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새기겠습니다” “유념하겠습니다.” “지적 고맙습니다.” TV조선 간부가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출석해 한 말이다.

TV조선이 달라졌다. 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들어서면서 생존이 걸린 심의가 시작되다보니 조심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종편은 1년에 오보·막말·편파방송 관련 법정제재를 4건 이상 받으면 시정명령을 받고, 반복되면 재승인이 취소되는 재승인 조건이 붙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방통심의위 설립이 해를 넘기면서 안건 1년치가 쌓인 상태다.

이날 TV조선은 두 차례 의견진술을 했다. 방통심의위의 단골 의견진술자였던 손형기 전문위원이 다른 관계자 2명과 함께 회의실에 입장했다. 같은 날 의견진술을 한 MBN이 담당 간부 한명만 출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TV조선 의견진술 때마다 방통심의위 사무처 직원들이 의자를 추가로 옮겼다.


▲ TV조선 사옥.
▲ TV조선 사옥.
지난해 3월6일 방영된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에서 패널이 “문재인 대표 추미애 대표까지 총동원령을 내리고 촛불집회를 선동한다” “촛불정국을 통해서 정권을 탈취하겠다고 하는 기획”이라고 한 발언이 심의에 올랐다. 이날 토론은 사실상 3:1 구도로 민주당에 불리한 내용이 이어졌지만 진행자인 전원책 변호사는 문제적 발언을 제지하지 않았다.

손형기 전문위원은 과거 ‘공격적 태도’로 자유한국당 추천 심의위원들마저 분노하게 한 전력이 있다. 2016년 3월 그는 장성민 앵커의 편향적인 진행이 문제가 되자 “사회자가 질문만 던지는 기존 프로그램의 전형적인 진행방식에서 탈피해 진행자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토론을 이끄는 신개념 토크프로그램”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또 “특정 야당이 표적성이 의심되는 민원을 계속 넣고 있는데 이는 건강한 비판을 봉쇄할 우려가 있습니다” “언론 흔들기”라며 맞섰다.

2016년 3월 TV조선 뉴스에서 앵커가 심상정 의원에게 “김정은에 애정이 있냐”고 물은 대목이 심의를 받았다. 손형기 전문위원은 “심상정 대표에 대한 국민의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라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13년 의견진술 때는 TV조선 뉴스에 출연한 정미홍씨가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성환 노원구청장이 종북이라고 발언한 점이 문제가 됐다. 손형기 전문위원은 당시 위원들의 지적에 물러서지 않고 “종북 발언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라며 “논란이 된 3명의 지자체장들은 ‘종북성향’으로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분들로 판단됩니다”라고 주장했다.

▲ TV조선 '장성민 시사탱크' 화면 갈무리.
▲ TV조선 '장성민 시사탱크' 화면 갈무리.

그는 심의규정을 언급하며 해당 사안이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잘라 말했고 사실과 다른 점에 대해서는 “취재미흡”이라며 “(문제가 된 건) 100개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여러 패널의 주장이 균형있게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짧은 시간 방송하려니 (여러 입장을 담는 게) 가능하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랬던 그가 180도 달라졌다. 누가 민원을 넣었는지 따지지 않았고, 편향성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태도도 사라졌다. 그는 “과거 심의에 여러번 지적받은 이후 제작진과 출연자에게 일일이 발언을 조심하라고 이야기 합니다”라며 위원들의 지적이 나올 때마다 미소를 짓고 수긍했다.

이날 TV조선은 해당 프로그램에 민주당 인사를 섭외했으나 펑크가 났고 다른 민주당 관계자를 섭외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해 편향적인 구도로 방송이 됐다고 소명했다. 손형기 전문위원은 “섭외할 때 애로사항이 있습니다”라며 “(의원들은 상대가) 재선이 나오냐 3선이 나오냐 그런걸  따집니다. 섭외를 (하지 않고) 방기한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심영섭 위원이 “앞으로 자주 오실 거 같은데 4기 방통심의위는 표적심의, 정치심의를 하지 않지만 중요한 건 사회자가 사회를 어떻게 보느냐”라며 “비슷한 문제가 또 발생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손형기 전문위원은 “지적 고맙게 생각하고, 담당PD들도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자리가 아니라 좋은 자리에서 위원님들을 뵙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답했다.

퇴장 후 MBN 의견진술이 이어졌고, 그 후에 손형기 전문위원은 다른 제작진 2명과 함께 다시 입장했다. 이번에는 종합뉴스9과 탐사보도 세븐에서 이영학의 아내가 추락해 사망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반복해 내보낸 점이 심의에 올랐다.

손형기 전문위원은 “계속 교육하고 있음에도 사고가 벌어지는 데 대해서는 유념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심의 이후 외주제작PD에게 계약해지 등의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밖에 나와서 PD를 구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오히려 교육시키고 보듬어서 우리 식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함께 출석한 강훈 부장은 “프로그램 책임자로서 깊이 자성하고 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일부 시청자에게 위화감을 줬다는 점에서 인정하고 자숙하고 있습니다”라고 사과했다. 김홍진 보도국 부본부장은 “선정적 영상을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금지조치 내렸습니다”라며 “전사적인 노력으로 방송심의규정을 준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방통심의위 방송소위는 한 건에 의결보류, 한 건에 경징계인 권고 제재를 내려 법정제재는 나오지 않았다. 방청객에 있던 타 매체 관계자는 “오늘 TV조선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27일 열리는 다음 방통심의위 방송소위에도 TV조선 안건 3건이 상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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