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은 KBS 장악을 위해 정권 친화적이지 않은 KBS 구성원들에 대한 사찰과 퇴출에 개입했다. 실력 있는 기자·PD들이 ‘좌파’로 낙인 찍혔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국정원의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 방안’ 보고서(2010년)는 정권에 충성하지 않는 이들을 배제하기 위한 ‘블랙리스트’였다.

이상요 당시 KBS PD도 블랙리스트 피해자다. 입사 이후 그는 ‘KBS스페셜’, ‘역사스페셜’, ‘추적 60분’ 등 간판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연출·제작했고, ‘20세기 한국사-해방’으로 방송위원회 최우수상을, 6부작 ‘차마고도’로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부산총국 제작부장, 개혁기획단 차장, 정책기획센터 기획팀장 등도 역임했다. 하지만 그는 MB 정부 국정원 문건에 ‘정연주 추종자’, ‘무관용 원칙’ 적용 대상으로 적시됐다. 2008년 이후 퇴임까지 ‘무보직’ 신세였다.

이상요 교수가 이명박 정부 KBS 장악의 유탄을 맞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 교수와 달리 도중에 보직을 받아 친정권 사장을 받든 인사들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로부터 KBS를 지키기 위해 행동해 온 인물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10년 가까이 누적된 갈등과 문제를 해소하려면 내부 구성원의 신뢰가 중요한데 이상요 교수가 KBS 사장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나올 수 있다. 

21일 서울 당산동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가진 이상요 교수는 “그러한 지적도 일리가 있다”면서도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쌓아 왔다. (특히) KBS 경영평가위원을 지낸 경험을 통해 KBS 문제를 균형감 있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1985년 KBS PD로 입사한 이상요 교수는 2014년 정년퇴임 이후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후학을 양성해왔다. 이 교수는 2016년 KBS 경영평가위원을 지냈고,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심의위원을 지냈다. 그는 지난 2014년 KBS 사장 공모 당시 최종 후보 6인에 오른 바 있다.  그리고 이번 KBS 사장 공모에서 최종 후보 3인에 올랐다.

▲ KBS 사장 후보인 이상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21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KBS 사장 후보인 이상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21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왜 KBS 사장에 출마하려 하나?

“2008년 들어 정연주 당시 사장을 몰아내는 등 여러 일이 벌어졌다. (KBS 퇴직) 이후 2015년 회계연도에 대한 KBS 경영평가위원을 맡았는데, KBS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걸 느꼈다. KBS는 사장 중심 체제라 (간부들이) 정권 눈치를 보거나 기회주의자들로 채워졌다. 보도·취재·제작에 관해서는 의욕을 잃은 상황이었다. 도덕성 뛰어나고 유능한 사람들은 변방으로 물러났다. 이걸 바꾸지 않으면 KBS가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치 지향적인 조직을 만들어 KBS 신뢰와 질을 회복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2014년에도 KBS 사장 공모에 참여했다.

“당시엔 사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KBS 이사회 여야 구도가 7대4였다. 나는 당시 야당 성향으로서 KBS 구성원들의 지향성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섰다. 당시 이상한 사장 후보자들이 많았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새노조)가 1000명 이상 구성원에게 ‘KBS 사장이 돼선 안 될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3.6%로 가장 적게 나왔다. 내가 출마함으로써 (당시 후보들이 부적격이라는) 의미를 보여준 것이다. 이제는 KBS가 적극적인 가치를 실현할 시점이다.”

-지난 9년 정권과 적극적으로 싸워 온 인물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새노조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타당성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도 KBS노동조합 정책실장으로서 기업별 노조를 산별노조로 바꿔나가는 초석을 다졌다. 지역국, 제작부장, 편성제작부장을 거쳐 경영기획국 차장도 했다. 퇴직 후엔 방심위 보도교양특별심의위원으로서 불공정 보도를 감시했다. 그 외에 여러 칼럼을 기고하며 미력하게나마 (공정방송에 대한)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적폐청산은 보도·프로그램 제작을 넘어 근본적이고 의식적인 면까지 이뤄져야 한다. 특히 KBS 경영평가위원으로서 KBS를 균형감 있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연령 면에 있어서는 전체 구성원을 총괄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2010년 국정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제작했던 프로그램이 장준하 등을 다뤄서 (노무현 정부) 당시 야당으로부터 ‘빨갱이 프로그램’이라고 공격 받았다. 그전에는 (당시 국장급인) 기획팀장, (다큐멘터리 국장에 해당하는) 스페셜팀장을 지냈는데 (이명박 정부 이후) 관리직급에 오르지 못하고 무보직으로 퇴직했다. 한 번은 내가 본사에 있는 게 보기 싫었는지 (사측 인사로부터) 원주 국장으로 가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작은 직급이지만 보직을 맡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른바 ‘적폐’ 청산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지난 9년 동안 노조를 비롯해 시민사회 7개 단체가 발표한 성명서 등 여러 형태의 글 2000건을 읽고 검토했다. 문제된 사안에 관여한 사람은 (사장이) 되자마자 처단할 것이다. 인적 청산을 위한 노사 공동 특별조사위원회를 세울 것이다.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고, 필요한 경우 사법 처리까지 고려할 수 있다. 나는 과거 무보직을 전전함으로써 여러 실상을 경험했다. 어떠한 메커니즘이 필요한지 파악했다. 특별조사위원회, 정책타당성 조사·평가, 사규, 법령 등 4가지 방법론을 동원할 생각이다. 과거 9년 동안 3년 이상 보직자들에 대해서는 무보직 원칙을 세울 것이다.”

▲ KBS 사장 후보인 이상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21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KBS 사장 후보인 이상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21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해야 할 역할은?

“과거에는 KBS가 공영방송 역할을 한 적이 많다. 특히 ‘이산가족찾기’ 같은 경우 강력한 ‘어젠다’를 설정했다. 오늘날에도 이런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공영방송은 다른 방송과 구별돼야 한다. KBS는 공영방송답게 고품질에,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상업 방송은 시도할 수 없는. (KBS 사장이 된다면) 기둥 5개를 세우고 싶다. 보도, 강력한 심층 탐사와 드라마, 과감한 투자를 통한 제대로 된 드라마 제작, 국민 오락 프로그램 부활 등이다.”

-시청자 권익 강화 방안은?

“시청자가 공영방송을 경영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 시청자본부를 시청자참여본부로 개편하고 KBS 정책 기획 기능을 수행하게 할 것이다. 공론 조사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개방형 임용제도 대폭 확대해 KBS가 갑질하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기반으로 삼을 것이다. 수신료 수입 중 5%, 대략 300억 정도를 시청자 참여를 위해 배당할 것이다. KBS가 사용하고 있는 방송용 주파수의 ‘화이트 스페이스’를 활용해 와이파이 망을 설치할 수도 있다. 통신사 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지하철이나 인구 밀집 지역에 와이파이 망을 깔고 있는데, 나머지를 KBS가 하겠다는 것이다. 통신사를 설득하고, 방송사업자가 통신사업자가 될 수 있는 정책적 결단이 가능하도록 추진해보겠다.”

-언론계 갑질 문제 해소 방안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원 스트라이크’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사규에 머물지 않고 사법 처리까지 가능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다. 비정규직은 개별적 특수성을 따져서 한 단계씩 (처우를) 높여야 한다. 무기 계약직은 정규직화하기 가장 쉬울 수 있다. 특수 고용 관련해서는 표준계약서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협찬, 지원, 협조 등의 이름으로 계속된 외주제작사에 대한 갑질 관행도 해소해야 한다. 이를 관리하는 일원화된 창구와 강력한 부서가 있어야 한다.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상담과 권리 구제를 도울 것이다.”

-어떤 KBS를 만들고 싶은가?

“‘신뢰 재구축과 KBS 재창조’를 모토로 하고 있다. 가장 긴급한 ‘신뢰 회복’을 시작으로 국민 속에서 길을 찾아 KBS를 재창조하겠다는 것이다. (KBS 정상화) 기본 방향은 국민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수신료 2500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한테도 받고 저소득 고령자에게도 똑같이 받는다. 차별 없이 서비스하라는 뜻이다. 정보 격차는 빈부 격차와 민주주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KBS는 그동안 국민을 외면하고 속였다. 극단적으로 국민을 ‘착취’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에게만 봉사해 권력 구조 유지에 앞장섰다. 이제는 정상화를 통해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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