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시민들은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사건 1심 판결문을 법원으로부터 제공받지 못한다.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가 판결문의 공개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 측의 판결문 비공개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부회장은 1심 선고가 나고 6일 뒤인 2017년 8월31일 ‘판결서 등 열람·복사 제한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누구든지 판결이 확정된 사건의 판결서 또는 그 등본, 증거목록 또는 그 등본, 그 밖에 검사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물건의 명칭·목록 또는 이에 해당하는 정보를 보관하는 법원에서 해당 판결서 등을 열람 및 복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59조의3 제1항 내용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법원 홈페이지 등을 통해 실명확인, 사건번호 입력 등 절차를 거친 후 △전자우편 △우편 △직접 수령 △모사 전송의 방법으로 판결문 사본을 제공받을 수 있다.

판결문은 일부 예외 상황이 아니라면 배제없이 공개하는게 원칙이다. 헌법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과 시민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서다. 일부 예외 상황은 형사소송법 제59조에 규정돼있다. 그렇다면 이 부회장 뇌물 사건 판결문 비공개엔 어떤 예외 조항이 적용됐을까.

▲ 오마이뉴스가 제작해 9일 공개한 ‘공범자 이재용 vs 피해자 이재용 – 엇갈린 1·2심 판결문 전문공개’ 웹페이지.
▲ 오마이뉴스가 제작해 9일 공개한 ‘공범자 이재용 vs 피해자 이재용 – 엇갈린 1·2심 판결문 전문공개’ 웹페이지.

제59조의3 제1항 1호 내용은 ‘비공개 심리’다. 그러나 이 부회장 재판은 공개로 진행됐다. 이 부회장 사건은 2호 ‘소년법이 적용되는 사건’, 3호 ‘공범 증거인멸·도주를 용이하게 할 경우’, 4호 ‘국가안보 저해 초래’ 등의 규정과도 관련이 없다. 남는 것은 ‘제59조의2 제2항제3호’다. 기록 공개로 사건 관계인의 △명예 △사생활 비밀 △생명·신체의 안전 △생활의 평온 등이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을 때, 사건 관계인의 요청이 있으면 재판부는 열람 제한을 허용할 수 있다.

제2항제3호를 뜯어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4가지 기준 중 생명의 안전 및 생활의 평온은 제외된다. 판결문 공개 여부가 삼성그룹 임원 피고인 5인의 생명 안전과 생활 평온에 현저한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없다. 두 가지 기준이 남는다. 명예 실추와 사생활 비밀 침해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된 이 부회장 측 호소를 받아들여준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범죄는 뇌물, 횡령, 재산국외도피, 위증 등이다. 해당 범죄와 관련된 사실관계와 법리적용은 질병기록 등 내밀한 개인정보 적시와 거리가 멀다. 성 범죄같이 피해자 보호가 필요한 사건도 아니다. 공개 판결문엔 이름, 주소, 나이 등 개인정보가 법원의 비실명화 작업을 거쳐 삭제된다. 

명예 실추는 모든 피고인이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삼성 뇌물 사건을 둘러싼 사실관계는 언론보도, 공개재판을 통해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판결문이 공개된다고 해서 명예가 그 전보다 현격히 실추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훼손되는 것은 시민의 알 권리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예외는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 제한할 만한 이유가 명확히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제한하란 것이지 ‘막연히 피해가 있을 것 같다’ 등은 이유가 될 수 없다”면서 “이 사건은 경제권력이 국가권력과 결탁해 사회질서를 부조리하게 만든 뇌물 사건이다. 알 권리 차원에서 판결문 열람의 공익적 목적이 훨씬 크다”고 평가했다.

결정이 재판부 재량에 달려있는 탓에 ‘박근혜 전 정부 국정농단 사건’ 재판의 판결문 공개 여부는 들쭉날쭉이다. ‘정유라 이화여대 학사비리’ 사건 1심 재판에서 피고인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은 두 차례에 걸쳐 열람 제한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문은 열람을 신청한 일반 시민들에게 제공됐다. 

반면 비선진료 사건 피고인 이임순 전 순천향대 의대교수 1심 및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의 1심 판결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2심 판결문의 경우, 한 언론사 기자는 서울고등법원에 비공개 결정을 취소하라고 행정심판을 제기한 상태다. 서울고법 측은 이 기자에게 ‘증인 중 1명이 형소법 제59조의2 제2항3호을 근거로 요구한 열람 및 복사 제한을 신청을 수용했다’고 답했다.

판결문에 대한 자의적 통제 문제는 법조기자단까지 확대된 상황이다. 법원·검찰청 등을 출입하는 법조기자단은 지난 21일, 이재용 부회장의 1·2심 판결문을 공개한 온라인매체 오마이뉴스에 1년 출입 정지 중징계를 내렸다. 기자단은 판결문 전문을 공개해서는 안 될 이유가 많으며 법원이 취재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약속이 있다는 이유를 징계 사유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마이뉴스는 개인정보를 모두 삭제한 후 판결문을 공개했다. 이 부회장은 재계 1위 그룹의 예비총수로서 공인인데다 그의 범법 행위는 공적인 사안이다. 이 부회장의 사건이 형소법 예외조항에 해당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법원과의 암묵적 약속을 언급하기엔 이재용 부회장의 판결문은 국회 보좌관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 게재되는 등 이미 광범위하게 유포됐다. 

오마이뉴스의 판결문 공개가 헌법에 담긴 공개재판 취지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문제의 본질이란 점에서, 기자단 또한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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