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언론사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에서 경찰이 편파 수사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수서경찰서 담당 수사관이 고소인(언론사 기자의 고향 후배)을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채 수사를 마무리 짓고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가 고소인이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문제를 제기하자 경찰이 고소인에게 추가 진술을 받겠다고 태도를 바꿔 의심이 더해지고 있다. 고소인은 수서서로 이첩되기 전 동대문경찰서에서 고소인 조사를 한번 받았다. 경찰 측은 ‘검사의 판단으로 보강 수사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고소인 A씨와 피고소인인 언론인 B씨는 전북 부안군 재경향우회 산하 모임으로 출범한 청년회 모임에서 각각 감사와 회장을 맡고 있었다. B씨는 유력언론사 논설위원 출신으로 현재 한 종편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청년회 행사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있었고, 해당 행사에선 A씨가 소개한 조명·음향업체가 청년회로부터 돈을 받지 않고 공연을 담당했다. 해당 행사에 필요한 비용(음향·무대 등)은 A씨가 사비로 조명·음향업체 쪽에 지불했다.

오후 10시에 행사가 끝나고 곧바로 청년회 소속이 아닌 C씨 주최의 행사가 이어졌는데 해당 조명·음향업체에게 공연을 부탁했다. 해당 조명·음향업체는 A씨의 입장 등을 고려해 평소 공연비의 절반에 못 미치는 100만원만 받고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공연을 담당했다.

해당 행사 이후 B씨와 그의 측근은 ‘A씨가 무료 행사인데도 조명·음향업체를 통해 100만 원을 받았다’고 청년회 안팎에 소문을 냈다. 또 ‘A씨가 일부 회원의 (청년모임) 회비를 대납해줬다는 얘기가 있더라’는 주장도 했다.

A씨는 “공연을 해줬으면 그에 대한 대가를 조명·음향업체가 받는 건데, 그 돈을 내가 왜 받느냐”며 B씨의 주장들이 허위라고 지적했다. A씨는 “나를 파렴치한으로 만들어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잃게 만들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명·음향업체 관계자는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추가된 공연은 청년회랑 관계없는 행사여서 거래가 있었다”며 “돈은 내가 받고 내가 썼다”고 말했다. 반면 B씨는 “오후 10시 이후 행사에도 같은 음향장비를 사용하게 된 게 A씨 소개로 인한 것이며, 둘이 협력관계이기 때문에 사실상 A씨에게 돈이 갔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B씨는 A씨가 조명·음향업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거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으며 경찰 수사에서는 자신의 측근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재경부안군청년회 밴드에 올라온 글. A씨의 도덕성을 문제삼고 있다.
▲ 재경부안군청년회 밴드에 올라온 글. A씨의 도덕성을 문제삼고 있다.

A씨는 B씨를 지난해 8월 초 동대문경찰서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B씨가 자신에 대한 음해를 중단하고 청년회에 복귀시키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뜻도 알렸다. 하지만 오히려 A씨는 고향 선후배들을 통해 고소 취하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청년국 한 임원은 “B씨와 B씨 측근이 다른 회원들에게 A씨를 비판하는 글을 대신 올리도록 한 것도 내가 확인했다”고 말했다.

해당 고소 건은 같은 해 8월30일 경 수서경찰서로 이첩됐다. A씨는 자신이 추가로 진술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고 동대문서 수사관에게 당부했지만 수서경찰서는 결국 A씨를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채 지난해 11월24일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동대문서에서 A씨에 대해 고소인 조사를 했고, 수서서에서 B씨에 대해 피고소인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담당 수사관은 11월21일부터 A씨에게 사건을 검찰에 넘기겠다고 말했고 검찰이 최종 불기소할 경우 검찰 항고나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고 불복 절차를 알렸다. 22일 수사관은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갈 것이라고 최종 통보했다. A씨는 억울한 마음에 불기소라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수사관은 수사 원칙대로 ‘수사 중인 사건은 더 이상 말해줄 수 없다. 검찰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답했다.

A씨는 “사건 초반에는 우호적이었다. ‘고소인의 취지대로 갈 것’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윗선 결재 받는데 한참(약 3일) 걸리다가 불복 절차에 대해 설명해서 이상했다”며 “계속 B씨의 편의만 봐주면서 시간을 끌더니 불기소 의견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담당 수사관이 외압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A씨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A씨는 지난해 11월24일 오후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 ‘청장과의 대화’에 억울한 사연을 올렸다. 

3일 뒤인 11월27일 담당 수사관의 상급자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고소인(A)께서 동대문서에서 사건을 (수서서로) 넘긴다고 할 때 ‘추가로 진술하고 싶다’는 메모를 남기셨는데 이걸 (경찰이) 누락한 것 같다”며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하니 추가로 받아서 검찰로 넘길지 검사님과 협의해보겠다”고 말했다. 경찰이 초동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 서울 수서경찰서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서울 수서경찰서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2018년 2월 현재, 사건은 담당 수사관이 수사 중이다. A씨는 “수사관을 교체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지만 그럴 경우 담당 수사관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고, 수사가 더 늦어질 것 같아 수사관을 교체하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여전히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B씨 위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B씨에게 유리한 증인들은 채택하면서 A씨가 요구하는 증인은 최소한으로만 인정한 것’, ‘대질신문 자리에서도 B씨의 주장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 등을 A씨는 근거로 들었다.

최근 대질신문 자리에 조명·음향업체 관계자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B씨가 ‘무료 공연인데 A씨가 조명·음향업체를 통해 돈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 명예훼손 고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조명·음향업체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A씨가 나(조명·음향업체)에게 100만원을 따로 받았는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인데, 수사관은 ‘왜 공연을 했느냐’ 등 쓸데없는 질문만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수사관은 지금도 내가 반론을 제기하려고 하면 말을 끊고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한다”며 “피고소인(B씨)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자꾸 수사 방향이 틀어지는 거라면 힘없는 약자들은 어찌하느냐”고 말했다.

A씨는 기소·불기소 여부에 앞서, 공정하게 수사하고 그 결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어가더라도 그 근거를 충분히 설명해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눈치보기식 수사는 있을 수 없고, 경찰은 최종 처분권자가 아니므로 수사에 관한 내용은 더 이상 고소인에게 말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B씨는 “고소인은 수사관과 많은 얘기를 주고 받았지만 난 실제로 조사받은 것 말고는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하루는 일 때문에 못가겠다고 했더니 ‘소환불응’이라고 처리하려고 해서 장문으로 바쁘다로 쓴 적도 있다. 나의 편의도 봐주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지난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수사 종결권자인 검사가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다시 내려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며 “편파 수사는 절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명예훼손 사건의 경우 고소인은 기소가 안 될 경우 항의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정하게 수사해도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재수사에 돌입한 이후 양측의 참고인의 의견을 듣고, 대질신문도 수차례 진행했다. 또한 향후 수사에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하겠다고 밝히는 등 편파수사 의혹에 대처하는 모습이다.

※ 2월28일 오후 17시45분 : 기사 수정 및 보완
※ 5월24일 오전 10시10분 : 기사 수정 및 보완
※ 5월25일 오후 13시44분 : 기사 수정 및 보완


[ 반론 ]

미디어오늘은 기사 작성 전 언론인 B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B씨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기사가 출고된 이후 B씨는 취재에 응했고, 지난 2월28일 B씨의 입장을 반영해 기사 일부를 수정·보완했다. B씨가 지난 21일 재차 입장을 보내 이를 반영하기로 했다.

피고소인인 B씨는 A씨가 사장으로 있는 공연팀과 조명·음향업체 관계자가 협력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A씨는 자신과 조명·음향업체 관계자가 별도의 법인이라는 걸 강조했지만 B씨는 “A씨의 공연 때마다 조명과 음향을 제공하는 업체”라며 “A씨 공연의 조명음향 파트 담당업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해당 업체에서 무료로 조명과 음향을 제공하는 걸로 알고 있다가 나중에 A씨의 요구로 돈을 줬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C씨 행사에 해당 조명·음향업체가 돈을 받아간 것이 A씨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B씨는 “A씨 공연팀의 조명·음향 파트가 C씨에게 조명·음향을 제공한 것은 A씨 요청에 따른 것이고, 당일 100만원의 가격을 내놓으라고 주장한 것도 A씨”라며 “조명·음향업체 관계자 계좌로 돈을 보내라고 하고, 계약·서비스의 질·계약 내용 등을 결정한 사람도 A씨”라고 주장했다.

청년회에서 A씨를 제명한 것에 대해 B씨는 “A씨를 음해한 일이 없다”며 “A씨가 내게 ‘음해를 중단하고 청년회에 복귀시키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뜻을 밝혀온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청년회에서 자격박탈과 영구 제명키로 한 것은 청년회 간부의 절대다수 의견이지 회장이 멋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회원에게 비판하는 글을 올리도록 한 것 역시 B씨는 “남에게 시켜서 A씨를 비판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편파 수사 논란에 대해 B씨는 “대질신문 자리에서도 경찰은 양쪽 주장을 그대로 들어줬다”며 “A씨가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것을 마치 경찰관이 편파 수사한 것처럼 말하고 내 주장을 중심으로 경찰관이 사건을 재구성했다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A씨의 주장을 종합하면 마치 B씨가 경찰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B씨는 오히려 A씨가 자신보다 수사과정을 더 자세하게 고지 받았고, 경찰 쪽에서 자신에게 차갑게 대한 점 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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