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문화예술인들의 ‘#MeToo(미투·나는 고발한다)’ 운동 참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남성 폭력피해자들의 고발 목소리도 서서히 나오고 있다. 여성을 폭력 피해자로 상정하는 사회 통념이 강한 탓에, 미투운동에 동참하지 못하는 남성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19일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는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투 동참글을 남기며 “우린 남자이기에 부끄럽지 않아도 된다고, 다 큰 남자새끼가 뭐 고작 이런 일로 힘들어 해야겠냐고 계속해서 정신을 다잡았다”면서 “모든 게 잘 끝났으니 ‘이제 신경쓰지 말자’, ‘괜찮을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고 적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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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따르면 A씨와 그의 동성 친구 B씨는 지난 2014년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던 중 함께 있던 한 남성 교수로부터 강제추행 및 성행위 강요를 당했다. A씨는 “너무나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면서 ‘이건 아닌 것 같다’ ‘왜 이러시느냐’ ‘그냥 제발 주무시라’ 등의 말을 하며 교수를 제지했다. 교수는 그들에게 ‘넌 내 왼쪽, 넌 내 오른쪽에 누워라’며 화를 내면서 명령했고 “일말의 자책감도 느끼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며칠 후 이들은 “우리와 같은 피해자를 만들지 말자”는 심정으로 전임교수에게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알렸다.

“죄인은 당당했고 피해자는 고개를 숙였다.” 글에 따르면 사과를 하기 위해 이들을 찾은 가해 교수는 분노가 가득한 표정으로 사과 인사를 전했고 이에 피해 학생들은 고개를 숙인 채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 무용계 관계자는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무용계에도 동성 간 성폭력 사건들이 다수 발생해왔다. 가해자는 한 저명한 대학교수인데 피해자들이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를 공개하지 못한다”면서 “무용계는 문화예술 중에서도 판이 좁아 더 폐쇄적이다. 교수에게 밉보이는 순간 경제활동 등도 거의 끊기는 구조이기에 피해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내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성적 폭력 뿐만 아니라 신체 폭행·폭언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008년부터 2009년 초까지 대학로에서 신인 개그맨으로 활동한 한 익명의 시민 C씨는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개그계도 미투 동참할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청원 글을 올렸다.

C씨는 이 글에서 “동기 친구와 함께 특정 개그맨에게 언어 폭행은 물론이고 빠따 및 주먹으로 일년 동안 엄청나게 맞았다”며 “덕분에 저는 왼쪽 귀가 한동안 잘 안들려서 고생했다”고 밝혔다. 

▲ 지난 2월22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개그계도 미투 동참할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 청원글 중.
▲ 지난 2월22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개그계도 미투 동참할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 청원글 중.

연극인 김태형씨도 지난 20일 페이스북 미투 동참 글에서 “이윤택 극단에서 폭력(손찌검, 인격모독)을 당하다 못 견디고 야반도주하는 배우들이 있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어디선가 들은 바 있다”면서 “미투 운동이 확산된 것은 폭력(어떠한 형태든)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좌절된 남성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피해 당사자들은 사건 당시 교수·선배인 가해자들과의 위계질서 속에서 두려워했거나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극인 A씨는 “‘우리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군대를 전역하고 겨우 마음을 잡고 첫 발을 내딛은 우리의 인생이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로 이렇게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건가’ 하는 두려움에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며 그저 슬퍼해야만 했다”고 적었다.

개그맨 C씨는 “당시에는 개그맨에 대한 꿈이 너무 컸기 때문에 성희롱적인 발언, 폭행 등 당연하게 버텨야 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잘못된 건 밝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었다.

성폭력은 남성과 여성 간 문제가 아닌 수직적 상하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 간 폭력 문제로 분류된다. 위계질서 내 약자인 남성들은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은폐된 남성 피해자 또한 적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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