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천안함 폭침 주범’이 평창 온다.”

지난 23일자 조선일보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방남 소식에 이처럼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뽑았다.

조선일보는 김 부위원장에 대해 “과거 정찰총국장으로 있으면서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각종 대남 도발을 기획·지휘한 장본인”이라며 “당시 미 오바마 행정부가 김영철을 독자 제재 대상으로 선정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난 24일 오후부터 ‘천안함 폭침 주범 북한 김영철의 방한 철회’를 요구하며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서 도로 점거를 하는 등 25일 오전까지도 농성을 이어갔다. 보수 진영이 ‘천안함’으로 결집하고 있는 모양새다. 천안함 유족회도 김 부위원장의 방남 철회를 촉구하는 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 세계일보 2010년 4월10일자 1면.
▲ 세계일보 2010년 4월10일자 1면.

김 부위원장이 천안함 침몰사고 주범이라는 의혹을 처음 제기한 언론은 세계일보다. 세계일보는 2010년 4월10일자 1면 “‘천안함 침몰은 北 정찰총국 소행’”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우리 군 당국은 천안함 침몰 사건이 대남공작을 총괄하는 북한 정찰총국에서 수행한 테러공작이고, 정찰총국장인 김영철 상장(중장)이 진두지휘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군의 한 고위 소식통’은 “이번 사건이 황해도 사곶에 위치한 북한 해군 8전대사령부가 수행한 군사작전이 아니라 지난해 5월 조직이 확대개편된 북한 국방위원회 산하의 정찰총국이 저지른 테러공작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천안함 인양 후 함체 정밀조사 등을 통해 드러나겠지만 현재로선 북의 소행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건 전후로 우리가 파악한 정보상황에 북한군 움직임이 전혀 감지되지 않은 점도 정찰총국의 은밀한 작전수행 때문이라고 본다”며 “서해 수심이 얕아 잠수정이 활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역이용했고 실패를 염두에 둔 작전을 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말미에서 세계일보는 “앞서 원세훈 국정원장도 지난 6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만일 북한이 연관됐다면 정찰총국에서 진행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어진 기사(3면)에서도 세계일보는 “군 정보당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를 받고 천안함을 공격한 장본인으로 북한 국방위원회 산하의 정찰총국 총국장 김영철 상장을 지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천안함 폭침 주범은 김영철’이라는 주장은 MB정부 ‘군 정보당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 보도 직후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보도 사실 여부는 지금으로서 알 수 없고 북한 관련 정보는 확인해 줄 수도 없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지난 24일 사설에서 “김영철이 천안함 피격 당시 ‘정찰총국장’을 맡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천안함 사건의 ‘주범’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분명치 않다”며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어떤 기관, 어느 인물이 주도했는지 특정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이어 “미국과 한국 정부가 그를 독자 제재 대상에 올릴 때도 천안함 사건과 직접 연계하진 않았다”며 “그에 대한 제재는 금융제재일 뿐 여행 금지는 아니어서, 이번 방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라며 조선일보 주장을 반박했다.

국가정보원도 지난 23일 국회 정보위에서 “(배후로) 추측은 가능하지만 명확하게 김영철이 지시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의 주범은 김영철이 아니라 김정일, 김정은”이라면서도 “북한에서 이들의 지시가 없이 누가 그런 공격을 할 수 있을까. 김영철이 무죄란 것이 아니라 주범이 누군지는 분명히 하자는 말”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주 기자는 “전쟁 중이라도 적장과 만날 수 있으면 만나야 한다”며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서 만나고 들어봐야 한다”고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김영철 부위원장을 포함한 북측 고위급대표단은 25일 오전 10시경 경의선 육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은 뒤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김 부위원장은 “천안함에 대해 어떤 생각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이동했다. 이들은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 행사 참석 차 방남했다. 이들 방남으로 북·미 대화가 올림픽 이후 진전을 보일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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