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최저임금)으로 책정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에 대한 동의가 27만 명을 넘어섰다. 답변 의무 조건인 20만 명 동의를 채웠기 때문에 청와대가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임금으로 책정해달라는 국민청원이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은 의정활동에 전념하기보다 잇속만 챙기고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많고, 이에 따라 정치 집단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인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게시물에서 “나랏일을 제대로 하고 국민에게 인정받을 때마다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바꿔달라”고 한 대목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가 현실화됐을 때 오히려 자산이 많은 정치인들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고, 가난하지만 의정활동을 충실히 해온 정치인들만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집단에 대한 불신은 이해하지만 의정활동을 촘촘하게 감시하는 방향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돈을 주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었을 때 오히려 자산가 정치인만 양산하고 정치권 진입의 벽을 높이는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 지난 2016년 4·13 총선을 이틀 앞둔 4월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됐다. ⓒ 연합뉴스
▲ 지난 2016년 4·13 총선을 이틀 앞둔 4월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됐다. ⓒ 연합뉴스
장하나 전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회의원 월급을 줄일 수 있다면서도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44억 원이라서 월급을 줄였을 때 영향 받는 건 가난한 국회의원들일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국회의원들이 재선에 도전할 여력이 현저히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도 하지 않고 비리만 저지르는 집단에 1억 원이 넘는 돈을 국민 혈세로 바쳐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최저임금 책정 주장이 그나마 ‘선의’의 정치인이나 ‘가난한’ 신입 정치인을 가로 막는 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평균 재산 44억 원을 가진 사람들이 연봉 1억 원을 보고 국회의원이 돼서 수억 원을 쓰는 게 아니다”면서 “국민감정은 만 프로 이해한다. 다만 그럴 거면 아예 무급으로 하지, 정치인 부자들을 모아놓고 최저임금을 주자는 발상은 좀 그렇다”고 말했다.

일례로 1억 원이 넘는 연봉과 후원금으로 모을 수 있는 1억5천만 원에 가까운 돈으로 ‘가난한’ 정치인들은 지역구 사무실을 운영하고, 토론회(사무처 지원금 제한 이상) 등을 여는 등 온전한 의정활동에 투입해 빠듯한 살림살이를 하고 있지만, 재산이 많은 정치인들에게는 돈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저임금으로 급여를 책정해버리면 재산이 많은 국회의원들에게 전혀 타격이 없고, 굳이 피해를 보는 사람은 가난한 정치인이며 특히 재선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게 장하나 전 의원을 비롯한 ‘가난한’ 정치인들의 주장이다.

장하나 전 의원은 “국민정서는 이해하지만 의원들 월급을 줄일 게 아니라 선거 비용 같은 걸 줄이던지 항시 의정활동을 감시할 수 있어서 선거 결과에 반영이 될 수 있도록 하던지 해야 한다”면서 “국회의원이 되고 난 후 1년 후 재산이 늘었다면 왜 늘었는지 소명하도록 할 수 있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정당별 재산 현황을 살펴봐도 최저임금 책정 요구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수 정당의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3월 국회의원 299명의 재산변동사항 신고 내역(2016년 12월31일 기준)을 보면 500억 원 이상 자산가를 제외하고 바른정당 의원들은 평균 31억5465만 원을 재산으로 신고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은 평균 26억7490만 원, 국민의당은 18억1592만 원, 더불어민주당은 16억43만 원이었다. 무소속은 14억764만 원, 정의당은 4억5964만 원이었다.

▲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글이 19일 27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글이 19일 27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최저임금 책정보다는 백지신탁 제도와 같이 자산이 많은 사람이 정치권에 진입할 경우 사회에 재산을 환원하는 방향으로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최저임금 책정 주장은 현실성을 떠나 정치인들이 얼마나 지금까지 잘못해왔는지 국민들에게 반감을 주는 행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대통령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집단이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정치인들은 이 사안을 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전 의원은 “주장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르게 설계를 해야 한다. 국회의원 세비를 국민 정서에 맞게 일정정도 감소를 시키고 그 상태에서 세비 인상을 물가인상률이나 최저임금 인상률에 연동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또한 선출직으로 당선된 사람의 경우 일정액수 이상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게 해서 자산이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정치권력을 가지는 것에 대한 일정정도 제약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은 “돈을 버는 것은 당연히 인정한다. 하지만 백지신탁 제도와 같이 그 취지를 살려 확대해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을 사회적으로 동시에 인정해주지 않은 시스템을 정착해 공정한 사회, 깨끗한 정치의 취지를 살리고 실력은 실력대로 인정해주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지금 현재의 제도가 나쁜 정치인을 만든 게 아니다. 의원들이 특수활동비를 받아 쓰고 정치 현안을 가지고 뒷거래를 하는 게 밝혀졌는데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정치 시스템에 변화를 줘야 하는 문제”며 “대표적으로 득표수에 비해 비례의석수를 많이 가져가 절대적으로 기득권에 유리하도록 돼 있는 것을 비례연동제로 정당 의석을 분배해 정치 집단의 기득권을 깨야 한다. 정치권이 군사 독재의 탄압 속에서 독립성을 보장하는 권한이 생겼는데 이런 권한은 보장하되 다른 권한은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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