제 제기 방식에 대해 이견이 있었을 뿐이다. 외부에 알리기 전에 내부에서 소통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뉴스토리에서는 지난 2016년에도 임신한 작가가 쫓겨난 적이 있었다. B작가는 당시 C 작가가 이 문제를 외면했다고 주장했고 C 작가는 당시 함께 문제를 제기했다고 반박했다.

프로그램 폐지 걱정하는 작가들

A작가는 “문제를 제기할 때 주변에서 만류가 심했다”며 “논란이 커져 SBS가 아예 프로그램을 폐지한다고 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뉴스토리에는 후배 작가(막내작가) 6명, VJ로 불리는 비정규직 PD 4명 등이 남아있다. SBS 측은 “개편 프로그램에서도 최대한 기존의 계약을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답했다.

작가들에 따르면 익명 글을 통해 문제 제기한 이후 담당 부국장과 부장이 자신들을 만나자고 했으나 작가들은 아직 이들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프리랜서들은 회사 측과 도급 계약인지 고용 계약인지를 두고 다투게 된다. 작가들은 SBS의 실질적 지휘·감독을 받은 증거들을 수집해 부당 해고에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A작가는 “처음엔 나만 잘린 줄 알았다. 괴로워서 피하고 싶었는데 후배가 ‘왜 부당한 해고인데 저항하지 못했느냐’고 해서 마음이 아팠다”며 “이런 관행,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정부와 방송사의 대처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방송계갑질119’ 스태프 김혜진씨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표준계약서는 5개 정부 기관이 해결 방안이라고 만든 건데 처벌 조항이 없다. 갑이 문제를 일으킬 때 을이 할 수 있는 건 계약 해지밖에 없어 갑에게 유리한 계약서”라며 “관리 감독 기관들이 문제에 얼마나 허술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씨는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은 인정되는 건데 법률적 판단을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가 이뤄지고 있다”며 “작가들도 근로 계약서를 써야 하며 노동법상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SBS 윤리경영팀은 각종 갑질 제보를 받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SBS본부
▲ SBS 윤리경영팀은 각종 갑질 제보를 받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SBS본부

 

방송사의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씨는 “SBS가 ‘상품권 페이’ 이후 반성한다며 갑질 제보센터를 만들었는데, SBS와 관련 없는 제3자가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효과가 없다고 119쪽에서도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며 “방송사들이 자체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겉으론 반성하지만 진정성도 없고 해결도 안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 해결의 주체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방송계갑질119 측은 해당 작가들을 돕겠다고 밝혔다.

SBS 측은 27일 미디어오늘에 “23일 개편이 결정돼 최대한 빨리 포맷 변경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며 “작가들과 1대1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개별 면담을 통해 전달했다”고 답했다. 이어 “작가진 교체는 개편으로 인한 불가피한 ‘계약 종료’이지 부당 해고가 아니”라며 “모두 함께 가지 못하는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SBS 측 답변 전문.

SBS 뉴스토리 (매주 토요일 7시40분-8시30분 방송)은 보도본부 기자들이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입니다. SBS 보도본부는 봄 개편을 맞아 뉴스토리의 심층성을 강화해 본격 탐사기획 프로그램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매거진 형식을 버리고, 러닝타임 50분 동안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방침입니다.

지금까지의 뉴스 매거진 형식에서는 기자 1명이 작가 1명과 협업해 15분 분량의 방송을 준비해왔습니다. 모두 기자 6명과 작가 7명이 함께 일했습니다. (작가 1명은 TV밖뉴스 담당)

개편으로 포맷이 변경되면서, 현재의 ‘기자 1명-작가 1명’의 팀 시스템을, ‘기자 2명-작가 1명’이 방송을 준비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작가의 숫자가 절반으로 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작가 7명 가운데 두 명은 먼저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두 명은 새로운 팀과 계속 일하게 됐습니다. 작가 7명 가운데 3명에게 계약 종료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기자들과의 협업, 시너지 효과 등등 최상의 결과물을 위한 최적의 조합을 찾는 고민 끝에 내려진 결정입니다. 포맷 변경으로 인해 함께 일하는 작가의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게 됐고, 잔류를 원하는 분들이 모두 함께 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3월 24일부터 포맷이 바뀐 새 프로그램이 방송되기로 결정된 지난 23일 오후, 작가들에게 개별적으로 면담을 신청해 이런 내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이미 다음 방송 아이템 찾기에 들어간 작가들에게 최대한 빨리 포맷 변경 사실을 알리는 게 도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계약 종료를 통보하게 되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개편 프로그램의 첫 방송이 얼마 남지 않아 가능한 빨리 조직을 정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서 작가들과 1대1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런 내용도 개별 면담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뉴스토리의 심층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습니다. 지난해 12월 보도본부 인사 이후 전 부서원에게 이 점을 재차 강조한 바 있습니다. 앞서 작가/VJ와 계약을 맺으면서 개편이 3월말쯤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계약기간을 1월 2일~3월 30일까지로 정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개편이 있을 경우 계약이 종료될 수 있다는 점도 합의했습니다.

이번 작가진 교체는 개편으로 인한 불가피한 ‘계약 종료’이지, 부당 해고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일해온 스태프 (작가 7명, 보조작가 6명, VJ 4명 총 17명) 가운데 포맷 변경으로 인해 숫자가 줄어드는 작가 외에는 개편 프로그램에서도 최대한 기존의 계약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동안 뉴스토리에서 열심히 일해주신 작가들이 포맷 변경으로 인해 모두 함께 가지 못한다는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작가들이 뉴스토리에 보여준 애정만큼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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