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KBS 사장은 창사 이래 처음 시민의 검증을 받게 된다. KBS 이사회는 그간 ‘밀실 인사’ 비판을 받아 온 사장 선출 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시민자문단 150여 명의 숙의 결과를 40% 반영해 사장 내정자를 선출하기로 했다.

시민의 손에 중요한 열쇠가 주어진 만큼 KBS 내부에서는 특정 후보를 거명하며 지지·비판하는 행위를 삼가는 모양새다. 공정성 유지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만, 그와 동시에 후보자 검증을 위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민자문단 평가를 받을 KBS 사장 최종 후보자는 양승동 KBS PD,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전 KBS PD), 이정옥 전 KBS글로벌전략센터장 등 3인(가나다 순)이다. 정책 평가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각 후보자 면면을 정리했다.

▲ KBS 사장 후보자. 왼쪽부터 양승동 KBS PD, 이상요 세명대 교수(전 KBS PD), 이정옥 전 KBS글로벌전략센터장.
▲ KBS 사장 후보자. 왼쪽부터 양승동 KBS PD, 이상요 세명대 교수(전 KBS PD), 이정옥 전 KBS글로벌전략센터장.

이명박·박근혜 언론 장악에 맞선 선명성

1989년 KBS에 입사한 양승동 PD는 사장 후보자 중 유일한 현직이다. 양승동 PD는 2008년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전신인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사원행동’ 공동대표로서 정연주 사장 강제 퇴출에 맞서다 파면됐다. 2008년 8월8일 정 사장 강제 해임에 저항하는 KBS 언론인들을 저지하기 위해 KBS에 경찰력이 투입됐던 이른바 ‘8·8사태’는 MB정부 KBS 장악의 상징적 사건이다. 양 PD에 대한 파면 처분은 재심을 거쳐 정직으로 조정됐으나 그는 한동안 제작 일선에서 배제됐다.

앞서 KBS 구성원들과 시민사회 등은 차기 KBS 사장 요건으로 ‘지난 시기 정권 방송장악에 맞서 KBS구성원들과 함께 싸운 인물’을 제시했다. KBS 기자들(27·31기)은 22일 성명을 내고 “(적폐 청산은) 크고 작은 난관을 돌파할 구성원들의 절대적 신뢰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양 PD는 후보자 3인 가운데 이 조건을 가장 충족하는 이력을 지닌 셈이다.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지나치게 강경한 인물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PD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 10년을 청산하고 새로운 KBS를 열어가는 과정에는 우리가 왜 싸워왔는지 명확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구성원들의 바람과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 PD는 그간 ‘KBS스페셜’, ‘추적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연출했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KBS스페셜), 한국PD대상 공로상, 제23회 통일언론상 대상(KBS스페셜) 등을 수상했다. 그는 KBS PD협회장, 한국PD연합회장을 역임했다.

정년 퇴임 때까지 MB정부 ‘블랙리스트’ 피해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KBS 안팎에서 유능함을 인정받았던 PD다. 그의 대표작인 6부작 ‘차마고도’는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하고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됐다. 1985년 KBS 입사 이후 그는 ‘KBS스페셜’, ‘역사스페셜’, ‘추적60분’ 등 간판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작·연출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시절에는 KBS 정책·조직·예산을 담당하는 기획팀장을 지냈다.

하지만 이상요 당시 PD는 2008년 이후 정년을 채울 때까지 보직에서 배제됐다. MB정부 국가정보원은 2010년 작성한 문건에서 그를 ‘정연주 추종 인물’이자 ‘무관용 원칙’ 대상으로 간주했다. 과거 그가 조봉암·장준하·전태일 등을 조명했던 프로그램은 보수 진영으로부터 ‘빨갱이 프로그램’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는 MB정부 하에서 KBS 체제에 협조적이지 않은 ‘좌파 인사’로 분류됐다.

이상요 교수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KBS에서 불이익을 당해 온 사실은 자명하다. 그는 최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보직 제안이 왔을 때) 작은 직급이지만 보직을 맡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자기 소신을 밝혔다. 다만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로 인해 KBS 구성원들이 탄압 받고 공영성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전면적으로 정권에 맞서지 않았다는 점은 한계로 남는다.

지난 2014년 KBS에서 정년퇴임한 이상요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후학을 양성해왔다. 지난 2016년 KBS 경영평가위원을 맡았던 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심의위원, 계간 ‘공영방송’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 화려한 이력 뒤 논란

이정옥 전 KBS글로벌전략센터장은 1979년 TBC 보도국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언론통폐합에 따라 이듬해 KBS 기자로 활동했다. 문화부, 경제부 등을 거친 이 전 센터장은 가장 오래 국제부에서 일한 여성 기자, 최초 여성 파리특파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는 KBS에서 국제협력 주간, 보도본부 해설위원 등을 맡기도 했다.

이 전 센터장 부친은 4.19혁명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의 최루탄 사망 사건’을 보도한 이강현 초대 한국기자협회장이다. 이 전 센터장 본인은 KBS 기자로서 이라크 전쟁, 코소보 내전, 예맨 피랍 사건 등을 취재했다. 이 전 센터장은 최근 여성신문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의 기자 정신을 잇기 위해 계속해서 뛰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 센터장이 KBS 요직을 맡을 땐 논란이 뒤따랐다. 이 전 센터장은 ‘MB 방송 특보’ 출신 김인규 전 KBS 사장이 회장을 맡았던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시절 출장비 과다 지출로 감사를 받았다. 이 전 센터장은 2010년 프랑스 칸 ‘MIPTV 2010’ 행사 출장 당시 하루 숙박비 100만원이 넘는 곳에 묵어 숙박비 상환을 초과했고, 감사를 받은 뒤 초과분을 반환했다. 이 전 센터장은 또 직원 3명을 숙박비 과다 지출로 징계위에 회부해 ‘화풀이 징계’ 논란을 불렀다.

이로 인해 길환영 전 KBS 사장이 이 전 센터장을 글로벌전략센터장으로 임명할 때도 ‘부적격 인사’를 요직에 앉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KBS 새노조는 성명을 내고 “(센터장 인사 관련) 검증을 제대로 했는지 묻고 싶다”며 “(길환영 사장의 KBS가) 부적격 인사, 검증 실패, 내정설 등으로 얼룩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센터장이 보수 정권의 언론장악 시절 KBS에서 요직을 맡았다는 점은 나머지 두 후보와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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