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투(Me Too)’ 운동 확산으로 불거진 연극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의 ‘여성단체는 왜 조용하냐’는 발언에 한 여성단체가 답했다.

유 대표는 지난 21일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지금 연극계에서 정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이(성폭력) 문제가 퍼지고 있다”며 “우리사회의 소위 운동권, 좌파세력과 진보정당이라는 사람들, 청와대와 여성단체 전부 다 왜 이러는지 모두 입 다물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진 후 이씨가 지난 19일 사과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 되자, 유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선 바른미래당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꼭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유 대표의 말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외려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을 여성단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미 유 대표에 앞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 20일 이윤택 전 감독 관련 메시지를 내고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관행과 욕망의 껍질을 벗기고 범죄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당국은 피해자들의 추가적인 용기와 고백에 기댈 것이 아니라 강력한 처벌로써 우리 사회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녹색당도 이날 논평을 내고 “‘선생님’과 함께 연극을 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영광과 자부심으로 알며, 기꺼이 박봉에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을 ‘어린’ 여성 단원들을 수십 년간 철저히 성적으로 착취하고 ‘거장’의 권위로 은폐한 성범죄자에게 어울리는 것은 자기합리화를 위한 마이크가 아니라 차디찬 수갑과 감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지난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제1차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지난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제1차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유 대표는 본인의 발언 때문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여성단체연합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도 21일 성명을 내고 “이윤택 감독은 성폭력을 ‘성관계’라고 표현하면서 피해자들이 힘겹게 폭로한 범죄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스승’을 지키기 위해 범죄를 은폐하려 한 내부의 동조자들은 ‘지옥의 아수라’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권력형 성폭력”이라고 질타했다.

유 대표의 여성단체 지적 발언에 연봉 70만 원, 주 5일 하루 12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는 있다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활동가들도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23일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를 통해 “유승민 의원이 입 다물고 있다고 언급한 여성단체 중 한 곳”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우리도 MeToo 운동을 통해 뭔가 할 수 있지는 않을까 고민해 보았지만, 처리해야 할 사이버 성폭력 사건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는 탓에 피해자 지원 등의 다른 사업이 벅차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그중 상당 부분을 시민단체인 우리가 하고 있기 때문이고, 문제 해결이 꼭 필요한 분야에 자원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아 왔기 때문”이라며 “애초에 정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한사성 같은 여성 단체는 필요 없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누가 무슨 일을 해 왔는지 잘 알아보지도 않은 상태로 ‘왜 여성단체는 입 다물고 있냐’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는 것은 상대의 일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한사성을 포함한 여성단체들은 항상 우리 사회의 성폭력·성추행 문제를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면서 “피해자들이 #MeToo를 외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유 의원도 여성단체와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이들은 유 대표에게 직접 #MeToo 운동에 동참하시는 것도 제안했다. 특히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불거진 고위공직자 성 접대 의혹 사건 당사자(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가 피해 여성의 증언과 증거 영상에도 무혐의 처분을 받고 현재도 아무 문제 없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사성 활동가들은 “이런 선례가 존재하는 현실이 두려워 선뜻 me too를 외칠 수 없는 피해자를 위해 유 의원이 먼저 소신 있게 주변에서 보고 들은 성폭력 사건을 소리 높여 이야기해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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